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7일, 푸르밀의 신동환 대표이사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사업종료를 선언했다. 롯데그룹에 뿌리를 둔 45년 역사의 유업계 중견기업의 이 같은 선언은 큰 충격과 함께 많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푸르밀은 어떻게 스스로 사업종료를 선언하는 지경까지 몰락하게 됐을까. <시사위크>가 그 발자국을 좇아본다.

낙농민들이 지난 25일 상경집회에서 푸르밀 서울본사에 우유를 투척하고 있다. /뉴시스
낙농민들이 지난 25일 상경집회에서 푸르밀 서울본사에 우유를 투척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푸르밀의 사업종료 선언이 큰 충격을 안긴 이유로 소통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무엇보다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사전에 어떠한 소통이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푸르밀 오너일가는 사업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도의적인 측면에서도 무책임한 모습을 드러냈다.

◇ 소통 강조한 신동환 사장, 초유의 사업종료는 ‘날벼락 통보’

푸르밀의 사업종료 선언은 직원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당장 생업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푸르밀의 직원 수가 350여명인 점에 비춰보면 가족까지 포함해 최소 1,000여명 이상의 밥숟가락이 걸린 문제였다. 하지만 이처럼 중차대한 사안을 푸르밀은 지난 17일 한 통의 이메일로 일방 통보했다. 사업종료 시점으로 못 박은 것은 11월 30일이다. 

푸르밀은 이에 앞서 회사 구성원들과 심각한 위기상황을 공유하고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소통을 하지 않았다. 회사의 정리방법에 대한 소통 역시 없었다.

푸르밀 직원들이 회사의 위기상황을 몰랐던 것은 결코 아니다. 푸르밀 뿐 아니라 우유업계 전반이 큰 어려움을 겪어오고 있었던 데다, 2018년부터 4년 연속 적자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제 푸르밀 노조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업다각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뜻을 회사 측에 피력해왔다. 인력 충원을 요청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등을 감내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푸르밀 노조위원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조를 해산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푸르밀 노조는 호소문을 통해 “회사는 정상화를 위한 어떤 제시나 제안도 듣지 않고 노사 간의 대화의 창을 닫아 버렸다”면서 “노조위원장이 대표이사와 부사장 면담까지 하며 회사 정상화를 위해 어떤 고통도 감내하고 동참하겠다고 했지만 대표이사는 ‘더 이상 직원들과 얼굴 보는 일은 없다’고 확고하게 답했다”고 밝혔다.

즉, 푸르밀은 소통을 하지 않은 것을 넘어 소통을 철저히 외면하기까지 한 것이다.

소통의 문제는 비단 푸르밀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푸르밀은 협력사 및 대리점은 물론, 원유 공급처인 낙농업계와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PB상품 파트너사에게도 같은 날인 지난 17일 일방적으로 사업종료를 통보했다.

젖소를 키우며 소젖을 짜 공급해온 낙농민들, 자재와 제품 등을 운송해온 화물기사들, 푸르밀 제품이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일선을 뛰어온 대리점주들, 윈-윈을 추구하며 협력해온 파트너사들 등은 모두 푸르밀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었다. 푸르밀이 사업을 종료하면, 생업에 큰 타격을 입는 등 어떤 식으로든 여파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거꾸로 푸르밀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어느 한 곳이라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면 푸르밀도 사업에 큰 지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푸르밀은 이들에게도 사전에 어떠한 예고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종료를 통보했다.

푸르밀의 불통을 향한 분노는 사업종료 선언 이후 연일 이어지고 있는 집회를 통해 뚜렷하게 확인된다. 지난 25일 푸르밀에 원유를 공급해온 낙농민들의 상경집회에서도, 이튿날 푸르밀 노조의 상경집회에서도 무책임한 사업종료 결정을 향한 성토는 물론 통보 방식에 대한 원성이 쏟아졌다.

상경투쟁에 나선 낙농민들은 신동환 사장 등 오너일가를 만나 면담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만나지 조차 못했다. 신동환 사장으로부터 대표 권한을 위임받은 인물을 면담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노조는 고용노동부 중재로 지난 24일 신동환 사장 등 경영진과 마주앉았다. 다만, 이 자리에서 어떠한 대책이 마련되거나 발표되진 않았다. 푸르밀 노사는 오는 31일 한 차례 더 만날 예정이다.

신동환 사장은 대표 취임 초인 2018년 6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무실 한쪽을 가득 채운 피규어에 대해 “직원들이 내 방에 들어왔을 때 경직될 수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보려고 갖다 놨다”며 소통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4년 반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의 명의로 발표된 사업종료 선언에선 조금의 소통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근거자료 및 출처

 

- 푸르밀 사업종료 관련 성명서 및 대국민 호소문 / 푸르밀 노조
 

- [CEO] 바나나킥우유같은 혁신제품…연말까지 10종 더 내놓겠다 / 매일경제, 2018년 6월 24일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18/06/397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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