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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요
[함께 살아요⑦] 95세 할머니가 말하는 봉사의 기쁨
2018. 12. 26 by 소미연 기자 pink2542@sisaweek.com

히어로(hero)를 다룬 이야기는 흥행불패다. 악당과 대적하는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정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여기엔 세상을 향한 일침이 있고, 잠들어있던 인류애를 깨운다. 어쩌면 우린 각박한 현실에서 나를 도와줄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따뜻한 뉴스로 종종 찾아온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구한 시민 영웅들이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함께 살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당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 편집자주

95세를 바라보고 있는 정희일 할머니는 1986년 영등포에 처음 무료급식소(현 토마스의 집)가 열릴 때부터 30년 넘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할머니는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 소미연 기자
95세를 바라보고 있는 정희일 할머니는 1986년 영등포에 처음 무료급식소(현 토마스의 집)가 열릴 때부터 지금까지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할머니는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 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서울 영등포역에서 문래동 방면으로 100m쯤 가면 ‘토마스의 집’이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다. 역 주변을 배회하는 노숙자부터 하루 일당을 허탕 친 일용직 근로자, 인근 쪽방촌 주민들까지 매일 한 끼를 여기서 해결한다. 배식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다. 3시간 동안 평균 450명 이상이 다녀간다. 토마스의 집 살림을 맡고 있는 박경옥 총무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 시설은 제일 작아도 급식 인원수는 가장 많은 곳이다.

◇ ‘토마스의 집’으로 30년 넘게 출퇴근 “즐겁다”

성탄절(크리스마스)에도 변함없었다. 봉사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했고, 배식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건물 뒤편으로 줄을 섰다. 시간이 임박하자 백발의 할머니가 식탁에 물컵과 숟가락을 놓았다. 95세를 바라보고 있는 정희일 할머니다. 봉사자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때로는 ‘군기반장’으로 통했다. 음식을 남기는 사람은 없는지, 비품을 낭비하진 않는지 살펴보고 한 번씩 호통을 쳤다. 청력이 많이 약해졌지만 급식 봉사에 어려움이 없었다. 정희일 할머니는 토마스의 집을 마을버스로 출퇴근하고 있다.

무려 30년이 더 넘는 시간이다. 정희일 할머니는 <시사위크>와 만나 “처음 시작할 때는 밥도 하고 국도 퍼고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힘이 약해지니까, 식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간식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만류하지는 않을까. 정희일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이날 성탄 미사에 참석하느라 성당에서 토마스의 집까지 차로 데려다 준 사람도 아들이었다는 것. 할머니는 “힘들지 않다.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주님, 오늘 제게 힘을 주셔서 잘 끝냈다’고 기도한다”고 설명했다.

토마스의 집과 오랜 시간 인연을 맺으면서 감격스러운 일도 여러번 있었다. 4년 전,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수여하는 제31회 가톨릭대상에서 사랑 부문을 수상했다. 정희일 할머니는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했는데 큰 상을 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과의 재회가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할머니가 처음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준 사람이 바로 염수정 추기경이었던 것이다.

때는 1986년이다. 당시 영등포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염수정 추기경이 성당 인근에서 한 노숙자가 추위로 숨진 것을 목격한 뒤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 좀 해주자”며 주변 성당과 관련 단체들의 힘을 모아 무료급식소를 열었다. 당초 사랑의 선교 수사회에서 운영을 맡았으나, 1993년 김종국 신부에게 인계돼 오늘날 토마스의 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과정을 지나오는 동안 정희일 할머니는 묵묵하게 자리를 지켰다. 2014년 설 명절에 토마스의 집을 방문한 염수정 추기경은 할머니를 보고 “이게 얼마만이냐”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토마스의 집’은 가난하고 소외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다. 봉사자들은 급식소를 찾은 사람들을 반갑게 맞았고, 정희일 할머니는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간식을 챙겨주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 소미연 기자
‘토마스의 집’은 가난하고 소외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다. 봉사자들은 급식소를 찾은 사람들을 반갑게 맞았고, 25일 성탄절에는 떡국을 배식했다. 정희일 할머니는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간식을 챙겨주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 소미연 기자

봉사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정희일 할머니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계속 할 생각이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려던 일이 도리어 나눔의 기쁨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보였다. 다른 봉사자들도 ‘엄마’를 보며 함께 웃었다. 한 봉사자는 “30년 넘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봉사를 실천해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박경옥 총무가 “희생 없는 열매는 없다. 숨은 봉사자들이 많았기에 지금까지 토마스의 집을 운영해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토마스의 집은 밥값으로 200원을 받는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자존감 유지비다. 사실 밥값을 받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년여 전만 해도 공짜였다. 때문에 재정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봉사자 모두 같은 마음이다. 여전히 박경옥 총무는 “한 분이라도 더 드시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도 정희일 할머니는 식사를 마친 사람들에게 간식을 챙겨주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정중히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