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바 '개딸'로 인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불안해졌다. 당의 '내홍'을 잠재워야 하는 이 대표로서는 강성 지지층의 행태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 뉴시스
이른 바 '개딸'로 인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불안해졌다. 당의 '내홍'을 잠재워야 하는 이 대표로서는 강성 지지층의 행태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정혜원 기자  ‘개딸’ 논란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지난 달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개딸’이 다시금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주장한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출당’ 청원에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을 처음 언급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탈당 청원에도 7만명 가량 서명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개딸’들은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가결’ 표결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을 찾아 ‘살생부’를 만들었다. 이른바 ‘수박’(겉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속으로는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주로 ‘비명계’ 의원들을 지칭) 의원을 색출하는 것이었다. 의원 40여 명의 얼굴과 전화번호까지 공개됐다. ‘개딸’들은 지난 3일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처음 재판에 출석했을 때 민주당 당사 앞에서 ‘수박 깨기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재명의 팬덤’을 자처한 ‘개딸’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극단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작년 대선 직후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이들은 ‘검찰 개혁’, ‘언론 개혁’, ‘민주당 개혁’을 요구하며 온건한 집회를 진행해왔다. 집회에서도 투쟁이나 상대 진영에 대한 비판보다는 “민주당은 할 수 있다”는 구호 등 ‘포지티브’한 분위기를 꾸려갔었다.

◇ ‘단일대오’ 행보 발목잡는 ‘개딸’

강성 지지층의 등장으로 든든한 ‘아군’을 등에 업은 듯 했으나, 최근 ‘개딸’들의 행동 양상이 당의 ‘단일대오’를 정비하려는 이 대표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첫 비서실장을 지낸 전모 씨가 사망한 후 당 안팎에서 거취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개딸’들의 행보는 외려 이 대표에게 압박이 되고 있다.

이 대표는 ‘개딸’들에 대한 자중의 목소리를 여러 번 내왔다. 지난 4일 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저의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 이후 우리 당 몇몇 의원님들에 대한 명단을 만들고 문자폭탄 등의 공격을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것은 상대 진영이 가장 바라는 일이다”라고 ‘수박’ 의원들에 대한 색출 움직임을 에둘러 잠재우려 했다. 지난 14일에도 이 대표는 ‘이재명 당원존 라이브’에서 “동지에 대한 증오심은 최소화해야 한다. 총구는 밖으로 향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명계’는 이 대표의 이러한 움직임이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좀 더 세게 말씀을 하셨으면 좋겠다”며 “만약에 그렇게 하면 당신들(개딸)하고는 결별하겠다, 이 정도의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셔야 진정성을 외부에서 인정해주고 강성 지지층들도 자제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결국 이 대표로서는 ‘강성 팬덤’ 때문에 곤란해진 셈이다. 강성 지지층과의 손절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결단일 것이다. 특히 이 대표는 당내 주류와는 거리가 먼 '변방의 장수'를 자처하며 ‘개딸’을 비롯한 적극적 지지층을 등에 업고 성장해왔다. 그러니 ‘당내 화합’을 명분으로 지지자와의 연계를 끊는 것은 정치적 악수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친명계조차도 이 대표의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다수 나오면서, 이 대표의 입지는 더욱 불안해졌다. 자신을 ‘친명계’라고 소개한 익명의 민주당 의원은 올해 연말쯤 이 대표가 스스로 물러나고 민주당이 ‘비대위’ 체제를 꾸려 내년 총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친이낙연계’ 이개호 민주당 의원은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대표의 심중을 잘 아는 분이 그 말씀을 하셨다고 하니까 상당히 일리 있고 사실에 가까운 얘기 아니냐”면서 “이 대표도 내년도 총선 승리를 위해서 어떤 일이든지 반드시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취지의 발언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 대표의 ‘사퇴론’에 힘을 실은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로서는 ‘사퇴’ 역시 어려운 결정일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스스로 사퇴의 당위성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민주당에 대한 ‘개딸’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날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가) 사퇴한다면 당내 갈등에 떠밀린 꼴이라 ‘비명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성토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명계’의 주장대로 이 대표가 연말에 사퇴하면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내홍’이 거세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는 이날 민주당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간담회에 참석했다. 더미래는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초재선 의원 모임이라는 평가가 있으나, ‘친명계’ 의원들이 다수 속해 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나눠보려 했는데 절대적으로 소통이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 “정당 내의 다양한 목소리는 정당의 본질이다. 하나의 목소리만 있다면 그건 정당이 아니라 조직”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둘러싼 당내 여러 목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더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지금의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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