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7일, 푸르밀의 신동환 대표이사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사업종료를 선언했다. 롯데그룹에 뿌리를 둔 45년 역사의 유업계 중견기업의 이 같은 선언은 큰 충격과 함께 많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푸르밀은 어떻게 스스로 사업종료를 선언하는 지경까지 몰락하게 됐을까. <시사위크>가 그 발자국을 좇아본다.

최근 사업종료를 선언한 푸르밀은 오래 전부터 우유업계에 위기가 드리웠음에도 동종업계 경쟁사와 달리 사업다각화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았다. /뉴시스
최근 사업종료를 선언한 푸르밀은 오래 전부터 우유업계에 위기가 드리웠음에도 동종업계 경쟁사와 달리 사업다각화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았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앞서 살펴봤듯 푸르밀은 오너일가 2세 신동환 사장이 전문경영인을 대신해 대표로 취임한 2018년을 기점으로 적자행진을 이어가는 등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렇다면, 오로지 대표 하나 바뀌었다고 해서 기업의 경영이 악화되고 급기야 사업종료를 선언하기에 이르게 될 수 있을까. 그것도 수십 년의 업력을 쌓아온, 수백 명의 직원이 있는 중견기업이 말이다.

그렇지 않다. 푸르밀의 실적 악화가 나타나기 전부터 국내 우유업계에는 이미 위기가 드리우고 있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생문제로 인해 우유 소비가 감소세를 이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2001년 36.5kg이었던 국민 1인당 연간 우유(음용유) 소비량은 2020년 31.8kg으로 줄어들었다.

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낙농제도가 지닌 맹점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현재 국내 원유 중 음용유의 가격은 2013년부터 도입된 ‘생산비 연동제’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생산비 연동제’란 낙농업계가 생산한 원유 중 우유업계에 공급하는 물량을 정해 보장하는 한편, 가격은 생산비와 연동해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 우유업계가 필요 이상으로 매입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선 정부가 지원했다.

이 같은 제도는 우유가 부족하던 시절 생산을 늘리는 한편, 원유가격 결정을 원활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문제는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등의 시대적 변화에도 이러한 제도가 유지됐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우유 소비는 감소세를 이어간 반면, 원유 초과 생산은 계속되고 가격은 오히려 오르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다. 우유 소비가 줄어든 것과 달리 유제품 소비는 증가했지만 이에 대한 대응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01년 63.9kg이었던 국민 1인당 연간 유제품 소비량은 2020년 83.9kg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처럼 소비가 증가한 유제품엔 국산 원유가 아닌 수입 원유가 더 많이 쓰였다. 앞서 언급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국산 원유 가격이 비싸다 보니 유제품 가공에 쓰기 어려웠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우유 및 유제품 자급률은 2001년 77.3%에서 2020년 48.1%로 뚝 떨어졌다.

이처럼 푸르밀은 물론 국내 우유업계, 나아가 낙농산업 전반이 여러모로 분명한 위기 상황을 맞고 있었다. 문제는 대응이다. 서울우유나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동종업계 경쟁사들은 점점 더 뚜렷해지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모색했다. 단순히 신제품을 선보이는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며 우유업계에 드리운 위기와 한계를 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푸르밀에게선 그러한 모습이 없었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위기가 이제는 코앞까지 닥친 상황임에도 이를 딛고 도약하기 위한 적절한 판단과 과감한 결단이 없었던 것이다. 기업에서 이러한 역할을 맡아 미래 생존 및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최고 경영진이다. 오너경영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신동환 사장에게 푸르밀을 지속 성장시키겠다는, 최소한 생존시키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 물음표가 붙는 이유다.

올해 초 회사를 떠난 신동환 사장의 부친 신준호 회장이 남긴 뒷모습은 이러한 물음표를 더욱 키운다. 신준호 회장은 푸르밀이 4년 연속 적자행진 이어가고, 몇 개월 뒤 사업종료를 선언해야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30억원가량의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푸르밀보다 덜한 위기를 마주했던 기업들에서도 오너경영인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임금을 반납하며 기업의 생존을 우선 추구하는 모습이 종종 나타났던 것과 대비된다.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이란 유명한 말이 있다. 살려고만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각오하면 살 것이라는, 절박한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푸르밀 오너일가에겐 살고자 하는 의지도, 죽음을 각오하는 생존 모색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근거자료 및 출처

 

- ‘농식품부, 지속가능한 낙농산업 발전을 위하여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및 낙농진흥회 의사결정체계 개편키로’ 발표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2021년 12월 30일 

https://www.mafra.go.kr/mafra/293/subview.do?enc=Zm5jdDF8QEB8JTJGYmJzJTJGbWFmcmElMkY2OCUyRjMyOTE3NSUyRmFydGNsVmlldy5kbyUzRg%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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