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코스피 상장사 아세아제지는 지난 9일과 13일 각각 ‘소송 등의 제기·신청’과 ‘소송 등의 판결·결정’을 공시했습니다. / 아세아제지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중견 제지업체이자 코스피 상장사인 아세아제지는 지난 9일 ‘소송 등의 제기·신청’에 이어 지난 13일 ‘소송 등의 판결·결정’을 공시했습니다. 두 공시는 서로 연결되는 사안인데요. 먼저, ‘소송 등의 제기·신청’은 주주명부의 열람 및 등사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어진 ‘소송 등의 판결·결정’은 해당 가처분 신청이 신청인에 의해 취하됐다는 내용이고요. 다만, 그냥 취하한 것은 아니고 아세아제지 측이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를 허용하면서 양측이 합의에 이른데 따른 겁니다.

가처분 신청은 누가, 왜 제기했을까요?

주주명부의 열람 및 등사는 상법으로 보장된 주주 권리입니다. 아세아제지를 상대로 이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은 소액주주 측이죠. 아세아제지 소액주주들은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세를 규합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바 있습니다.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는 최근 부쩍 늘어난 ‘주주행동’의 신호탄과도 같습니다. 주주명부 확보는 회사의 정확한 주주현황 파악과 더 많은 소액주주와의 연대를 위해 꼭 필요하죠. 확보한 주주명부로 다른 주주들에게 주주서한을 발송해 뜻한 바를 공유하며 세를 키우고, 주주총회 개최나 법적 조치로 다양한 행동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주주행동의 아주 기본적인 수순입니다.

즉, 최근 이어진 공시는 아세아제지와 소액주주 사이에 갈등의 서막이 오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세아제지 소액주주들이 주주행동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해 정기주주총회를 앞둔 시점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아세아제지 소액주주연대는 당시 회사 측에 보낸 주주서한을 통해 중간배당 실시, 자사주 매입, 액면분할 등의 주주가치 제고 조치를 요구한 바 있습니다. 다만, 정기주주총회가 임박한 시점이다 보니 주주제안 등 보다 본격적인 주주행동은 어려웠죠.

아세아제지 측은 이러한 움직임을 의식한 듯 정기주주총회 직후 자사주 매입을 추진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규모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는데요. 소액주주연대는 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요구했지만, 아세아제지가 추진하고 나선 자사주 매입 규모는 그 10분의 1에 불과한 50억원이었습니다.

이에 소액주주연대 측은 지난 4월 두 번째 주주서한을 통해 자사주 매입 규모를 10배 늘릴 것을 요구하는 한편, 앞서 요구했던 다른 주주가치 제고 방안들에 대한 답변 및 실행도 거듭 촉구했습니다. 이때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도 처음 요청했고요.

뿐만 아닙니다. 아세아제지 소액주주연대는 지난달 공세의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렸습니다. 과거 담합 행위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던 것과 관련해 당시 경영진 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을 예고한 겁니다. 소액주주연대는 이 같은 계획을 유승환 아세아제지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과 감사 및 감사위원에게 내용증명으로 발송했죠.

소액주주연대 측이 ‘담합 책임자’로 지목하며 겨냥한 인물들 중에는 아세아제지 최대주주 일가가 대거 포함돼있는데요. 이훈범 회장과 동생인 이인범 부회장, 그리고 두 사람의 부친인 이병무 명예회장 등입니다. 세 사람은 담합이 적발된 시기 나란히 이사진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이훈범 회장과 이인범 부회장은 현재도 이사회 일원이고요.

소액주주연대가 책임을 묻겠다고 한 담합 과징금 처분은 2016년 3월과 같은 해 6월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내려졌습니다. 2016년 3월엔 당초 318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가 최종적으로 199억원으로 경감됐고, 2016년 6월엔 7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죠. 총 269억원입니다.

즉, 아세아제지 소액주주연대는 소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에 따른 기업가치 저평가 문제 해결과 과거 담합 행위 적발에 대한 최대주주 일가 등 당시 경영진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3월을 시작으로 단기간에 공세의 수위를 높여온 소액주주연대가 주주행동의 신호탄인 주주명부 확보에 성공한 만큼, 향후 더욱 본격적인 행동이 예상됩니다.

한편, 아세아제지는 지난해 연간 매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하고, 영업이익도 1,000억원을 넘기는 등 최근 뚜렷한 실적 성장세를 보여 왔습니다. 하지만 날선 주주행동이란 까다로운 과제를 마주하게 된 모습입니다. 아세아제지 소액주주연대가 향후 어떤 행동을 이어나갈지, 또 아세아제지는 어떤 대응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아세아제지 ‘소송 등의 제기·신청’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30609800442
2023. 6. 9.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아세아제지 ‘소송 등의 판결·결정’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30613800305
2023. 6. 13.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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