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흔 감평사 “임차인 효과 적어… 정부가 우선매수권 활용해 피해주택 매입해야”
김대진 변호사 “선순위 근저당으로 대항력 없는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에게는 효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법원 앞에서 경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뉴시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법원 앞에서 경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지난 2월말부터 이달 17일까지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달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안일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그간 서울 강서구, 인천 미추홀구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됐던 전세사기가 경기 화성 및 동탄, 부산 등에서도 속속 발생하면서 전세사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부랴부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추가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 3명 모두 살던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자 어려움을 호소했다는 점을 고려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집중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및 전문가 등은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것은 제한적 효과만 얻을 뿐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한 추가 대책도 함께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세사기 피해 확산'에 속타는 정부, 피해자에 우선매수권 부여 추진 

지난 2월말과 이달 15·17일 동안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연달아 극단적 선택에 나서자 17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 관련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피해자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원희룡 장관은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 방안을 다각도로 논의 중인데 먼저 경매시 임차인에 대한 ‘우선매수권’ 부여를 검토하고 있다”며 ‘우선매수권’ 도입을 시사했다.

20일 정부·여당은 전세사기 피해 대책 관련 당정 협의회를 가진 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주택 경매시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이후 21일 박대출(국민의힘)·김민석(더불어민주당)·김용신(정의당) 등 여야 각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회동을 가진 뒤 브리핑을 통해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인 오는 27일을 목표로 전세사기 피해 대책 관련 입법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여야는 향후 ‘우선매수권’ 피해자에 부여, 지방세보다 세입자 임차보증금 우선 변제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을 우선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매수권’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공유지분권자 지위를 주고 주택 경매때 입찰 최고가액을 기준으로 먼저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만약 해당 주택의 입찰자가 없다면 최저입찰가격으로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려면 법 개정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여야 동의 및 논의절차가 필수다.

21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대한변현 전세사기 관련 긴급 대책 TF 회의에 참석했다. / 뉴시스
21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대한변현 전세사기 관련 긴급 대책 TF 회의에 참석했다. / 뉴시스

◇ 조정흔 감평사 “‘우선매수권’ 부여 극히 제한적 경우에만 효과”

조정흔 감정평가사(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임차인(피해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려 하는데 이는 굉장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집값보다 전세보증금이 더 낮은 경우, 즉 낙찰금액이 높은 때에는 임차인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다”며 “요즘 발생한 사례 대부분은 보증금이 더 높고 낙찰금액이 더 낮은 경우인데 이때 임차인이 선순위 대항력을 가졌다면 ‘우선매수권’은 아무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매에서 전세사기 주택을 낙찰받으면 낙찰자가 보증금을 떠안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주택은 입찰 참여율이 낮다”며 “만약 임차인 자신이 직접 낙찰 받는다면 보증금을 상계하고 일부 시세와 차이나는 부분은 본인 손실로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만 인천 미추홀구 일부 피해자처럼 선순위 근저당이 있어 임차인이 대항력이 없는 경우에 한해선 우선매수권 부여가 효력을 발생한다”며 “허나 이때에도 임차인이 낙찰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전세사기를 당한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준다 하더라도 경락잔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이미 전세자금대출‧신용대출 등을 받은 자들”이라며 “이들이 추가로 은행권으로부터 경락잔금대출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이때 부모나 누군가로부터 추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임차인에게만 우선매수권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조정흔 감평사는 “이를 종합해보면 우선매수권 부여가 임차인 보호 규정이 맞는지? 피해 보전 취지에 부합한지? 의문이 든다”면서 “임차인보다는 차라리 정부가 우선매수권을 확보해 경매에 참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정부가 우선매수권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사들인 뒤 이를 피해자들 임시거처로 활용하면 된다”며 “그동안 정부가 마련한 임시거처의 수요가 극히 적었던 이유는 피해자들의 생활권(직장, 편의시설 등)과 너무 동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선매수권’ 부여와 관련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 없고 기존 민사집행법에 조항을 추가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현행 민사집행법 제140조(공유자의 우선매수권)에서는 부동산을 공유 운영하는 다른 공유자들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 김대진 변호사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에는 효과… 단 만병통치약은 아냐”

‘우선매수권’ 부여가 선순위 근저당으로 대항력이 없는 피해자들에겐 충분히 효과를 주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 114 소속 김대진 변호사는 “‘우선매수권’은 법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특별법을 제정하던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특례규정을 추가하면 다른 법률과 크게 충돌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현행 민사집행법에서는 공유지분이 경매에 넘어가면 다른 공유자들에게 ‘우선매수권’을 주고 부도임대주택법(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서는 임차인이나 공공기관이 우선매수하는 규정도 있어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 때문에 다른 법률과 충돌할 가능성은 적다. 기존 법에 특례 규정만 만들면 된다”고 전했다.

‘우선매수권’의 효과에 대해선 “특히 인천 미추홀구는 선순위 근저당 때문에 많은 임차인들이 대항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3자에게 낙찰되면 다 쫓겨날 판”이라며 “또 최근 인천 미추홀구 주택 경매에서는 수 차례 유찰이 되면서 가격이 계속 떨어지자 경매꾼이 붙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 손해를 봐도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임차인이 계속 주택에 거주할 수 있다면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우선매수권’ 부여가 만병통치약은 결코 아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기존 주택 거주 원하는 임차인에게 주는 대안 중 하나 일뿐”이라며 “‘우선매수권’ 뿐아니라 LH 등 공공이 전세사기 주택을 매입하는 방안,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임차인의 채권을 먼저 사들여 평가한 뒤 일정 보증금을 먼저 지급하는 방안(조오섭 의원 발의 특별법) 등을 추가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천 미추홀구 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붙은 경고문 / 뉴시스
인천 미추홀구 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붙은 경고문 / 뉴시스

◇ 당정 “전세사기 추가 대책 마련 고심”… 야당 “추가로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 추진해야”

법사위 소속 정점식 여당(국민의힘) 간사실 관계자는 “전날(20일) 국토위·행안위·법사위·정책위 등 소관 상임위별 여당 간사와 당의 지도부가 모여 ‘우선매수권’ 부여 등 전세사기 대책에 대해 종합적으로 논의했다”며 “단 첫 회의였던 만큼 아직까지 법사위에 ‘우선매수권’ 부여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사항 등은 공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전세사기 대책이 위중한 만큼 당정이 한시라도 빨리 추가 대책 마련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만간 종합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 만큼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국토위원회 소속 최인호 야당(더불어민주당) 간사실 관계자는 “‘우선매수권’ 부여를 통해 피해자의 경매 절차를 돕는 것도 필요하지만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조오섭 의원 발의 특별법)’가 더 시급한 문제라고 판단된다”며 “근본적으로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인 만큼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게 당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우선매수권’ 부여와 함께 추가로 특별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먼저 보상부터 하자는 취지인데 일각에서는 국가 세금으로 모두 구제하려 하나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이같은 이의 제기가 성립하려면 제대로 확인된 전세사기 실태 현황을 근거로 자세한 내역이 추산되야 하는데 현재 국토부가 파악한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반문했다.

끝으로 그는 “먼저 피해자 구제에 최선을 다하고 향후 정확한 통계가 나오면 그것을 보고 보상수준 및 범위 등을 조정하면 된다”며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전세사기 피해는 사인간 거래로 광범위하게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현 사태를 안일하게 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