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대통령실-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대통령실-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이태원 압사 참사가 일어난 지 닷새째인 2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도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들렀다. 조문을 위해서다. 이런 가운데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치안당국의 초동대응 부실이 드러났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그러나 행정부의 수장인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없었다. 대통령실 역시 여전히 사과에 미온적인 입장이다. 

◇ ‘112 녹취록’ 공개되며 정부 책임론 커져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쯤 서울시청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지난달 31일 서울시청광장, 지난 1일은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윤 대통령은 3일 연속 희생자 조문을 간 셈이다. 대통령이 같은 참사 조문을 몇 차례나 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112 녹취록 공개로 추모에 무게가 실렸던 정국이 들끓기 시작했다. 경찰은 전날 참사 전에 있었던 112 신고 11건을 공개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여러 차례 들어왔음에도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이태원 일대에서 접수된 신고 건수가 11건이 아니라 79건이라는 것도 전해졌다. 

이러다보니 야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날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는 윤 대통령에게 이 장관과 윤 청장 등 책임자 파면을 요구했다. 정의당 역시 이 장관과 윤 청장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희생자 애도와 사고 수습이 우선이라며 초당적 협력을 강조했지만, 치안당국의 부실 대응이 드러나자 이 같이 공세를 펼쳤다. 

국민의힘도 112 녹취록 파장이 커지자 정부 책임론을 일부 수긍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경찰이 제대로 된 현장 조치를 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사태 해결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현 시점에서 인사 조치는 이르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 책임론이 커지면서 국정운영의 컨트롤타워인 윤 대통령의 사과 여부에도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참사 직후인 지난달 30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고 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전날(1일) 희생자의 빈소를 찾아 ‘국가가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죄송하다’고 말했다고는 한다. 

그러나 대국민 사과 메시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이날 오후 대통령의 사과 여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여러 회의 때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계시고, 월요일 확대주례회동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질 대통령으로서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며 윤 대통령이 전날 희생자 빈소에서 유족에게 ‘국가가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대통령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계신다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전날에도 사과 여부에 ‘진상 규명 후’라고 답한 바 있다. 어느 정도 사태의 책임 소재가 분명해져야 대통령의 사과도 검토한다는 의미다. 

◇ “윤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가 먼저”

6개월여 간 국정운영 스타일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사과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8월 초 수도권 폭우 당시 퇴근 논란에 휩싸였을 때 이틀 만에 “정부를 대표해 죄송하다”고 했으나, 대통령실이 “굳이 사과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지난 9월 말 해외순방 당시 불거진 ‘이XX’ 발언 논란은 여전히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야권에서는 해당 논란 뿐 아니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수사(야당 탄압) 등에 대해 사과하라면서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사과할 일 한 적 없다”고 맞섰다. 

정치인이 아닌 법률가 출신인 윤 대통령이 정확한 진상 규명 후 책임소재가 명확히 밝혀져야 사과를 결정할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정치인들은 사고가 벌어졌을 경우 사과를 하지만, 법률가 출신인 윤 대통령은 이같은 사고방식에 익숙치 않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사과를 한다면 이상민 장관이나 윤희근 경찰청장 사퇴 이후, 혹은 어느 정도 사태가 정리됐을 때라는 게 정치권에서 나오는 관측이다. 

대통령의 사과가 늦어질수록 비판의 목소리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사 14일 만인 2014년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처음으로 사과했다. 박 전 대통령은 “뭐라 사죄를 드려야 아픔이 위로받을지 가슴이 아프다”고 했지만, 국무회의 석상을 빌려 사과를 하는 등의 문제로 진정성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참사 발생 34일 만인 5월 19일 대국민 담화를 열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하지만 그 사이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폭락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첫 사과를 했던 당시(4월 5주차 조사) 59%였던 지지율이 두 번째 사과(5월 2주차 조사)할 때는 46%로 떨어졌다. 그 사이에 11%p(59%→46%) 하락한 셈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사과 시점에도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는 달리 임기 초 지지율이 50~60%대였음에도 지지율이 흔들렸다. 게다가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이 정부 책임론을 우려한 여론 동향 문건을 만든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가중되고 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엇보다 대통령의 진심어린 대국민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데일리 오피니언 제116호(2014년 5월 3주) - 대국민 담화에 대한 의견
2014. 05. 22 한국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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