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세입자 지원 위해서도 전세퇴거자금대출 DSR‧LTV 규제 한시적 완화해야”
시민단체 “보증금 제멋대로 쓴 집주인 책임… 대출규제 완화시 ‘도덕적 해이‘ 발생”

역전세난으로 인해 세입자에게 제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 / 뉴시스
역전세난으로 인해 세입자에게 제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올해 4월 중순경 전세계약 만료를 앞둔 임차인 A씨는 지난 1월 말 임대인(집주인) B씨에게 전세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계약만료일에 맞춰 이사를 가겠다며 보증금 반환을 준비해달라고 문자메시지로 통보했다.

이에 B씨는 “알겠다”며 신규 임차인을 구하는 등 준비에 나서겠다고 답했다. 새로 이사갈 집을 알아보던 A씨는 공인중개사 C씨로부터 최근 역전세난이 심해 전세보증금을 제때 못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혹시라도 모르니 다시 B씨에게 제 날짜에 전세보증금을 줄 수 있는지 여부 등을 확인해 보라는 조언을 듣게 됐다.

조언을 받아들인 A씨는 B씨에게 다시 연락해 전세보증금 반환 일정 등을 문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B씨는 “노력하고 있으나 최근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없다”면서 “한 번에 큰 돈(보증금)을 줄 만한 여력이 없어 신규 임차인이 구해져야지만 보증금을 줄 수 있다”며 말을 바꿨다.

금리인상 영향으로 집값에 이어 전세가격까지 급락하면서 최근 ‘역전세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때문에 위 사례처럼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지난 1월말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줄 수 있도록 전세퇴거자금대출 한도를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세퇴거자금대출의 경우 기존 대출과 마찬가지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 등이 적용됨에 따라 이미 다른 대출을 받은 집주인의 경우 실제 지원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적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는 집주인에 대한 대출 규제가 풀릴수록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 최근 2개월 간 임차권등기신청 부동산 4,000건 돌파… 전년 동기 대비 3.5배↑

최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2023년 1월)’에 따르면 올 1월말 기준 전국 주택종합 전세가격 변동률은 전달 대비 -2.29%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세종이 전세가격 변동률이 -4.22%로 가장 높았고 △수도권은 -3.23% △서울 -2.95% △5대광역시 -2.14% △지방 -1.40% 등이다. 

주택유형별로는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전달에 비해 가장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1월말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3.32%로, 주택종합 평균치 -2.29%를 상회했다. 

특히 수도권 및 서울의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평균 변동률을 뛰어넘었다. 수도권의 경우 -4.65%, 서울은 -4.56%를 각각 기록했다.

전세가격 급락으로 ‘역전세난’ 문제가 대두되자 봄 이사철을 앞두고 기존 전세세입자와 집주인간 보증금을 둘러싼 분쟁이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가 대법원등기정보광장의 부동산 등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작년 12월과 올해 1월 집합건물(아파트·빌라·오피스텔·연립주택 등)에 대한 임차권등기가 신청된 부동산 수는 전국 총 4,44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12월 및 2022년 1월 수치와 비교해 3.5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임차권등기는 임대차계약만료 후에도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법원의 명령을 받아 신청하는 것이다. 법원이 임차권등기 신청을 받아들이면 세입자는 이사 후에도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집주인들의 전세보증금 미반환사례가 점점 늘자 정치권 일각과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세퇴거자금대출의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앞서 지난해 12월 29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겸 수석부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는 다주택자 규제 완화 정책만 내놓고 전세가격 안정을 위한 대책은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다”며 “역전세난으로 인해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고 집주인들은 세입자에게 역으로 월세를 주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전세퇴거자금대출에 적용되는 DSR·LTV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며 “만약 부실을 막기 위해 보증이 필요하다면 HF(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시행 중인 전세퇴거자금대출을 단기 보증해주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김병욱 의원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세가격 하락에 보증금 미반환 사태까지 겹치면서 자칫 전세시장이 연착륙이 아닌 경착륙에 이를 수 있다며 전세퇴거자금대출 규제 완화로 임대인의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세퇴거자금 대출은 주요 시중은행에서 신청할 수 있다. 임대차계약이 1년 이상이 된 임대인이 신청할 수 있으며 △임대차 계약 만료시 △처음 계약 이후 2년이 지나 합의에 따라 계약이 해지된 때 △9억원 초과 주택은 전세퇴거자금을 받은 뒤 3달 이내 실거주 입주 가능해야 △법인임대사업자 및 다주택자(투기지역 및 조정대상지역 1주택자 또는 일시적 2주택자는 가능)에 속하지 않는 임대인 등의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 

