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이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일부 아파트에서도 부실공사 논란이 발생하자 LH는 자체 조사에 착수했고 최근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전국 91개 아파트 단지 중 15개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경기 양주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의 경우 154개 기둥 전부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여기에 LH가 설계‧감리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이 검증된 업체보다는 LH 퇴직자가 설립하거나 고용된 업체 위주로 선정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전관특혜’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촉발된 이른바 ‘LH 아파트 부실공사 대란’이 터지면서 당정은 부랴부랴 사태 수습 및 재발 방지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먼저 발등에 불이 떨어진 LH는 △철근 누락 15개 현장 설계·시공·감리업체 고발 △감리업체 등 선정 과정 투명공개 △입주예정자 대상 계약금 환불 △무량판 구조 가급적 지양 △부실공사 업체 대상 ‘원스트라이크 원아웃’ 적용 등을 내놓았다.

감사원과 공정거래위원회는 LH의 전관특혜 의혹에 대한 감사 및 직권조사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시공 중인 현장 105곳과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188곳 등 민간아파트 총 293곳을 대상으로 철근 누락 여부를 추가 조사할 방침이다. 

이달 초 ‘철근 누락 아파트 TF’를 출범한 국민의힘은 부실공사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회사가 폐업할 수준의 법 제도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당정이 발표한 개선책을 종합하자면 비록 소는 잃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외양간은 대대적으로 수리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들은 이번 ‘LH 아파트 부실공사 대란’과 유사한 사례를 이미 과거에 수차례 경험한 바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지난 1995년 6월 29일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사태다.

삼풍백화점 역시 부실이 드러난 LH 아파트들과 마찬가지로 무량판 구조를 설계에 적용했다는 점, 사고 이후 대대적인 개선책이 시행된 점 등 비슷한 부분이 많다.

삼풍백화점 사태로 수많은 인명이 숨지게 되자 정치권,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 등 각계 각층은 정부에 대대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국내 건설업계는 대격변 수준의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먼저 그간 국내 건축물 대부분에 적용됐던 허용용력 설계법(WSD)이 사라지고 삼풍백화점 사태를 기점으로 극한강도 설계법이나 한계상태 설계법으로 모두 바뀌게 됐다.

허용용력 설계법은 응력(외력이 작용했을 때 이 힘에 저항하기 위해 내부에서 발생하는 힘) 계산이 쉽다는 장점이 있으나 부재의 강도를 알기 어렵고 파괴에 대한 두 재료의 안전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극한강도설계법은 확률 개념과 재료가 파괴될 때까지의 최대 능력을 설계에 반영해 파괴시 안전성을 비교적 확실히 확보할 수 있다. 한계상태설계법은 부분안전계수를 사용해 하중과 각 재료에 대한 특성을 반영해 안전성과 사용성을 각각 극한한계상태 및 사용한계상태까지 검토해 확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제도 및 법률적 부분도 대폭 개선됐다. 정부는 삼풍백화점 사태 이후 건축법 조항을 변경해 건축물 설계, 시공‧공사 감리 부실 등으로 공공에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에 대한 처벌을 고의에 의한 경우와 업무상 과실에 의한 경우로 구분토록 했다. 아울러 이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한 때에는 가중된 형을 부과하도록 해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고 보다 건실한 건축공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 했다.

또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전국 3만여개 교량, 터널, 댐, 지하철, 다중이용건축물 등 주요 시설물을 상대로 주기적으로 안전점검하도록 제도화했다.

여기에 △책임감리제도 도입 △벌점에 따라 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부실벌점제도 시행 △시설물 설계 시공 진단 보수 등 생애주기 이력을 전산화한 ‘시설물 정보체계’ 구축 등도 함께 시행됨에 따라 국내 건설업 환경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화가 발생했다.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를 포함한 ‘LH 아파트 부실 대란’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만약 지하주차장 위에 많은 세대가 입주한 건물이 있었다면 제2의 삼풍백화점 사태로 불릴 만큼 대규모 인명 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정은 과거 삼풍백화점 사태 이전과 이후를 반면교사 삼아 안전규제 강화와 대규모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

왜 다수의 공사 현장에서 철근 누락이 발생했는지, 왜 발주처·감리업체·시공사 모두 부실에 눈을 가렸는지, 국민 주거안정을 책임지는 LH가 왜 전관특혜를 통해 업체를 선정했는지, 부실공사 적발시 처벌·제재가 미흡한 것은 아닌지 등 모든 원인과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히 철저한 검증을 통해 가려내야 한다.

또한 부실 요인을 가려내는 감리 절차 및 규정에 대한 개선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LH가 철근 누락 사실을 발표한 15개 단지 대부분이 법정 기준보다 적은 인력이 감리 업무를 수행한데다 10개 단지는 LH 퇴직자를 고용한 전관업체 10곳이 감리를 맡는 등 감리 프로세스의 전반적인 신뢰도가 저하됐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당정은 ‘LH 아파트 부실공사 대란’을 '제2의 삼풍백화점 사태'라 인식하고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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