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편집자 주]

주요 시중은행들이 금리 상승기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로 대출 금리를 일제히 낮추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외벽에 걸린 대출상품 금리 안내 현수막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최근 높은 대출금리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 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제도권 대출의 높은 문턱 때문에 사금융으로 눈을 돌린 서민들을 고통 받게 하는 불법 고금리 대출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는 불법 고금리 대출 피해를 막기 위한 처벌 강화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지만,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의 처벌 강화 법안이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율안 중 일부로 법정 최고금리 인하 문제와 함께 엮여 있는 게 처벌강화를 어렵게 만든 이유다. 아울러 사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불법사금융 근절에 효용성이 있느냐는 근원적인 질문도 나오고 있다.

◇ 최고이자율 위반죄 '솜방망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은 지난 2021년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을 연 13% 수준으로 낮추자는 제안과 함께 최고이자율 위반에 대한 벌칙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상향하자는 법안을 냈다.

현행 이자제한법 제8조 제1항에 따르면, 법정 최고이자율을 초과해 이자를 받은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서민들의 고혈을 짜 초고금리의 이자를 받아내는 불법사금융에게 이 처벌은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다.

현행 법안 최고이자율의 허점을 지적한 법안도 발의돼 있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 등 10인은 이자제한법 제2조제5항에 따라 원금이 10만원 미만인 경우 법정 최고이자율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10대를 중심으로 소액 고금리 대출이 성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대리입금’으로 불리는 이 형식은 열흘 이내의 짧은 대출기간이지만 이자율이 최고 50퍼센트에 육박한다. 연체이자 또한 시간에 따라 고율로 책정해 미성년자 등을 대상으로 사실상의 고금리 사채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박 의원 등의 주장에 따라 이자제한법 제2조제5항이 삭제되면 원금액과 관계없이 고금리 사채업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된다.

이같은 고금리 불법 사금융의 탈법, 불법은 제도권의 보호를 받기 힘든 서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여야를 막론하고 처벌 강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다. 해외 선진 사례들을 살펴보면, 불법 고금리 대출에 대해 우리나라보다 훨씬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는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가 대부업법을 제정할 때 모델이 된 일본은 3,000만엔(약 3억원) 혹은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법 사금융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5만싱가포르달러(약 5억원) 혹은 4년 이하 징역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관련 법안이 쉽게 개정되지 않는 것은 이수진 의원 등이 제시한 개정안처럼 법정 최고금리 인하뿐 아니라 처벌도 함께 제안됐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오히려 법정 최고금리를 상향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법정 최고금리 하향이 포함된 법안은 한동안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자제한법 일부개정안과 함께 불법사금융 처벌 강화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단속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 게티이미지뱅크
이자제한법 일부개정안과 함께 불법사금융 처벌 강화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단속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 게티이미지뱅크

유명무실한 사금융 처벌법

여기다 처벌 강화에만 집중한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나오기도 했다. 현행법은 법정 최고이자율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이자계약을 무효로 하고, 채무자가 최고이자율을 초과하는 이자를 지급한 경우 초과 지급된 이자는 원본에 충당하되 남은 금액이 있으면 반환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이재명 의원 등 11인은 법정 최고이자율을 초과하는 경우, 이자 계약 전부를 무효화 하고, 이자율 2배를 초과하게 되면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 전부를 무효화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징역과 벌금의 강화를 넘어 법정 최고이자율을 어겼을 경우 원금 회수 자체에 리스크가 생기는 처벌 강화 법안이다.

하지만 현행 이자제한법의 처벌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처벌을 더 강화한다고 해서 계도 효과가 있겠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불법사금융 시장 자체가 이미 음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의 법안 개정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연구원 윤형호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대부업법 위반에 대한 기소율이 낮고, 기소를 하더라도 불구속 상태에서 약식재판을 받기 때문에 신체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아 대부업법 처벌 위력이 떨어진다"며 기존의 처벌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2012년 불법사금융 특별단속을 하면서 검찰과 경찰이 9,656명을 검거하고 7,882건을 기소한 전례가 있지만, 당시 실제로 법원에서 처리한 건수는 1,864명에 그쳤다. 

그 원인에 대해 윤 연구위원은 “불법사금융업자들은 영업사원을 앞에 내세우고, 부실 및 이중 허위채권서류를 작성하고, 자금거래는 대포통장과 현금수령 등을 사용한다”며 “경찰이 수사를 통해 피고소인을 특정하고 이자율 위반과 같은 범죄를 입증하여 기소송치를 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불법 사금융 업자는 약 6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매년 1,000~2,000건의 사건이 기소된다. 이 중 무죄 및 기타와 벌금형이 65%, 집행유예가 28.9%, 징역형은 4.9%에 불과해 법적 처벌에 의한 불법 사금융 억제효과는 사실상 미미한 수준이다. 아울러 불법 사금융 재범자에 대해서도 징역형보다 집행유예 판결이 많다. 이처럼 관대한 판결 때문에 재범률도 30%가 넘는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처벌의 강도를 높이고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도입해 불법 사금융의 공급 자체를 억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법집행기관의 검거노력과 신체적, 경제적 처벌수준이 낮기 때문에 불법 사금융 공급을 억제하기는 쉽지 않다. 법 개정 뿐 아니라 사금융 업계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근거자료 및 출처

이자제한법

2014. 01. 14 국가법령정보센터 

법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본 불법사금융 시장의 수요와 공급

2016. 09. 01 서울도시연구 제17권 제3호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수진의원 등 10인)

2021. 11. 25 의안정보시스템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박완수의원 등 10인)
2020. 12. 18 의안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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