우리 사회가 직면한 소아청소년과 대란은 상당히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엉킨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소아청소년과 대란은 상당히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엉킨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정소현·김두완·권정두·연미선·조윤찬 기자  처음 이 기획을 구상할 때 모든 것이 물음표 투성이었습니다. 저출생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는데 소아청소년과는 오픈런이나 예약전쟁이 펼쳐질 정도로 북새통이고, 그런데도 소아청소년과 의사 단체에선 운영난을 호소하며 폐과를 선언했죠. 일반적인 상식에선 분명 서로 모순된 현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한 뒤에 물음표가 해소되기는커녕 파고들수록 늘어나고 커져만 갔습니다. 풀린 의문은 딱 하나였습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입니다.

우리 사회에 드리운 ‘소아청소년과 대란’의 현상과 원인 모두 상당히 복합적인 양상을 띱니다. 일례로 소위 ‘오픈런 현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진료를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고, 스마트폰으로 예약전쟁을 치르고, 몇 시간씩 대기하는 일은 분명 실제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다만, 모든 병원이 항상 그렇진 않습니다. 병원에 따라, 지역에 따라, 또 시기나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감기 같은 감염질환의 유행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요. 또 지방의 경우엔 애초에 소아청소년과가 없어 오픈런이 벌어질 일 자체가 없습니다.

음식점에 빗대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음식점이어도 맛집으로 이름난 곳은 줄을 서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한산하죠. 당연히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손님들이 몰리는 반면 한가한 시간도 있습니다. 메뉴에 따라서는 계절의 영향을 적잖이 받기도 하고, 방송에 나오는 등의 일로 갑자기 손님이 늘기도 합니다. 또 유동인구에 따라 음식점이 많은 곳이 있기도, 아예 없는 곳이 있기도 하죠.

즉, 소아청소년과도 철저히 경제논리에 놓여있는 겁니다. 평판이 좋거나 공급 대비 수요, 즉 소아인구 대비 병원이 적은 지역은 환자가 몰리죠. 환절기 등 계절이나 감염질환 유행 시기는 물론, 등·하원 전후처럼 시간대에 따라 몰리기도 하고요. 소아인구가 적은 지방의 경우 적은 수요로 인해 운영이 어려워 소아청소년과가 없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소아청소년과 의료계에서 제기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수익문제입니다. 의료수가가 낮고, 비급여 항목 진료도 적어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수익이 크게 떨어진다는 거죠. 잘되는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의 차원을 넘어, 소아청소년과 의료계 전반에서 제기하는 문제입니다.

경제논리만 따른다면 해결은 간단합니다. 손님이 몰리는데도 수익이 부족한 음식점은 음식값을 올리면 됩니다. 그런데 소아청소년과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의료수가는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정됩니다. 잘되는 병원이든 그렇지 않은 병원이든 똑같이 적용되고요. 

그 이유는 의료부문이 지닌 공공성 때문인데요. 의료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의료수가 인상은 국가와 국민의 부담 가중으로 이어지고, 심각한 경우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국가가 의료면허를 발급하고 의료수가를 제한하며 철저히 관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금 소아청소년과 대란을 넘어 의료체계 붕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지금 소아청소년과 대란을 넘어 의료체계 붕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즉, 의료부문은 한편으론 철저한 경제논리에 놓여있으면서 공공성이 핵심요소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합니다. 경제논리를 따르면 의료수가를 크게 인상해야 하는데, 공공성을 고려하면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이것이 ‘오픈런’과 ‘폐과선언’이 동시에 벌어진 본질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까다로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켜켜이 쌓여왔습니다. 의료계의 반발이 폭발해 파업이라도 벌어지면 ‘생명을 담보로 자기 욕심을 챙긴다’는 비판이 쏟아졌죠. 반면, 의료수가가 어떤 구조로 어떻게 결정돼오고 있는지 아는 국민은 많지 않습니다. 그 결과 소아청소년과를 둘러싼 문제가 곪아터지는 지경에 이른 겁니다. 

여기에 소아청소년과 특성에서 비롯된 높은 업무강도와 일부 부모들의 갑질, 저출생 현상으로 인한 수요 감소 등도 하나같이 까다로운 영역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원별, 지역별, 시기별 차이까지 더해지죠. 모두 현상이나 원인, 대책을 어느 하나로 뚜렷하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의료수가 문제만 해도 난제 중의 난제인데, 이렇게 다른 난제들까지 뒤엉켜있으니 소아청소년과 대란을 향해 숱한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면서 소아청소년과에 ‘의료붕괴’ 경고등이 켜졌다는 겁니다. 암울한 미래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사라지면서 상급 의료기관의 소아청소년과 운영과 소아 중증·응급 의료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거죠. 이는 감기 진료를 받기 위해 오픈런을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아주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입니다.

취재를 이어오면서 느낀 가장 큰 답답함은 소아청소년과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우리 사회 전반의 이해도가 너무 크게 떨어져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경제논리와 공공성 사이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깊은 사회적 담론과 상호 신뢰 및 공감대가 밑바탕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정확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 발에 오줌 누듯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죠. 지금이라도 지혜를 모아나갈 수 있길 바라봅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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