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조문하고 있다./뉴시스
 4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조문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 단어 하나하나까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본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야당으로부터 “검사로서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가운데 한덕수 총리는 ‘사고’와 ‘참사’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 총리는 지난 3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일한의원연맹 합동총회에서 축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사고로 지칭하는 데 대해 “오늘 여기서도 의원님들이 사고라고 표현했다”며 “외신 기자들 앞에서 제가 ‘사고(incident)’라고 말한 적 없다. ‘참사(disaster)’라고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외신기자 브리핑룸 배경에 ‘한덕수 국무총리 이태원 사고 외신 브리핑’이라는 한글 제목과 함께 영어로 ‘Itaewon Incident(이태원 사고)’라는 표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4일 이를 적시하며 “자신과 무관하다고 말하실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김현정 민주당 대변인은 “뻔뻔하다”며 “대통령께서 본인이 한 말도 한 적 없다고 하니, 총리마저 따라하는 것이냐. 참사로 인식했다면 외신기자회견에서 웃고 농담할 수 있었겠느냐”고 맹폭했습니다.

Q. 정부는 참사와 사고 중 어떤 표현을 사용하고 있나요?

A. 행정안전부는 이태원 참사 하루 뒤인 지난달 30일 전국 17개 시‧도에 △ 참사→사고 △ 희생자→사망자 △ 피해자→부상자라고 표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바 있습니다. ‘합동분향소 설치 협조’ 공문에서도 제단 중앙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 쓰고 주변을 국화꽃 등으로 장식하도록 안내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2일 ‘사고’ ‘사망자’ 표현은 권고 사항으로 ‘참사’ ‘희생자’ ‘피해자’를 사용해도 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Q. 이 용어 사용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A. 일각에서는 참사 희생자를 사고 사망자로 표현하면서 정부의 책임을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사가 아니라 사고라고 하라’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고 하라’ ‘영정 사진 붙이지 마라’ ‘위패 생략하라’ 지금 희생자와 부상자들이, 또 그 가족들이 울부짖는 이 와중에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공문에다 써서 전국의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에 지시를 하느냐”며 “어떻게든 국민들의 분노를 줄이고 자신들의 책임을 경감하기 위한 꼼수다. 고통 속에서 오열하는 국민 앞에서 이러한 꼼수를 쓰면서 우리 유족과 피해자들을 우롱해서야 되겠느냐”고 비판했습니다.

위성곤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1일 “사망자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이다. 희생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거나 다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을 이야기 한다”며 “이태원 참사 155분의 희생자가 그냥 죽은 사람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직원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합동분향소 현수막을 기존 '이태원 사고 사망자'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교체했다./뉴시스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직원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합동분향소 현수막을 기존 '이태원 사고 사망자'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교체했다./뉴시스

Q. 이제 ‘참사’ ‘희생자’라고 써도 되나요?

A. 네 정부가 권고 사항으로 수정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민주당 소속인 지역에서는 분향소 명칭을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로 변경해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Q. 정부가 ‘사고’라는 표현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이에 관해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가해자, 또 이런 책임 이런 부분이 명확하게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희생자’나 ‘피해자’ 이런 용어도 사용하지만, 저희는 그런 상황이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명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중립적인 용어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해명했습니다.

Q. 그렇다면 정부는 일괄적으로 ‘사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나요?

A. 만약 정부가 ‘사고’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면 통일성 있게 사용했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한덕수 총리는 표현에 논란이 되자 “사고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 없다”고 발뺌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와 ‘사고’를 혼용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4일 오후 한독정상회담 공동발표에서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의 공식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님께서 이 자리를 빌려 이태원 참사로 인한 희생자와 유가족에 다시 한 번 애도를 표하고, 독일 국민의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참사’라고 표현했습니다.

Q. 역대 정부는 어떤 표현을 썼나요?

A. 대체로 혼용해서 사용했으며, 특정 표현을 제지한 적은 없습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세월호 참사 모두 ‘참사’ ‘사고’ ‘희생자’ ‘사망자’가 혼용됐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외신 브리핑에 참석해 글자 없는 검은 리본을 달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국무총리실 제공)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외신 브리핑에 참석해 글자 없는 검은 리본을 달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국무총리실 제공)

Q. 검은 리본 논란은 무엇인가요?

A.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30일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등에 ‘글자 없는 검은색 리본’을 패용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통상적으로 ‘근조’나 ‘추모’라는 글자가 적힌 검은색 리본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갑자기 글자가 없는 리본을 준비해야하는 지자체가 당황하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인사혁신처는 이와 관련해 “통일성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확대되자 “애도를 표할 수 있는 검은색 리본이면 규격 등에 관계없이 착용할 수 있다”고 리본에 기준을 두지 않았습니다.

Q. 글자를 표기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A. 이 또한 특별한 문제가 없음에도 ‘글자 없는 검은색 리본’으로 제한을 두면서 기존의 리본을 거꾸로 달거나 새 리본을 주문하는 등 해프닝이 일어 논란이 됐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일 “인사혁신처는 지금 그 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리본에서 근조를 떼라’ 이러한 지시를 하느냐”며 “‘근조, 애도, 추모, 삼가 명복을 빈다’ 이 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 이것을 버젓이 공문에다가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무슨 이유와 근거로 이 같은 지시가 내려진 것인지 참으로 기괴하다”며 “근조나 추모를 표시하면 큰일 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 정부는 국가의 책임을 면피하거나 전가할 생각하지 말고, 글씨 없는 검은 리본 착용 지시를 당장 철회하기를 바란다”고 요구했습니다.

Q. 여야 의원들은 어떤 리본을 달았나요?

A. 여야 모두 글씨가 있는 리본을 달았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가슴에 달린 검은 리본에는 ‘이태원 사고 희생 애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민의힘’이라는 글자가 써있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은 대체로 ‘근조’라고 쓰인 리본을 달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후 이동 하고 있다. 검은 리본이 눈에 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후 이동 하고 있다. 검은 리본이 눈에 띈다. /뉴시스

Q. 정부는 용어도 리본도 혼용을 허가했는데, 야권이 요구하는 것은 뭔가요?

A. 국가 차원에서 ‘참사’ ‘희생자’로 용어를 사용해야한다는 주장입니다. 2일 국가인권위원회를 대상으로한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수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예를 들며 “희생자, 유가족, 국민 인권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조치를 내리기 바란다”고 요구했습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인권위가 윤석열 정부의 용어 사용부터 희생자로 바꿔야 함을 권고해야 한다. 갈등이 번지기 전에 분명히 해주는 게 인권위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명칭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 내부 상의를 해보겠다”며 “‘비참한 사고’라고 생각하면, 그걸 줄여서 얘기하면 ‘참사’가 된다고 생각하고, ‘사고’ 또는 ‘사망자’는 최대한 무색투명한 용어를 쓰고 싶다는 의사가 반영된 용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거기에 우리가 느끼는 감성, 어떤 평가 이런 것을 가미한 표현은 ‘참사’ ‘희생자’ 이런 표현”이라며 “단어 선택은 내심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용어를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통일돼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주호영 운영위원장은 “언론을 통해 가치중립적 법률용어라는 (정부 측) 설명을 봤다”며 “언론과 국민은 감정에 따른 용어를 쓸 수 있지만, 정부 측 의견을 들어보고 무엇이 맞는지 판단해달라”고 송 위원장에게 당부했습니다. 반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형 참사 과정에서 국민 기본권이 상처받은 상황”이라며 “대통령도 ‘참사’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부도 분향소 등에서 참사라고 하는 게 맞다는 긴급 성명을 내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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