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사실상 사과했지만, 야권에서는 ‘유체이탈 화법’을 지적하며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비극을 마주한 유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고 있는 국민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종교행사 등에서 비공식적으로 세 번 사과한 후 나온 첫 공식 사과다.

지난 4일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추모 위령 법회’에 참석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사고 발생 6일 만에 처음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난 5일에는 서울 서초구 백석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한국교회 이태원 참사 위로예배’에서 “꽃다운 청년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은 영원히 저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틀 째 사과의 뜻을 밝혔다.

6일에는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미사에 참석한 뒤 진행된 참모 회의에서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을 지켜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아프고 무거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고 세 번의 비공식 사과를 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기와 비공식석상에서의 사과라는 지적을 면하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7일 윤 대통령의 첫 공식 사과가 있었던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 발언 중 약 35분의 내용을 원문 그대로 공개했다. 대통령의 비공개 회의 발언을 텍스트와 현장 영상 그대로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에게 회의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하라는 대통령 지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개된 내용에는 윤 대통령이 경찰을 향해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이거예요.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요. 112 신고 안 들어와도 조치를 했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걸 제도가 미비해서 여기에 대응 못 했다고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냐 이 말이에요”라고 질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책 인사 요구에 대해서는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며 “그러니까 정확하게 가려주길 당부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미사에 참석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미사에 참석했다. /대통령실 제공

◇ 공식사과에도 민주당 “진심 없었다”

하지만 공개된 회의 내용에 대해 야권은 오히려 윤 대통령의 사과가 거짓이었다고 질타하고 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8일 “윤석열 대통령의 어제 사과에 진심은 없었다.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비공개 발언은 정부의 책임을 거부하는 대통령의 본심을 똑똑히 보여줬다”며 “정부의 책임을 일선 경찰에 전가하기 급급했다. 결국, 경찰을 희생양 삼아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고 최측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책임자에 대한 경질도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안 대변인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책임은 막연한 책임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 당시 선서했던 헌법적 책임이다. 또한, 스스로 말했듯이 ‘모든 국가 위험과 사무의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임을 명심하라”며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을 멈추고, 참사의 책임을 인정하라. 책임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시 국정조사를 수용하고 책임자를 경질해 국정 전면을 쇄신하라”고 촉구했다.

김의겸 대변인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왜 4시간 동안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고 경찰을 강하게 질타했다”며 “국정운영 무능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실 말단 행정관들에게 떠넘겨 쫓아내더니, 이태원 참사의 책임은 일선 경찰에게만 돌린다. 전형적인 하후상박식 책임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매특허”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이 이러니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한다”며 “행정안전부에서 경찰을 총지휘하겠다며 경찰국 설립을 밀어붙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책임을 거부했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의 경비와 교통 문제의 총책임자임에도 자신의 책임에는 선을 그었다. 화룡점정은 박희영 용산구청장이다. 자신은 ‘4개월 차 구청장’일 뿐이라며 ‘마음의 책임’을 지겠다는 황당한 발언을 늘어놓았다”고 질타했다.

민주당 이태원참사대책본부장인 박찬대 의원은 8일 오전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윤 대통령의 경찰 질책에 “결국은 꼬리 자르기식 발언 아닌가. 본인의 책임이라든가 통감한다든가, 장관도 그렇고 청장도 그렇고 보면 용산서장에게 다 책임을 묻는 것으로 해석이 많이 보인다”며 “제가 볼 때는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권한의 크기만큼 책임도 더 무거운 것 아닌가 생각이 된다”며 “지휘책임을 물어야 될 총리, 행안부 장관은 감싸면서 경찰, 그것도 말단에 집중해서 질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기동대 투입을 용산서장이 결정하는 거냐. 전혀 아니지 않냐”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백석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한국교회 이태원 참사 위로 예배에서 연일 사과 발언을 했다./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백석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한국교회 이태원 참사 위로 예배에서 연일 사과 발언을 했다./뉴시스

◇ 정의당 “회의에서 사과? 대국민 사과해야”

정의당은 8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이 이미 사과했다’는 발언에 대해 “사회재난에 대한 책임을 회의 자리에서 사과한 대통령은 역대 본 일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성수대교 붕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 사과문을 발표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하자 당선인 신분임에도 사과했다. 천안함 침몰 때에도 세월호 참사 때에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사과했다”며 “다시 말해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사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사과에 대한 국어사전의 정의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다음 날 대국민담화 자리에서는 사과 한 마디 없다가 엉뚱하게도 종교행사장에 가서야 사과 한마디를 내놓았다. 어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사과를 말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공식사과로는 형식과 내용에서 매우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이러니 그 아래의 위정자들과 공직자들의 사과도 도긴개긴”이라며 “외신기자들 앞에선 농담하더니 대통령이 사과하니 따라서 사과한 한덕수 국무총리, 잘못은 했지만 자리는 지키겠다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까지 예외가 없다”고 질타했다.

특히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개인적으로 당시 주말이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미처 예측하지 못하고 그 시간에 서울 근교에서 대비하지 못한 데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 것에 대해 “‘일말’은 국어사전에서 ‘한번 스치는 정도’로 아주 작은, 미미함을 뜻하는 말이다. 국민은 정부와 당국에 무한책임을 주문하는데, 경찰의 수장은 일말의 책임만을 느끼고 있으니 국민이 원하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요원한 일”이라고 직격했다.

정의당도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경찰에 대한 ‘꼬리자르기’식 경질을 우려했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8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안전시스템 회의에서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며 경찰을 질타했다. 말로는 ‘모든 국가위험의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이라고 했지만, 정작 책임은 모두 경찰로 미뤘다. 전형적인 유체이탈”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이번 참사에 있어 경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면서도 “하지만 어제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을 향해서는 집중 질타를 하면서도 정작 재난안전을 책임지는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없이 두둔하고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참사의 모든 책임을 경찰로 몰고 끝내겠다는 일종의 꼬리자르기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을 향해 “대국민 담화 형식을 갖춘 공식 사과와 함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비롯한 핵심 책임자들 부터 즉각 파면하라”며 “집권여당 국민의힘은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해 최소한 출당 제명 조치라도 단행하는 공당의 책임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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