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정부가 마련할 수 있는 대책 없어… 계약 앞 둔 세입자 다주택 집주인 주의해야”
보증금 피해 방지 위해 집주인과 세입자간 전세거래 중간 단계에 신탁회사 등 개입 필요

최근 집값 하락으로 인해 역전세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뉴시스
최근 집값 하락으로 인해 역전세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7회에 걸쳐 이뤄진 금리인상 여파로 집값과 전세가격이 일제히 하락하면서 역전세난도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역전세난으로 인해 전세를 찾는 신규 세입자가 줄어들면서 일부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자 곳곳에선 역월세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

역월세는 집주인이 임대차 계약 유지‧갱신 조건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세입자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이때 집주인은 통상 세입자의 대출이자 증가분을 돌려주곤 한다.

역전세난은 집주인 뿐만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위험요소로 다가온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해 세입자의 이사 시기가 늦어지고 자칫 양측간 법정소송으로까지 번지면서 예상 외의 시간·비용이 소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역전세의 경우 전세가율 90% 이상에 해당돼 자칫 ‘깡통전세(70~80%)’보다 전세보증금을 떼일 위험성이 더 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1월 5억1,457만원을 기록한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같은 해 12월 4억6,813만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시기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3억1,947만원에서 2억8,505만원까지 내려왔다.

이달치 집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난 13일 한은이 올해 첫 금리인상을 단행한 만큼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전세가격은 이보다 더 내려갔을 가능성이 크다.

역전세난으로 인해 월세로 전환하는 세입자 비율도 나날이 늘고 있다.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의 경우 전세에서 월세로 옮기는 비중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대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확정일자를 받은 서울 전체 주택 임대물건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인 57%로 집계됐다. 이는 이전 월세비중이 가장 높았던 지난해 5월(57%)과 동일한 수준이다.

지난해 5월 한은이 금리를 기존 대비 1.75bp 인상하자 서울 지역 월세 비중은 57%까지 치솟았다. 이후 같은 해 6월 52%, 7월 53%, 8월 54%, 9월 55%, 10월 52%, 11월 54%를 기록하다가 12월에 다시 57%까지 올랐다.

대법원이 집계한 작년 12월 서울 지역 전체 전월세 거래량은 6만5,287건이다. 이 가운데 전세는 2만7,935건, 월세는 3만7,352건으로 전세 대비 약 1만건 더 많았다.

이처럼 시장 내에서 역전세난으로 인해 적색 경고가 켜지자 일각에서는 사태가 더욱 커지기 전에 정부가 집주인 대상 세제완화 및 대출지원, 세입자 피해 보호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역전세난 속에서 월세로 눈을 돌리는 세입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 뉴시스
최근 역전세난 속에서 월세로 눈을 돌리는 세입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 뉴시스

◇ 전문가들 “현재 마땅한 대안 없어… 향후 같은 피해 막기 위한 대책 마련돼야”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동안 전세자금대출이 무모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라며 “서민지원 대출이라는 점에서 제한 없이 취급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금리인상 시기에는 오히려 부메랑(이자부담)으로 되돌아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빚을 빚으로 갚는 구조가 돼버렸다”며 “전세제도 자체를 없앨 수 없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전세자금대출 또한 주택담보대출(LTV 70~80% 수준)처럼 대출 규모를 축소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집주인에 대한 세제완화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대출지원은 오히려 부작용만 더할 수 있다”면서 “자산 규모가 큰 상위권 다주택자를 제외한 다주택자들은 이미 감당하는 이자액도 큰 상황인데 여기에 대출 지원까지 하면 이자부담만 불어난다”고 우려했다.

또 “설령 집주인이 대출 지원을 받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준다해도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가능성은 더 적어 진다”며 “이는 집주인이 채무가 발생했기 때문인데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집주인이 채무가 있는 주택으로 어느 누가 전세를 들어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송승현 대표는 집주인과 세입자간 전세거래시 중간보증기관을 투입시켜 거래 과정을 투명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현 전세거래는 집주인과 세입자간 직거래로 사(私)금융과 마찬가지인 상태”라며 “정부는 세입자 피해를 막기 위해 전세거래 중간 과정에 에스크로‧신탁회사 등 중간보증기관을 투입시켜 이들이 세입자로부터 받은 보증금 집주인의 체납상태‧부채현황‧주택보유수 등을 확인한 뒤 집주인에게 지급하는 형태로 시장을 형성하는 방안을 고려해봄직하다”고 강조했다.

이광수 미래에셋대우증권 수석연구원은 “현 상황에서 역전세난과 관련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은 없어 보인다”면서도 “허나 향후 또 다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세입자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현 상황에서 세입자는 다주택자인 집주인들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며 “고자산가에 속한 극히 일부 다주택자를 제외한 다주택자 대부분은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자기돈 마냥 사용해 새 집을 사고 이를 다시 전세를 주는데 활용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는 제도 정비를 통해 역전세난 시기에 예상되는 세입자 피해를 막을 필요가 있다”며 “개인 임대인의 보증보험 의무 가입, 공공 신탁회사 설립 등이 그 예”라고 제안했다.

이어서 “예를 들면 국가가 신탁회사를 설립해 전세계약 과정에서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은 후 그 금액의 50%만 집주인에게 주고 나머지 50%는 운용한 뒤 발생하는 이자수익을 집주인에게 추가 지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사전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한마디로 현재 정부가 나설 방법 자체가 없다”며 “일이 터지기 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지 일 터진 뒤에야 하는 사후적 대응은 아무 효과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전세를 내놓은 집주인 대부분은 다주택자로 이들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며 “굳이 정부가 나서서 혈세로 이들을 지원할 명분이 없다”고 강조했다.

세입자 지원 방안에 대해선 “현행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하 ‘보증보험’)을 임대차계약 완료 후가 아닌 계약 이전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정부‧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 누누이 지적해 왔으나 실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만약 계약 이전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면 세입자들은 HUG를 통해 전세계약하려는 주택의 전체 보증금 중 몇 퍼센트만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지 알 수 있게 된다”며 “이렇게 된다면 집주인들은 보증금 액수를 낮출 수 밖에 없게 되고 세입자는 계약 전에 보증보험 가입 가능 규모를 예측할 수 있어 보증금을 떼일 위험도 적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근거자료 및 출처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
2023. 01. 27 한국부동산원
확정일자 전월세 현황
2023. 01. 27 대법원등기정보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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