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파격적 보상 보다는 주거지원 위주… 대책 시행 과정에서 제도 보완 등 필요”
시민단체 “기준 애매하거나 논란 소지 곳곳에 존재… 실태조사 통해 확실히 처리해야”

지난 27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지원 방안을 브리핑 중이다. / 뉴시스
지난 27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지원 방안을 브리핑 중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작년 9월 정부의 전세사기 종합대책 발표 이후에도 피해가 여전한 가운데,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세명이 연달아 스스로 세상을 등지면서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쯤되자 정부는 지난 27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6가지 요건을 충족한 자들만 피해자로 한정하고 대책을 한시적으로 2년간 시행하는 등 여전히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부, 지난해 9월 이후 다섯번째 전세사기 피해 대책 발표… 6개 요건 충족시 피해 지원

지난해 전세사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부는 이를 수습하고자 같은 해 9월 전세사기 피해 대책에 이어 올해 2월과 3월(2회) 추가 대책까지 총 4회에 걸쳐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세사기 피해 방지 및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일각에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됐고 급기야 지난 2월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피해자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자 정부는 이달 27일 다섯 번째 대책을 공개했다.

이번 대책은 한시적 특별법인 ‘전세사기 피해자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신속히 시행된다.

우선 전세사기 피해 지원대상이 되려면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의 경‧공매 진행(집행권원 포함)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에 해당 △수사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된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등 6가지 요건을 만족한 임차인에 해당돼야 한다.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는 임차인이 해당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지 판단해 피해자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또 특별법에 기반한 대책이기에 법 시행 후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피해자로 인정된 임차인은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직접 유예‧정지 신청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우선매수권을 부여받아 최고낙찰가액과 동일한 가격을 경매에 넘어간 집을 낙찰받을 수 있다.

주택경매시 조세채권도 안분(按分) 된다. 그간 임대인의 세금체납액이 많으면 경매 후 임차인이 받게되는 배당액이 급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앞으로는 임대인의 총 체납세금을 개별주택별로 안분하고 주택 경매시 국세청은 해당 주택의 세금체납액만 분리 환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임차인이 받을 수 있는 배당액은 기존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주택을 경락(경매로 소유권 취득)받거나 신규주택을 구입할 시 금융지원도 강화된다. 정부는 피해자가 디딤돌대출을 이용할 때 최우대요건인 신혼부부와 동일한 기준(금리 1.85~2.7%, 한도 4억원, 소득 7,000만원 이하 요건)을 적용하고 거치기간도 3년까지 연장해주기로 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경우에는 금리수준을 3.65~3.95%로 우대적용하고 거치기간은 최대 3년 부여할 방침이다.

기존 임차주택을 낙찰받은 피해자에게는 △취득세 면제(200만원 한도) △등록면허세 면제 △3년간 재산세 감면(전용60㎡ 이하 50%, 60㎡ 초과 25%) 등의 세제혜택도 부여키로 했다.

이외에도 정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피해자로부터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경‧공매로 사들인 뒤 공공임대로 피해자에게 공급할 계획이다.   

특별법 시행 직전 2년 내 경‧공매가 종료되고 경‧공매 완료시점에서 특별법상 피해자 인정요건을 모두 충족한 임차인에게는 공공임대 우선 입주기회, 다른 주택 구입시 금융지원, 긴급복지‧신용대출 지원 등에 나설 예정이다.

뿐만아니라 ‘특정경제범죄법’에 신규 규정을 추가해 전세사기 등 대규모 재산범죄는 가중처벌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지난 18일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가 사망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추모제를 열었다. / 뉴시스
지난 18일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가 사망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추모제를 열었다. / 뉴시스

◇ 전문가 “정부 대책 피해자 주거 안정에 방점… 시행 과정서 추가 보완해야”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피해자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조치 등 파격적인 혜택은 없었다”며 “그렇지만 피해자가 살던 주택에서 계속 거주가 가능하도록 범부처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해 피해자의 퇴거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 마련됐다고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함영진 랩장은 LH 등 공공기관이 피해자로부터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기존 임차주택을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제한 사례에 대한 보완도 요구했다.

그는 “이번 대책은 피해자에게 주거연속성을 제공해 저렴한 임대료(시세 대비 30~50%)와 장기 거주(최대 20년)를 통해 손해 본 보증금을 상쇄하거나 간접 보전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생업‧질병 등으로 해당 주택에 거주하다 다른 지역 또는 주택으로 이전해야 하는 피해자는 효과가 제한될 수 있어 이들에 대한 타 지역 임대주택 이전 허가 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6가지 요건 중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등의 요건에 대해선 “국토교통부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해석할 때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걱정했다.

