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일성신약은 지난 24일 개최한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소위 ‘황금낙하산’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 그래픽=권정두 기자
일성신약은 지난 24일 개최한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소위 ‘황금낙하산’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7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코스피 상장사 일성신약은 지난 24일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를 ‘정기주주총회 결과’를 통해 공시했습니다. 이날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는 각종 보고서항과 함께 주식분할, 정관 변경, 이사 선임,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 승인, 이사 보수한도 결정 등의 안건이 상정돼 모두 가결됐는데요.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정관 변경입니다.

어떤 내용의 정관 변경일까요?.

구체적인 내용은 지난 9일 공시된 ‘주주총회소집 공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이번에 가결된 정관 변경은 크게 두 가지 내용입니다. 하나는 주식액면분할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황금낙하산’ 제도의 도입이죠. 눈길을 끄는 건 후자이고요.

일성신약은 이사의 퇴직금을 규정하고 있는 정관 제38조에 2항을 신설했습니다. 그 내용은 ‘대표이사가 임기 중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인하여 실직하거나 대표이사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회사는 통상적인 퇴직금 이외에 퇴직보상금으로 대표이사에게 150억원을 퇴직 후 7일 이내에 지급하여야 한다’입니다.

이는 적대적 M&A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경영권 방어 차원의 장치입니다. 일성신약을 적대적 M&A로 인수해 기존 대표이사를 물러나게 하기 위해선 ‘150억원’이란 추가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거죠. 실제 일성신약 측도 이러한 정관 변경의 목적을 ‘적대적 M&A 방지’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성신약은 현재 오너 2세인 윤석근 회장과 그의 차남인 윤종욱 대표가 각자대표 체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번 정관 변경을 통한 ‘황금낙하산’ 제도 도입은 두 사람을 위한 방패인 셈이죠.

일성신약의 이러한 행보는 최근 상황과 맞물려 해석 가능합니다. 일성신약은 창업주이자 윤석근 회장의 부친인 고(故) 윤병강 명예회장이 지난해 9월 별세했습니다. 일성신약의 승계작업은 이에 앞서 이미 마무리된 상태였습니다. 고 윤병강 명예회장은 자신이 보유 중이던 지분을 일찌감치 자손들에게 넘겨줬으며, 2020년 3월엔 경영 일선에서도 물러났죠. 윤석근 회장이 부회장에서 승진한 것도 지난해 5월입니다.

다만, 일성신약은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늘 거론되곤 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주주구성을 살펴보면, 최대주주인 윤석근 회장은 8.44%의 지분을 보유 중이었고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은 31.61%였습니다. 일성신약의 자기주식 보유 지분이 44.25%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지배력이 공고했죠.

그런데 윤석근 회장의 특수관계인 중엔 8.03%의 지분을 보유 중인 윤형진 전 상무도 있습니다. 단일지분을 기준으로 하면 3대주주에 해당하고, 윤석근 회장과의 차이도 크지 않죠. 참고로 단일지분 기준으로는 파인트리자산운용이 1대주주, 윤석근 회장이 2대주주였습니다. 

문제는 두 사람의 관계인데요. 각각 1956년생, 1980년생으로 24살 차이인 두 사람은 이복남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조짐이 나타난 적이 없음에도 분쟁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된 이유입니다.

최근엔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변화도 이어졌는데요. 공교롭게도 윤형진 전 상무는 윤석근 회장이 승진하기 직전인 지난해 1분기 분기보고서를 끝으로 임원 명단에서 사라졌습니다. 또한 윤석근 회장은 지난 2월 파인트리자산운용과의 장외거래를 통해 19만주의 주식을 취득해 개인지분을 15.59%까지 확대했습니다. 꾸준히 거론됐던 분쟁 가능성이 희미해지고, 윤석근 회장 쪽으로 무게의 추가 기운 거죠.

이런 가운데 이뤄진 이번 황금낙하산 제도 도입은 경영권 방어벽을 더욱 공고히 다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일성신약은 이뿐 아니라 주주가치 제고에도 적극 나섰는데요. 지난달엔 15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발표했고, 배당 규모도 확 늘렸습니다. 지난 3년간 11억5,000만원이었던 배당금 총액이 이번엔 296억원으로, 주당 배당금도 750원에서 2만원으로 껑충 뛰었죠. 아울러 기존 주식 1주를 5주로 분할하는 액면분할도 단행합니다. 이는 유통주식수를 늘려 주가 상승 여지를 높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즉, 일성신약은 이번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윤석근 회장 체제를 굳건히 다지는 한편, 일반 소액주주들의 민심을 얻는 데에도 공을 들인 모습입니다.

여러모로 큰 변화를 겪은 일성신약, 그리고 확고한 경영권 안정을 확보한 윤석근 회장이 향후 어떤 행보를 이어가게 될지 주목됩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일성신약 ‘정기주주총회 결과’ 공시
2023. 3. 24.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일성신약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 변동 신고서’ 공시
2023. 2. 16.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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