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DB하이텍은 지난 7일 ‘주요사항보고서’를 공시하고 물적분할 추진을 발표했습니다. / DB하이텍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7일, DB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코스피 상장사인 DB하이텍은 ‘주요사항보고서’를 공시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분할결정’입니다. 브랜드사업부를 물적분할해 가칭 ‘DB팹리스’를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DB하이텍이 같은 날 공시한 주주총회소집결의엔 분할 관련 안건도 포함됐습니다. 다가오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DB하이텍의 분사 여부가 최종 결정되는 겁니다.

DB하이텍이 분사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DB하이텍은 이번 분할의 목적이 △전문성 제고와 경영 효율성 강화 △사업부문별로 시장환경 및 제도 변화에 신속 대응 △사업 특성에 맞는 운영체제 확립 및 책임 경영체제 정착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DB하이텍은 크게 두 가지 사업부문을 핵심으로 두고 있습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문과 팹리스(반도체 설계) 사업을 하는 브랜드사업부문입니다. 현재는 매출 대부분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미래 성장 측면에선 팹리스 사업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업계 전반의 흐름상 팹리스 사업을 키우는 것이 DB하이텍의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당면과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를 보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는 것이 이번 분할의 핵심 목적이라 할 수 있죠.

보다 실질적인 이유도 존재합니다. 팹리스 업계에서는 팹리스 사업을 함께 영위 중인 파운드리 업체에 일감을 맡기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술과 정보가 민감한 업계 특성상 유출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파운드리 사업과 팹리스 사업을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키워나가기에는 서로 상충하는 한계가 존재하는 겁니다. 

DB하이텍은 이미 지난해에도 이 같은 이유에서 분사를 검토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언론보도를 통해 분사 추진 소식이 전해졌고, 이에 대한 조회공시요구 답변에서 “분사 검토를 포함해 다양한 전략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인정했죠. 하지만 두 달 뒤인 지난해 9월 공시를 통해 “분사 작업 검토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를 전격 철회했습니다.

DB하이텍의 이러한 행보는 분사 추진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과 부정적인 여론에 따른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이번에도 소액주주들의 반응은 다르지 않습니다.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제안에 나서는 등 행동을 이어온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분사 재추진에 반대하는데 뜻을 모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소액주주의 반대 이유는 무엇일까요?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이 분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사 방식이 ‘물적분할’이라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죠.

상장사인 A사가 특정 사업부문(B)을 떼어내는 분사를 진행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물적분할은 A사가 새롭게 분할설립되는 B사를 자회사로 두고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됩니다. 기존 A사 주주들은 B사 주식을 받지 않죠. 반면, 인적분할의 경우 기존 주주들이 일정한 비율에 따라 A사와 B사의 주식을 모두 보유하게 됩니다.

따라서 물적분할 방식은 기존 주주들이 가지고 있던 분할 사업부문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력, 즉 주주로서의 권리에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물적분할 이후 B사가 상장을 추진하는 등의 경우엔 문제가 더욱 꼬이게 되죠. B사 사업부문의 미래성장 가능성이 높고, 이에 주목해 A사 주식을 산 주주 입장에선 자신의 투자가 졸지에 길을 잃게 되는 겁니다.

실제 최근 이러한 사례들이 이어지면서, 물적분할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은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 차원의 대책 마련이 나오기도 했죠.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의 반대도 마찬가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팹리스 사업부문이 물적분할한 뒤 상장할 경우, DB하이텍 주주들은 팹리스 사업부문에 대한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죠. 팹리스 사업부문의 미래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비춰보면 불만이 더 클 수밖에 없고요.

그렇다면, DB하이텍의 분사는 원만하게 추진될 수 있을까요?

무척 중요한 사안인 회사분할은 특별결의 사안에 해당합니다.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되죠. DB하이텍의 지배구조를 감안하면, 문턱이 꽤나 높아 보입니다.

DB하이텍의 최대주주는 DB입니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은 17.8%죠. DB외에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국민연금(8.34%) 뿐이고, 75% 가량의 지분은 소액주주들이 보유 중입니다. DB그룹의 의지만으로는 분사 결정을 이끌어낼 수 없고,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이런 가운데, 일단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 측은 반대로 뜻을 모은 상태입니다. 또한 국민연금을 설득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주주행동이 여러 성과를 내면서 주주권리에 대한 인식이 크게 확산한 점도 DB하이텍에겐 부담이죠.

그렇다고 상황이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DB하이텍은 DB팹리스를 상장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는 한편, 관련 대책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분할 이후 5년 내에 DB팹리스가 상장을 추진할 경우, DB하이텍 주주총회 특별결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아울러 DB하이텍은 배당금 확대, 자사주 매입 추진 등 주주친화적 제스처도 함께 취했습니다.

지난해 정부 차원에서 마련된 대책도 적용됩니다.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죠. DB하이텍은 주식매수청구권 총액이 1,500억원을 넘길 경우 분할 결정을 철회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시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로 물적분할 관련 우려를 털어내고 DB하이텍의 분사 목적에 더 무게를 두는 주주들이 많아진다면 DB하이텍은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DB하이텍의 운명은 오는 29일 결정됩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DB하이텍 ‘주요사항보고서(회사분할결정)’ 공시
2023. 3. 7.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DB하이텍 ‘조회공시요구에 대한 답변’ 공시
2022. 9. 26.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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