이외에도 “과거 체결된 전세사기 계약 만료 도래로 당분간 전세사기 피해가 지속될 수 있는 만큼 관련 시장에 대한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세제도가 유지되는 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리스크(위험)가 존재하는 만큼 임대차 표준계약서 특약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거나 전세금 에스크로 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면서 “연립·다세대(빌라) 등 전세가율이 높은 주택유형은 지역별 경매 낙찰가율 이하로 임대인이 전세금 보증금을 운용하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된다”며 의견을 제시했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정부가 현실적으로 사기 피해 보상이 어려운 만큼 피해자 주거안정에 집중한 것으로 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들은 피해보증금을 되돌려 받는 것이 최선의 결과인 반면 전세계약이 특히 민간계약 및 사인간 계약이다보니 정부가 나서서 피해보증금을 물어주기 쉽지 않다”며 “때문에 지금까지 나왔던 정부 대책이 재발방지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뒤이어 “이미 정부가 제시했던 전세사기 재발방지 방안부터 시행한 후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추가 문제를 수정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피해자 지원방안 중 △임차주택의 우선매수 지원 △매수는 어렵지만 지속 거주희망시 공공매입 후 임대주택 공급 △긴급 자금‧복지지원 △경‧공매가 끝난 임차인은 공공임대입주 등은 당장 주거안정 지원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 시민단체 “기준 자체 논쟁 소지 많아…채권매입방식 우선시 해야”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 요약 / 국토교통부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 요약 / 국토교통부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감정평가사)는 “여야가 (전세사기 관련) 합의한 수준 내에서 긴급히 처리할 만한 내용 중심으로 대책이 나온 것 같다”며 “다만 좀 기준 자체가 애매해 앞으로도 논쟁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 중 ‘수사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어야 한다’는데 사기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또 ‘피해자가 다수’인 사안이여야 한다는데 피해자가 10명인지? 100명인지? 명확하지 않다. ‘보증금 상당액 미반환 우려’ 역시 상당액이 과연 얼마인지 불분명하다”며 정부 대책에 대해 일일이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그동안 수차례 대책을 내놨는데 피해 실태조사만 제대로 됐으면 피해자 유형‧범위 등을 구분하기 쉬웠을 것”이라면서 “대책만 난무한 채 피해자에 대한 개별 상담에서 조치가 끝난 것으로 보인다”며 아쉬워했다.  

또한 그는 “정부 대책이 여러 차례 나왔는데도 구제가 안된 사례는 무엇인지 실태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대책에는 빠졌지만 피해 예방 방안도 필요하다. △보증보험 가입 여부 사전 확인 △임대인 정보 공개 및 확인 강화 △임대사업자 등록요건 강화 △공인중개사 책임 강돠 등 피해 예방책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 및 피해자들이 주장 중인 ‘채권매입방식’에 대해선 “채권 평가가 쉽지 않으며 임차인 각각 전세사기 유형이 모두 다르다”며 “여기에 야당이 발의한 법안에서는 우선변제금 수준의 채권을 매입한 뒤 피해자에게 보상하자는데 이때 보상금은 소액 수준이다. 이것을 피해자가 과연 수용할지 의문”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펼쳤다.

이원호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피해자들이 가장 요구한 채권매입방식을 제외한 채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을 때 지원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며 “아니나 다를까 피해자 인정 범위를 6가지 요건을 충족한 때로 한정함에 따라 피해자 상당수를 배제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닌 걸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이 6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피해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판단한 결과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예방대책도 충분치 않은데 피해 지원대책을 한시적으로 2년만 시행하는 것도 문제”라며 “아직 전세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피해자도 존재하고 현재 본인이 피해자인지 알지 못한 임차인이 수두룩한 만큼 2년 한시적으로 대책을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문제삼았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대책은 채권매입방식”이라며 “정부가 혈세를 투입해 1998년 IMF 당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인수하고 2008년 금융위기 때 부도임대아파트의 채권을 매입했던 사례를 봤을 때 이후 경매 등을 통해 충분히 회수가 가능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채권을 왜 매입할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그는 “정부‧여당은 전세사기 피해실태 및 현황 조사를 제대로 진행해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게끔 특별법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며 “빠른 처리도 중요하나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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