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여성가족부가 대위기를 맞게 됐다. /뉴시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따라 여가부가 위기를 맞게 됐다.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당선인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3일 여가부 폐지 공약과 관련해 “이제는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나”며 “저는 불공정, 인권침해, 권리구제를 위해 효과적인 정부조직 구상을 해야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과거에 남녀의 집합적인 성별의 차별이 심해서 만든 후 많은 법제를 통해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부터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불공정 사례와 범죄적 사안에 대해 더 확실하게 대응하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을 재확인한 셈이다. 다만 “저는 원칙을 세워놨다. 여성, 남성이라는 집합적인 부분과 여성, 남성이라는 집합에 대한 대등한 대우라는 방식으로는 여성이나 남성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겪게 되는 범죄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는 지금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폐기하기 보다는 여가부의 역할에 변화를 준 새로운 부처의 설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 민주당∙정의당 반대 국민의힘 내부선 찬반 논쟁

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체제의 민주당이 공동비대위원장으로 ‘n번방 추적단 불꽃’ 출신의 박지현 씨를 임명했고, 정의당도 갈라치기의 상징인 여가부 폐지 공약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지적한 만큼 윤 당선인이 여가부 폐지를 밀어붙이더라도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본인의 SNS를 통해 “윤 당선인은 새 정부에서 여가부를 폐지하고 내각 여성할당제도 적용하지 않겠다고 재차 밝혔다”며 “당장 인수위 내에도 여성 분과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그가 당선 직후 강조한 ‘통합과 협치’의 정치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행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윤 당선인의 0.73% 초박빙 승리는 분명한 민심의 경고였다. 이 숫자 속에는 여성 시민들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들의 경고를 수용해야 한다”며 “정의당은 윤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를 막아내는 데 앞장서고,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비롯해 성평등 사회를 앞당기기 위한 노력의 최선두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외신에서 윤 당선인을 ‘안티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 표현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여가부 폐지 공약을 밀어붙이는 것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내 최다선(5선)인 서병수 의원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며 “차별·혐오·배제로 젠더 차이를 가를 게 아니라 함께 헤쳐나갈 길을 제시하는 게 옳은 정치”라고 주장했다. 이후 조은희 의원도 “(여가부의) 기능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신”이라고 말해 여가부 폐지 공약을 전면 반박했다.

이에 권성동 의원이 “여가부가 과연 여성의 권익을 제대로 지켜왔는지에 대한 비판이 많았기 때문에 그 기능을 다른 부처로 옮기고 제대로 하겠다는 의미에서 공약을 낸 것”이라며 “젠더 갈등을 일으키기 위해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게 아니다. 남성도 차별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도 보호해줘야 하는 게 정치가 지향할 일이다”고 말해 여가부 폐지 공약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 민주당, 조건부 찬성 의견도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여가부 존치와 폐지에 대한 조건부 찬성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윤 당선인이 여가부 폐지를 한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을 지적하며 “여성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마초적 냄새가 풍기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동 청소년과 편부모 가정, 양육과 부양, 다문화가정을 더불어 여성과 관련한 내용들이 포함된 역할을 하는 곳이 여성가족부”라고 존치를 주장했다.

반면 채이배 비대위원은 “윤 당선자도 폐지를 말하지만 기존 여성가족부의 모든 기능을 없앤다는 식으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그 정도는 유연성을 가져야 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더라고 양성평등위원회 등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등 조건부 찬성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상민 의원도 “여가부를 폐지하거나 수정하려면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이 통과돼야 되는데, 자칫 여가부 문제로 여야 간에 격돌을 해서 합의를 못 보고 정부조직 개정안이 장기간 표류할 우려가 있다”며 “그 기능과 역할은 살려 나가되 명칭이나 조직 개편 이런 것들은 서로 숙의를 해 봤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국여성위 역시 15일 성명서를 통해 “윤 당선인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성별로 갈라치기 하는 세상과 여성들이 인식하는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고 일방적인 여가부 폐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진정 미래를 걱정한다면 갈등·분열을 치유하는 데 역량을 쏟고 성평등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더 나은 여가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명칭 변경이나 기능 조정이 필요하나, 그 지향점은 성평등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명칭 존속에 주목하기보다는 성평등 정책의 존치를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 조건부 수용 의견이 나오는 데에는 새 정부 인수위와 바로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20대 여성들의 막판 투표가 이재명 후보의 선전에 기여한 만큼 폐지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대립보다는 개편에 힘을 싣자는 것이다.

한편,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윤 당선인의 후보 시절 여가부 폐지 공약이 폐기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폐기는 아니고 몇가지 가능한 정책적 방향들에 대해 보고를 드리고, 그 중에서 당선자께서 선택하시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해 여지를 열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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