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슈퍼개미’로 유명한 배진한 대표는 베뉴지의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제안을 제출하는 한편,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하고 나섰습니다. /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13일, ‘슈퍼개미’로 유명한 배진한 노블리제 대표이사가 백화점 및 예식장 사업을 영위 중인 코스닥 상장사 베뉴지와 관련해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참고서류’를 공시했습니다. 이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근거를 둔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제도를 활용해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시입니다.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제도란 무엇일까요?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면,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입니다. 대통령 선거 등 국가의 중대 사안이 투표로 결정되듯, 주식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도 주주총회 의결을 통해 이뤄지죠. 모든 국민에겐 평등하게 1표의 투표권이 주어지고, 주주는 보유한 주식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대주주를 견제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는데 목적을 둔 일부 안건만 빼고요.

회사의 어떠한 의사결정을 이끌고 싶지만 보유 중인 주식이 부족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제도입니다. 의결을 위한 정족수 확보 차원에서 활용되는 경우도 많지만, 최대주주 및 경영진을 견제하는 한편 소액주주의 권리를 확보하거나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활용되기도 하죠.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참고서류’는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공시로, 권유자에 대한 각종 정보와 권유 이유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베뉴지를 향해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에 베뉴지와 관련해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한 주인공은 배진한 대표입니다. 500만원으로 수백억원대 자산가가 된, 소위 ‘반찬가게 슈퍼개미’로 유명한 인물이죠. 그는 과거 대동기계와 대륙제관, 국일제지 등에 투자해 상당한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도 벤처사업과 유튜브, 책 출간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베뉴지에 대한 배진한 대표의 ‘행동’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4월 보유 중인 베뉴지 지분(특수관계인 포함)이 5%를 넘기면서 공시 의무가 발생했고, 이후 8.02%까지 지분을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단순투자’였던 보유목적을 ‘경영권 영향’으로 변경하며 본격적인 행동을 예고했습니다.

배진한 대표가 공시를 통해 밝힌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취지를 살펴볼까요. 가장 먼저 그는 “베뉴지는 본질 가치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저평가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리고 “회사의 투명성이 낮다는 인식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죠.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베뉴지의 투자 실패 및 불투명한 공개를 문제로 지적합니다. 많은 현금성 자산을 상장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베뉴지가 지난해 3분기 기준 약 750억원을 투자하고도 약 242억원의 평가손실을 보고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그는 “영업상황 호조에도 경영진의 무리한 투자로 인해 순손실이 크게 발생하고 있으나, 한편으로 보고서에 투자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주주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배진한 대표는 베뉴지가 주주가치 제고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그는 “베뉴지가 주주들의 배당 확대 또는 자기주식 소각 등의 환원 요청에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경영진의 무리한 상장주식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주주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라며 “많은 상장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기주식 매입, 소각 등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베뉴지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아 주주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배진한 대표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주주제안을 제출하는 한편, 이에 찬성해달라며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나선 겁니다. 그는 주당 50원의 현금배당과 이사회에 자기주식 200만주 소각 권고를 주주제안으로 제출한 상태입니다. 반면, 베뉴지는 주당 30원의 현금배당 계획을 내놓았죠.

베뉴지가 주주행동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7년부터 베뉴지에 문제를 제기하며 주주제안 등 행동을 전개해온 또 다른 주주도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자신을 감사 후보자로 추천하는 등 주주제안을 제출했고 감사로 선임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바로 류병혁 감사입니다.

류병혁 감사 사례처럼 배진한 대표의 주주제안이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감사 선임은 대주주 견제 및 소액주주 보호 차원에서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인정하는 이른바 ‘3%룰’이 적용됩니다. 류병혁 감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죠. 하지만 배진한 대표의 주주제안은 ‘3%룰’이 적용되지 않는 안건입니다. 배진한 대표가 보유 중인 지분은 10%에 미치지 못하는 반면, 베뉴지 최대주주인 김만진 회장은 40%에 육박하는 지분을 보유 중이죠.

다만, 배진한 대표의 행동은 이번 정기주주총회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주행동이 전반적으로 확산하며 성과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다, 배진한 대표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베뉴지가 향후 어떠한 변화를 맞게 될지 주목됩니다.

베뉴지와 배진한 대표가 맞붙을 정기주주총회는 오는 29일 열립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배진한 대표의 베뉴지 관련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참고서류’ 공시
2023. 3. 13.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베뉴지 ‘주주총회소집공고’ 공시
2023. 3. 13.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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