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혁명의 상징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투사의 길을 걸었고, 군사정권에선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국난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던 헌신이 오늘을 만들었다. 이제 나라 잃은 설움도, 국가 권력의 횡포도 없다. 국민 승리의 시대다. 하지만 청년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설 곳이 없다. 현실의 높은 장벽에 부딪혔다. 이들은 말한다. “청년이 위기다.” 이들이 묻는다. “청년을 구할 방법은 없는가.” 이들의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역할이 아닐까. [편집자주]

 

청년들의 결혼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미혼 직장 여성 10명 중 6명은 결혼 계획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김지영(34) 씨는 세 살 위인 남편과 슬하에 어린 딸을 둔 전업주부다. 처음부터 전업주부가 된 것은 아니다. 홍보대행사를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이른바 독박육아를 시작하면서, IT계열의 중견기업에 다니고 있는 남편이 가정수입을 책임지게 됐다. 서울 변두리 24평 아파트가 세 식구의 보금자리다. 평범해보였던 가정에 불안감이 싹튼 것은 김씨가 이상증세를 보이면서부터다. 친정 엄마로, 결혼 전 남편의 애인으로 빙의했다.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는 김씨가 정신과 의사를 찾으면서 시작한다.

◇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십시오’

김씨가 정신과 상담을 통해 털어놓은 삶의 비애는 우리 시대 30대 여성들의 삶을 대변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사회 곳곳에서 차별을 받았다. 특히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상실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소설을 읽은 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낀다는 것이 달랐다. 더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십시오’라는 메시지와 함께 책을 선물했다. 책은 80만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하며 차별받는 여성들을 안아달라 당부했다. <노회찬 원내대표 SNS>

그해 연말 문재인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첫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지금까지는 결혼·출산·육아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출산장려정책을 해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성들의 일과 삶을 억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출산정책 방향을 ‘워라벨(Work-life balance)’로 맞췄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본 것이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춘 과거의 출산대책과는 달랐다. 고심한 결과는 지난달 5일 공개됐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출생부터 아동의 건강한 성장 지원 ▲아이와 함께하는 일·생활 균형 ▲모든 아동과 가족에 대한 차별 없는 지원 ▲청년의 평등한 출발 지원 ▲제대로 쓰는 재정, 효율적 행정 지원체계 확립을 5대 개혁방향으로 설정한 뒤 △특수고용직·자영업자 출산휴가급여지급(90일 동안 월 50만원 지급) △1세 아동 의료비 제로화(본인부담 평균액 5만6,000원) △아이돌보미 지원대상 확대(중위소득 150%이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육아휴직 포함 최대 2년)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 급여(상한액 250만원) △배우자 유급출산휴가(유급 10일) 등의 대책을 내놨다.

평가는 반반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시도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기존 제도에서 보완·확대한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유아휴직이 일례다. 인력난을 겪고 있는 소규모 회사의 근로자들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근로자들과 달리 정부가 발표한 대책대로 쉴 수가 없다는 것, 그게 현실이라는 얘기다. 저출산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서민층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아쉽다”고 인정했다. 저출산위는 오는 10월 수정안을 다시 발표할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출산율을 목표로 한 저출산 대책을 아이와 부모의 삶의 질 개선으로 패러다임 전환에 집중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갈 길이 멀다. 결혼기피 현상부터 잡아야 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지난해 12월 발간한 <청년 사회·경제 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Ⅱ>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은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40.7%에 달했다.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도 5.3%를 차지했다. 해당 조사는 그해 8월18일부터 9월22일까지 개별방문접촉을 통해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청년(만 15~39세) 2,714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지난달 4일 한국경제연구원도 미혼 직장 여성(20~40대) 10명 중 6명은 결혼 계획이 없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 워라벨 이전에 여성의 고용 안정부터

그래서 다시 일자리 정책을 꼬집는다. 단순히 취업률을 떠나서 미혼 여성들의 소득과 근로여건에 대한 불만 해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2일 공동으로 발표한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전체 여성 임금근로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여성의 결혼과 출산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하는 엄마들’의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19대 국회 청년비례대표 출신 장하나 전 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원의 제안으로 지난해 6월 창립된 비영리단체다. 장하나 전 의원은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선 당사자성이 구현돼야 한다”면서 “정치엘리트들은 모르는 게 없지만 정치적 요구는 절실하지 않고는 실현되지 않는다. 당사자는 모르는 게 없으면서 절실하기까지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5년 2월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의원 임기 중에 출산했다. 당시 그의 나이 38세였다. 예비엄마들을 위한 정책은 출산·육아 선배들의 목소리가 더 반가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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