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7일, 푸르밀의 신동환 대표이사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사업종료를 선언했다. 롯데그룹에 뿌리를 둔 45년 역사의 유업계 중견기업의 이 같은 선언은 큰 충격과 함께 많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푸르밀은 어떻게 스스로 사업종료를 선언하는 지경까지 몰락하게 됐을까. <시사위크>가 그 발자국을 좇아본다.

2010년 당시 대선주조 관련 의혹에 휩싸였던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부산지검에 출석한 모습이다. 그는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뉴시스
2010년 당시 대선주조 관련 의혹에 휩싸였던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부산지검에 출석한 모습이다. 그는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푸르밀이 제2의 대선주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 및 지자체의 도움을 얻어 타파하고 싶습니다.”

지난달 17일 푸르밀이 사업종료를 선언한 직후 푸르밀 노조가 발표한 호소문에 담긴 내용이다. 푸르밀 노조는 “신준호 회장은 대선주조 매각 시 먹튀 논란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배임·횡령 등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며 이 같이 언급했다. 

푸르밀 노조는 왜 대선주조를 소환한 것일까. 그때 대선주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선주조는 부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향토기업이다. 1930년에 설립돼 올해로 92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그 오랜 역사에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선주조는 외환위기 때인 1997년 부도 사태를 맞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경쟁사인 무학이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나서면서 혼란을 겪었다.

이때 백기사로 등장해 대선주조를 인수한 것이 바로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다. 당시 신준호 회장 일가가 대선주조 인수를 위해 투입한 자금은 총 600억원가량이었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엔 사업적 판단 못지않게 사적인 이유도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사돈관계다. 신준호 회장의 차남이자 이번에 푸르밀 사업종료를 선언한 신동환 사장이 최병석 전 대선주조 회장의 장녀와 혼사를 맺은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여러 상황 상 대선주조를 헐값에 품을 수 있었던 신준호 회장 일가는 3년여 만인 2018년 초 돌연 대선주조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며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푸르밀 노조에서 언급한 ‘대선주조 먹튀 논란’이 바로 이때부터 불거진 것이다.

당시 신준호 회장 일가가 대선주조를 사모펀드에 매각한 가격은 3,600억원가량이다. 3년여 만에 무려 6배의 차익을 거둔 셈이다. 물론 기업을 인수 또는 매각하는 것이나 부실기업을 정상화시켜 기업가치를 높여 매각하는 것 자체엔 어떠한 문제도 없다. 하지만 당시 신준호 회장 일가의 대선주조 매각은 ‘먹튀’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충분했다.

먼저, 부산 지역에서 각별하게 여겨지는 대선주조는 부도 이후 정상화 과정에서 2,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며, 신준호 회장 일가가 인수한 이후에는 공장 이전과 관련해 부산시 등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과 협조를 받았다. 특히 이 같은 공장 이전은 대선주조의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런데 공장 이전을 마친 직후 이미 매각을 추진해왔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역사회는 들끓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당시 부산 지역에서는 대선주조와 푸르밀(당시 롯데우유)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이처럼 먹튀 논란이 일자 당시 부산지검은 신준호 회장 일가 및 대선주조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고, 이듬해인 2009년 수사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신준호 회장 일가가 대선주조를 인수하고 다시 매각하는 과정에서 배임 등 각종 불법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신준호 회장은 결국 2010년 2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후 결과적으로 신준호 회장은 1심과 2심,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일각에선 현행법을 교묘하게 악용한 신종 위법 행위였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이 남았다. 

이처럼 거센 후폭풍을 남긴 신준호 회장 일가의 ‘먹튀 논란’은 대선주조가 부산지역에서 유지해왔던 압도적 위상이 깨지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한때 90%를 넘겼던 대선주조의 부산지역 점유율은 이로 인해 30% 아래까지 떨어진 바 있다.

무엇보다 14년 전 대선주조 매각과 이번 푸르밀 사업종료 선언은 근본적으로 닮은 면이 존재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영상 중대한 결정이 내부구성원과 어떠한 소통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또 오너일가 자신들의 사적 이익만 추구됐을 뿐 회사 또는 회사구성원들에 대한 고려나 책임감은 없었다. 하루아침에 생업을 잃을 처지에 놓인 푸르밀 노조가 대선주조를 떠올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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