집주인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상품인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취급하는 HUG / 뉴시스
집주인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상품인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취급하는 HUG / 뉴시스

◇ 전문가 “전세퇴거자금대출 규제 완화, 집주인·세입자 양측 동시 지원 수단”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전세퇴거자금대출의 경우 은행이 담보 관련 1순위가 안 될 경우 실행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외에도 LTV 등으로 인해 전세퇴거자금 대출이 여의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전세를 끼고 대출을 받은 집주인들이 흔한데 이 경우 선순위 대출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금융기관에서 전세퇴거자금대출을 해주려 하지 않는다”며 “여기에 계약만료로 세입자가 나가야 대출이 이뤄지는데 이같은 미스 매칭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은행에서 전세계약서를 토대로 집주인이 아닌 임차인 계좌로 대출금을 넣어주면 이를 집주인이 유용할 이유도 없고 보증금 반환금액으로만 쓰이게 된다”며 일각에서 제기한 ‘도덕적 해이 우려’에 반박했다.

그러면서 “집주인에게 다른 대출이 있을 경우 전세퇴거자금대출에 DSR 규제 등을 적용하면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되므로 실효성 자체가 없어진다”며 “때문에 한시적으로라도 규제를 완화해 집주인의 숨통을 트이게 해줘야 보증금 미반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은행이 모든 집주인을 상대로 무조건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며 “압류‧가압류‧근저당 등이 설정된 전세는 아무리 규제를 푼다 해도 절대 대출이 실행되지 않는다. 규제완화가 곧 은행의 무조건적인 대출 실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 부동산팀장은 “최근 증가한 역전세난 문제로 인해 보증금 반환 목적을 위해 부분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면서 “다만 그 목적이 확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금 전세시장 등 부동산 시장은 경착륙이 연착륙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전세퇴거자금대출 규제를 일부 완화해야만 임대인이 이를 실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이는 곧 전세시장이 지나치게 급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집주인의 ‘도덕적 해이’ 논란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문제제기”라면서도 “단 전세퇴거자금대출은 공짜로 지원하는게 아니다. 현재 금리 수준의 이자부담을 집주인이 감당해야 하므로 이를 ‘도덕적 해이’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라고 밝혔다.

뒤이어 “전세퇴거자금대출의 한시적 DSR‧LTV 규제 완화는 임대인만이 아닌 세입자도 지원하는 정책”이라며 “세입자 입장에서는 보증금을 제때 돌려 받아야만 새로운 전세계약을 체결하거나 집을 살 수 있다. 이는 곧 매매‧전세 등 부동산 거래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부연했다.

지역별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현황 / 법원 등기정보광장
지역별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현황 / 법원 등기정보광장

◇ 시민단체 “집주인, 보증금 내 돈처럼 사용… 규제완화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임대차계약만료를 앞두고 신규 세입자를 못 구하거나 대출을 받지 못하는 등 돈 없다는 이유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전세보증금은 계약만료시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부채 성격이 강한데 집주인들은 그간 이를 내 돈 마냥 쓰고는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정부가 대출 관련 규제를 완화할수록 집주인들은 이를 보증금 반환 등에 사용하기 보다는 집을 추가 구매해 새로운 전세로 돌리는 데 사용해 왔다”며 “전세퇴거자금대출 규제까지 완화한다면 보증금에 대한 집주인들의 ‘도덕적 해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편 작년 말 전세퇴거자금대출 규제 완화를 거론했던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우선 알아본 결과 전세퇴거자금 대출은 각 은행들의 자체 상품으로 정부가 정책적으로 시행하는 금융상품은 아니다”라며 “현재 정부가 (규제완화 등) 추가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구체적으로 전세퇴거자금대출 규제 완화와 관련해 추가로 진행 중인 사안은 없다”면서도 “다만 역전세난 문제가 전세사기로 이어지는 등 밀접한 관계에 있기에 의원실에서는 이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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