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ESS 화재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있는 모습. 하지만 이후에도 ESS 화재가 추가로 발생하면서 현재 2차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 6월, ESS 화재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있는 모습. 하지만 이후에도 ESS 화재가 추가로 발생하면서 현재 2차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망한 신산업으로 주목을 받았던 ESS(에너지저장장치) 업계가 씁쓸한 분위기 속에 연말을 맞이하게 됐다. ‘ESS 화재’ 사태의 후폭풍이 여전한 가운데, 또 다른 악재까지 작용하면서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 전망 밝던 ESS, 화재에 발목

ESS는 태양광 및 풍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저장한 뒤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설비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시간대나 날씨에 따라 공급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 단점인데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때문에 ESS는 친환경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추세에 발맞춰 유망한 신산업으로 많은 주목과 기대를 받았다. 전기차 배터리와 함께 에너지 분야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2차전지(배터리) 시장의 두 축을 형성해온 주인공이었다.

특히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ESS 보급은 더욱 속도를 냈다. 2016년만 해도 전국에 300개가 채 되지 않았던 ESS는 지난해 1,500개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뜻밖의 암초가 ESS의 발목을 잡았다. 2017년 8월부터 시작된 ESS 화재가 지난 10월까지 무려 28차례나 계속되면서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긴급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했으나 이후에도 화재는 계속됐다. 결국 정부는 올해 초 다중이용시설 ESS에 대해 가동중단을 요청했고, 민간사업장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가동중단 및 충전율 70% 제한 조치를 권고했다. 아울러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조사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두 차례 연기된 끝에 결과 발표가 이뤄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명확한 화재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ESS 화재의 원인을 특정 한 가지로 단정 지을 수 없으며, 제조·설치·관리 등 전반에 걸쳐 복합적인 원인이 확인됐다는 게 결론이었다.

이처럼 명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이후에도 ESS 화재가 잇따르면서 정부는 2차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재차 조사를 진행했다. 2차 조사 결과는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업계에 일각에서는 2차 조사위원회가 ESS 화재 원인을 배터리 제조결함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당국은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연말을 맞은 ESS 업계의 분위기는 다시 긴장감에 휩싸이고 있다. 2차 조사위원회 조사 대상에 포함된 LG화학과 삼성SDI는 이와 관련된 소명자료를 제출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2차 조사위원회가 실제로 배터리 제조결함이란 결론을 내릴 경우 후폭풍은 상당할 전망이다. 2차 조사 결과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물론, 1차 조사와 다른 결론이 내려진데 따른 혼란과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한 1차 조사 결과에서 책임을 다소 덜었던 각 ESS 업체는 더욱 무거운 책임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내 ESS 업계는 화재와 관련해 고강도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신뢰 회복에 공을 들여왔다. ESS 화재 원인이 제조사 결함으로 드러날 경우, 이 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발표된 ESS 화재 조사 결과는 명확한 원인을 지목하지 못한 채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화재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지난 6월 발표된 ESS 화재 조사 결과는 명확한 원인을 지목하지 못한 채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화재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산업통상자원부

◇ 악재의 연속… 2차 결과 발표 임박에 긴장감↑

잇단 화재에 따른 후폭풍 속에 국내 ESS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다. 기존 설비마저 멈춰서 있는 마당에 신규 발주는 기대조차 하기 어렵다. 실제 올 상반기 ESS 신규 수주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하반기엔 아예 실적이 전무한 수준이다.

문제는 화재 외에 또 다른 악재도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ESS 시장이 얼어붙은 이유가 비단 화재 논란에 그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ESS 시장의 성장을 도모시킬 요인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먼저, ESS에 대한 충전요금 할인제도 기간이 오는 2020년 말을 기해 끝날 예정인 가운데, 연장 가능성이 낮게 점쳐지고 있다. 대규모 적자를 마주하고 있는 한전이 11개 전기요금 특례할인의 연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SS에 대한 할인제도는 그중에서도 적지 않은 규모를 차지한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격 폭락 또한 ESS 시장의 악재로 꼽힌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하고, 부족분은 REC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채워야 한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는 태양광 발전 등을 통해 바로 이 REC를 확보하게 되는데, REC 판매 역시 주요 수입원으로 꼽혔다.

그런데 최근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REC 시장은 수요와 공급 사이의 균형을 잃었다. 이에 따라 REC 가격 폭락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ESS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처럼 ESS 시장을 둘러싼 악재가 거듭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업계는 ESS 시장 정상화를 위해 분주한 행보를 이어각 있다. 생산 인프라와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만큼, 화재 논란을 해소하고 관련 정책이 적절히 뒷받침되면 신성장동력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 6월 ESS 화재 1차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종합안전강화대책 및 ESS 산업생태계 경쟁력 지원방안’을 내놓으며 ESS 산업 육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업계 역시 이에 호응해 강도 높은 안전 대책을 내놓는 한편, ‘ESS 생태계 육성 통합협의회’를 출범시키는 등 ESS 산업 생태계 복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ESS 업계는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연말을 맞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 내년 전망도 어두운 쪽에 더 가까운 게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선 2차 조사위원회의 결론이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라며 “당장은 화재를 둘러싼 논란을 최대한 빠르게 털어내는 것이 업계의 가장 큰 당면과제인데, 그 이후에도 풀어야할 과제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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