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세가 유럽과 서구권에서도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하자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전체에 대한 서구권의 혐오가 급증하고 있다./ AP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에 대해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이로 인해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이는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의 역사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자 유럽 전역은 공포에 휩싸였고 당시 가장 큰 권력을 잡고 있던 중세 교회의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됐다. 중세 교회의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무능을 덮기 위해 흑사병의 원인을 마녀, 동성애자, 유대인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흑사병은 마귀의 장난에 의해 신이 분노한 결과”라며 “동성애자, 마녀, 유대인들이 신의 분노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흑사병으로 공포에 떨며 죽어가던 사람들에게 이성적인 판단은 중요치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쏟아낼 증오의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결국 ‘신’의 명령이라는 명분 하에 수많은 동성애자, 유대인들이 핍박당하고 죽었다. 많은 여성들도 마녀로 누명을 쓰고 끔찍한 고문을 받다 화형에 처했다. 물론 흑사병은 사라지진 않았다. 이들의 광적인 믿음으로 모인 기도회를 통해 확산 속도가 더 빨라졌고 결국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이와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보다 빠르게 ‘혐오’의 정서가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과거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했을때 사람들은 동성애자, 유대인, 마녀들을 흑사병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죽어갔다./ getty images

◇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시안 포비아’ 확산… 서구권서 ‘심각’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이후 세계적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대한 혐오정서가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유럽 등 서구권에서 심각한 상황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거주 중인 한국인은 유튜브 방송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종차별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현지인들이 길을 지나갈 때 일부러 앞에 와서 기침을 하거나 얼굴을 가린다”며 “지하철 좌석에 앉으면 일부러 다른 좌석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지나가거나 다른 아시아인들이 지나갈 때 사진을 찍으며 조롱한다”며 “코로나바이러스 걸린 것 같다, 도망가야 한다 등의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 중인 한국인 동포 조세환 씨는 YTN과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독일인이 자전거를 타고가면서 나를 보고 코로나바이러스라고 외쳤다”며 “베를린에서 45년간 거주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프랑스 파리 불로뉴 비앙쿠르시에 위치한 일식당. 벽면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가라”는 뜻의 비난문구가 낙서돼 있다./ 트위터

또한 프랑스에서는 일본 식당이 낙서 테러를 당했다는 글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지난달 트위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불로뉴 비앙쿠르시에 있는 일식당의 출입문과 벽에 “코로나바이러스는 나가라”라는 원색적인 비난문구가 푸른색 페인트로 도배됐다.

일반인만 이런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FC에 소속한 손흥민 선수도 코로나19에 관련된 조롱을 받았다. 손흥민 선수가 인터뷰 도중 기침을 하자 영국 내 SNS에서 “손흥민이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고 있다”며 “동료 선수도 곧 감염될 것‘이라는 조롱이 올라왔다. 또한 손승민 선수를 피해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합성한 사진도 SNS상으로 퍼졌다.

손흥민 선수를 조롱하기 위해 동료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합성한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 아시안 혐오로 폭력사태까지 발생… 전문가들, “방역에 역효과”

코로나19로 인한 아시안 혐오는 심각한 폭력사태로도 번지고 있다. 지난 3일 영국 BBC의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출신 유학생이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지나던 중 현지인 3~4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피해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무리 중 한 명이 자신을 보며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불렀다”며 “뒤를 돌아보자 갑자기 얼굴을 여러번 때렸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얼굴 뼈에 금이 가 수술을 받아야 했다. 폭행범들은 경찰이 도착하기 전 현장에서 도망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코로나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중국인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중국계 청년이 이탈리아 카솔라의 한 주점에 지폐를 교환하러 들어가자 직원이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라는 비난과 함께 제지했다. 이 가운데 주점 안에 있던 한 30대 남성이 유리잔으로 청년의 얼굴을 내리쳤고 피해자는 머리가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는 아시안 혐오로 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러시아 인터넷 뉴스통신 로스발트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코로나19 의심증상으로 격리조치 당한 중국인이 격리 해제 후 살해당했다.

당시 코로나19 감염증과 유사한 증세로 병원을 찾은 45세 중국인 남성은 단순 감기로 판명된 후 퇴소했다. 그러나 그는 퇴소 당일 머물던 기숙사 인근에서 가위에 목이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러시아 지역 행정부는 코로나, 외국인 혐오와의 관련을 부인하고 있으나 현지에 머물고 있는 아시아계 시민들의 공포는 점점 커지는 상태다.

영국에서 현지인 4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싱가포르 유학생. 이 남성은 폭행범들이 자신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모욕하며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얼굴뼈에 금이 가 수술을 받았다./ 페이스북

전문가들은 이 같은 차별과 혐오는 기존에 사회 안에 숨어 있었던 인종차별주의가 코로나19 확산을 핑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 같은 혐오 확산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며 오히려 확진자들이 검사를 기피할 수 있어 방역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혐오는 과학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상황을 악화 시킨다”고 비판했다. 

해외 각계에서도 차별과 혐오에 대한 비판이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다이앤 파이인스타인 미국 상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바이러스가 중국과 연관돼 있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주의와 편견은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전했다.

국제연합 ‘유엔’(UN)도 코로나19를 핑계로 고개를 들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자제를 당부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코로나19는 중국과 동아시아 민족에 대한 편견을 촉발했다”며 “차별과 싸우기 위해 유엔 회원국들이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세계보건기구(WHO)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낙인찍기와 증오를 멈춰야 한다”며 “우리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교훈을 얻겠지만 지금은 정치화나 비난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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