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 인사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 인사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2024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이를 받아 선거법 개정 추진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공개된 조선일보 단독 신년인터뷰에서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며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같은 날 윤 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승자 독식의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오는 3월 중순까지 내년에 시행할 총선 제도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중대선거구제는 김 의장의 오랜 지론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여야 모두 선거제 개편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국가 서열 1, 2위의 요청에 국회가 화답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논의에 대한 가능성만 연 채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환영하는 듯 했으나 곧 신중론으로 돌아섰습니다.

중대선거구제가 연이은 정치 이슈에 묻힌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국민의힘 전당대회,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검찰 조사에 묻혀서 환영받지 못한 게 아니라는 반응입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현역 의원들 사이에 실질적으로 선거구제 개편의 영향에 대한 의구심도 환영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논의 방식 자체를 문제 삼기도 합니다.

Q. 중대선거구제란 무엇인가요?

A. 중대선거구제란 하나의 선거구에서 1명의 대표를 선출하는 지금의 소선거구제, 1위대표제와 달리 큰 규모의 선거구에서 2명에서 5명의 당선자를 선출하는 다수대표제 선거방법입니다.

소선거구제는 1명만이 당선되기 때문에 1위 이외의 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중대선거구제에서는 승자독식 문제를 보완하고 유권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선거구제와 달리 선거과정이 비교적 복잡하고 선거구가 큰 만큼 선거에 드는 비용도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또한 후보도 많아 국민들이 후보자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Q. 처음 논의되는 사안인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야당 견제를 위해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가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1988년부터 소선거구제로 전환된 바 있습니다. 또한 2006년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는 지역주의 완화와 사표 방지 등을 위해 기초의원 선거에 한해서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중대선거구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하기도 했지만, 혜택을 받은 소수정당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울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지역통합을 위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굳이 중대선거구제가 아니어도 좋다며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2/3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하셔서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실패했습니다.

Q. 해외에 도입된 선례가 있나요?

A. 일본은 1928년 중의원 선거 때부터 1993년 선거까지 중선거구제를 채택해왔습니다. 하지만 중선거구제로 인해 오히려 공천권을 갖기 위한 당내 계파 갈등이 심해졌고 높은 선거 비용으로 인한 부정부패가 심해졌다고 비판받아 1996년 중의원 선거 때부터 소선거구제로 회귀했습니다. 아직 참의원 선거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대선거구제가 시행되고 있고, 지방의회선거에서도 중선거구제가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중대선거구제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를 이유로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5일 본인의 SNS를 통해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절감하고 있지만,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며 “일본은 소선거구제에서 출발해 중대선거구제로 갔다가 1993년경 소선거구제로 다시 돌아온 경우”라고 예시를 들었습니다.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브라질을 방문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좀 더 숙의를 거치고 공론의 과정을 거쳐야 될 문제"라고 언급했다. / 뉴시스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브라질을 방문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좀 더 숙의를 거치고 공론의 과정을 거쳐야 될 문제"라고 언급했다. / 뉴시스

Q. 중대선거구제 시행으로 양당 독식 체제, 지역주의 해소가 가능한가요?

A.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 정태일 충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논문 ‘한국 국회의원선거제도의 비판적 검토’에서 중대선거구제의 효과성을 서술하면서 “중대선거제도는 제1당(집권당)과 제2당(제1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제1당과 제2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제3당, 제4당보다 높았던 결과”라고 했습니다. 이는 지금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의 도입만으로 양당 독식 체제를 타파하기는 어렵다는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주의 해소에도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난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 중선거구제가 도입이 되었음에도 한나라당이 광주, 전북, 전남에서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고, 열린우리당이 부산, 대구, 울산, 경북, 경남에서 의석수를 거의 확보하지 못 한 사례도 있습니다.

Q. 환영하는 입장은 어떤가요?

A. 그럼에도 사표의 비중을 줄이고 지금과 같이 고착화된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이어왔지만 중대선거구제에 관해서는 찬성했습니다. 유 전 의원은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국민의 목소리를 더 다양하게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역과 이념의 대립 구도를 넘어 보수는 호남에서, 진보는 영남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합의의 정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바꿔야 된다고 평소에 이야기하다가 바꾸자 그러면 다들 갸우뚱거리고 미적미적거린다”며 “지금 뭐라도 토를 다는 분은 기득권을 놓기 싫은 분들이다. 중대선거구제를 해서 비토크라시(극단적 파당주의)를 깨야 한다”고 환영의 뜻을 전했습니다.

Q. 여야에서 신중론이 제기된 이유가 뭔가요?

A.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본인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현역 의원들 때문입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내년에 당장 총선인데 지금 국회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한다고 해서 과연 실현되겠느냐”며 “지금 현역 의원들이 선거구가 줄어드는 것에 결사반대를 하기 때문에 성공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초선과 재선 의원들은 자기 선거구가 없어지니까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Q. 소수정당에서도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군소정당은 양당체제를 해소할 수 있는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환영합니다. 하지만 '그 대안이 중대선거구제'라는 점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중대선거구제가 결국 다당제를 위한 길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3일 “국민적 개혁의 열망을 ‘영남 민주당’과 ‘호남 국민의힘’을 살리는 협소한 목표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며 “유권자 한 표 한 표의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서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의 일치를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Q. 야권의 반발은 단순이 윤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은 아닌가요?

A. 윤 대통령의 논의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표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윤 대통령이 정치개혁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한 뒤 국회가 이를 받아들이기만을 기다린다는 지적입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중대선거구제, 미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그리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 과제는 이번에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면서도 “정치를 바꾸자고 시작된 정치개혁 논의가 대통령의 ‘나는 던질 테니 수습은 국회가 하라’고 하는 구태스러운 하명 정치, 오더 정치로 오염된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하물며 윤 대통령의 정치개혁 제안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온 것이 전부였다. 임기 시작부터 마구잡이로 폐기된 공약들을 볼 때, 이번에도 아니면 말고 식의 국민 기만극이 아닐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의당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대통령이 선거제 개혁 주사위를 던졌다”며 “내 의견이니 국회에서 알아서 논의해보란 식으로는 국민의힘조차 설득하기 어렵다. 대통령께서도 자신이 지핀 선거제 논의에 책임감 있는 후속 조치를 내놓기를 바란다”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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