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0차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태원 참사 관련 내용이 적힌 노트를 살펴보고 있다. 참사 명단 유출 경로가 불법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0차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태원 참사 관련 내용이 적힌 노트를 살펴보고 있다. 참사 명단 유출 경로가 불법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야권이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위해 애쓰는 가운데 한 온라인 매체가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여야의 대립이 더욱 극에 달하고 있다.

앞서 한 온라인 매체는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며 참사 16일 만에 희생자 155명의 실명을 전격 공개했다. 하루가 지난 후 해당 매체는 “신원이 특정되지 않지만 그래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해온 유족 측 의사에 따라 희생자 10여 명의 이름은 삭제했다”며 일부 이름을 지웠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를 지적하며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 유가족분들의 동의조차 완전히 구하지 않고 공개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명단 공개에 공개를 원하지 않았던 유족들은 물론 유족의 동의를 얻고 공개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던 야권마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민주당 안호영 수석대변인이 “동의 없이 명단이 공개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밝힌 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다.

반면 여권은 즉각적으로 야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5일 본인의 SNS에 ‘민주당의 이태원 희생자 명단 공개, 대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통해 희생자 명단 공개 뒤에 민주당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집단적 이성 상실… 민주당은 제정신인가’라는 글에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다가 길을 잃었다”며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명단 공개에 앞장섰다. 이 대표부터 나서서 주장했고 당직자라는 사람들이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명단 공개’를 합창했다. 그러더니 결국 친민주당 매체에서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고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 또한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유족 다수가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이 법 위반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패륜적 행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개해야 한다는 민주연구원의 부원장 말을 충실히 수행했다”며 “패륜의 1차 목적은 범죄 의혹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배후설에 힘을 실은 셈이다.

비윤계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도 본인의 SNS를 통해 “더탐사와 민들레는 명단 공개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하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명단 공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며 민주당과 언론의 유착을 의심했다.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이날 “이태원 사고 희생자 실명 등 개인정보를 유족 동의 없이 무단으로 공개한 것은 유족에 대한 끔찍한 테러”라며 “희생자 실명이 공개됨으로써 악플이나 유언비어 유포 등으로 인해 고인의 명예가 실추되고 유족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 해당 언론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한 인터넷 언론에서 공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포스터. /웹사이트 갈무리.
한 인터넷 언론에서 공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포스터. /웹사이트 갈무리.

◇ 야당, 국정조사 발목 잡힐까 우려

야권에서도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는 반대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4일 성명을 통해 “개인정보보호법이 민간을 포함한 개인정보처리자의 개인정보처리에 있어 ‘동의’를 원칙으로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야권에서는 이번 명단 공개로 인해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민주당은 당초 유족의 동의를 구한 후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명단 공개 후 여권의 ‘배후설’을 음모론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15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비극적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데 이를 위한 국정조사가 왜 정쟁이고, 왜 이재명 살리기냐. 이태원 참사의 진실과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적 시선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윤핵관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기승전 이재명, 기승전 문재인’이라는 생억지 주장만 연일 쏟아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산업재해와 각종 사고 등 어떤 경우에도 유족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희생자 유족에 대한 정부 지원을 두고도 희생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이 오가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명단 공개는 2차 가해를 조장할 우려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당 국회의원은 15일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워낙 첨예한 상황이라 조심스러운 이야기다”면서도 “오늘 야3당 대표들이 김진표 국회의장을 만났지 않냐. 다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가 통과될텐데 여당은 이번 명단공개 사건을 여권 집결의 명분으로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어제 여당이 중진 만장일치로 국정조사 반대라고 했지만 사실 아니었다. 일부 의원들은 어차피 진행될 국정조사를 조건부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그런데 이번 명단공개의 원인을 민주당으로 지목하면서 여권이 집결할 수 있으니 이렇게 민주당 배후설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었고, (국정조사)수용 불가가 전원 동의는 아니다”며 “여러 다양한 의견이 있었는데 다수의 의원들은 국정조사 수용이 어렵다는 내용을 밝히셨다”고 말한 바 있다.

국정조사 수용 불가 이유에 대해서도 전 의원은 “‘더탐사’나 친민주당 성향 언론에서 155명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이런 행위들을 볼 때 이번 국정조사 역시 결국은 이태원 참사라는 국가적 비극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공개된 참사 희생자 명단
2022.11.14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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