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국회, 특별법 처리 시급… 기재부‧금융위‧법무부 등 정부기관 모두 나서야”
대책위 “윤 대통령, 피해자 의견 직접 청취한 뒤 각 부처별 필요한 조치 지시해야”

지난 18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에서 최근 숨진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추모회가 열렸다. / 뉴시스
지난 18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에서 최근 숨진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추모회가 열렸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정부가 작년 9월 1일 전세사기 피해 방지 방안을 처음 발표한 이후 계속해서 추가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전세사기 피해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급기야 지난 2월말에는 이른바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으로 불리는 A씨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스스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달 15일과 17일에도 A씨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채 자택에서 발견돼 충격을 줬다.

수사당국 등에 따르면 숨진 피해자 3명 모두 20~30대 청년층이다. 고인들은 전세사기 피해 이후 생활고를 겪었고 경매로 인해 살고 있던 집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특히 숨진 피해자 중 한 명은 유서를 통해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실망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이 나날이 커지자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즉각 실효성이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국회는 피해자 지원 내용이 담긴 특별법을 빠른 시일 내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부, 피해주택 경매 중단‧유예 결정… 추가 대책은 아직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절실히 요구 중인 사항은 ‘경매 절차 중단’, ‘선 (보증금)보상 후 구상권 청구’다.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 3명 역시 경매로 인해 살던 집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8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무회의에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경매 중단‧유예 등의 내용이 담긴 긴급 대책을 보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재가했고 이에 발맞춰 19일 금융감독원은 전 금융권과 함께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 중인 주택을 대상으로 자율적 경매 및 6개월 이상 매각 유예조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금감원은 국토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거주 중인 주택의 주소를 넘겨 받은 뒤 이를 은행‧상호금융 등 주택담보대출 취급 금융기관에 전달해 피해자가 원할시 경매절차 개시를 늦출 계획이다. 또 경매가 이미 진행된 때에는 매각 연기를 추진하기로 했다.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은 정부가 경매 절차 중단‧유예에 나선 것은 환영하면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인 보증금 선 반환 대책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선순위채권 및 조세 안분 등의 문제 △기획재정부·법무부 등 각 관계기관이 다뤄야 할 법률 분야가 상이한 점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국회 계류 중인 점 등 넘어야 할 부분이 많아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중단 및 유예를 지시했다. / 뉴시스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중단 및 유예를 지시했다. / 뉴시스

◇ 한국도시연구소 “일부 보증금이라도 우선 반환하려면 특별법 시행 필요”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국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들이 그동안 꾸준히 경매 중단을 요구해왔다는 것은 그간 정부 대책이 실효성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라며 “정부가 그동안 경매 중단 요구에 선뜻 응하지 못한 것은 경매 과정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이 선순위에 있기에 이를 강제로 규제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지난주 금융위원회 앞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며 “당시 피해자들은 금융위가 은행연합회와 함께 협의해 일시적 경매 유예 조치에 나서달라고 요청했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에 대해선 “이와 관련된 특별법 2건이 국회 계류 중인데 특별법 내용은 보증금 전액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피해자들은 임대인을 상대로 보증금 관련 채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인데 소송시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경우에 따라선 보증금을 못 받는 수가 있어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KAMCO)가 대신 피해자들의 채권을 매입한 뒤 이를 평가해 산정한 보증금을 우선 지급하고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채권 평가 과정에서 보증금 전액을 돌려주기는 사실상 힘들다”며 “일부 보증금이라도 우선 피해자에게 지급하고 정부기관이 채권을 팔아 비용을 충당하는 것인데 이때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해 피해자들이 거주하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원호 국장은 오는 5월부터 시행 예정인 정부의 저리 대환대출 지원은 실효성이 적다고 비판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이미 전세대출을 낀 상태에서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다 대출을 또 얹으란 소리”라며 “이미 전세대출 고금리를 부담 중인데 아무리 낮아도 정부 대출 이자까지 추가되면 부담이 늘게 돼 피해자들은 막막한 상황에 처한다”고 꼬집었다.

또 “우선 특별법이 시행돼야 피해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며 “그동안 피해자들의 요구는 특별법 시행 때까지만 경매를 일시적으로 늦춰 달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참여연대 “전세사기 해결하려면 국토부‧기재부‧금융위 등 모두 나서야”

박효주 참여연대 간사는 “피해자의 첫 극단적 선택이 발생한 이후 금융위 등 정부 관계기관이 인천 미추홀구에서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청취했다”며 “당시 피해자들은 시간이 촉박하다며 즉각적인 해법 마련을 요구했으나 관계기관은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고 결국 세상을 등지는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뒤이어 “현재 전세사기 피해 상황은 국토부만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대출 부분은 금융위가, 경매 절차는 법무부, 특히 조세채권이 잡힌 근저당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나서야 한다. 근저당이 잡힌 피해자의 경우 조세채권으로 인해 경매 절차를 진행할 수도 없다”고 부연했다.

참여연대도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가 이뤄져도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박효주 간사는 “캠코 등 공공기관이 피해자의 채권을 매입해도 우선 순위 채무 등을 조정하다보면 실제 돌려 줄 수 있는 보증금은 일부”라며 “보증금 일부라도 피해자에게 먼저 돌려주려면 특별법이 우선 처리돼야 한다. 그간 참여연대가 국회에 수 차례 법안 처리를 요청했음에도 지연되고 있는데 이제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며 국회에 태도 변화를 주문했다.

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붙은 경고문 / 뉴시스
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붙은 경고문 / 뉴시스

◇ 대책위 “윤 대통령, 전세사기 사회적 재난 인정 후 직접 챙겨야”

한편 지난 18일 출범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전세사기 문제해결을 위한 대통령 면담 △전면적인 실태조사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 등 10가지 사항을 정부에 요구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정부가 현행 법제도 하에서 가능한 수준의 대책만 내놓다 보니 현실에 맞지 않거나 대부분 예방 대책에 그치고 있다”며 “희생자 세 명도 경매 진행과정에서 대출 연장이 거절되고 최우선 변제제도를 적용받지 못하게 되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그는 “전세사기 관련 피해주택의 당해세 및 경매 문제 해결, 피해자 금융지원 강화, 집주인의 상속재산 처리절차 해결, 피해구제 특별법 처리 등을 위해선 기획재정부·법무부·금융위 등 정부 각 부처가 범정부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종합적인 전세사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를 실행하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임을 인정하고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청취해 각 부처에 필요한 조치를 지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국회서 잠자던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사고 터지자 논의 가속화

현재 국회에는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2건이 발의된 상태다. 특별법의 주된 내용은 정부 등 공공이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반환채권을 매입해 경매 등 보증금 회수 절차를 대신하고 임차인에게 적정수준의 보증금을 보전해 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보증금미반환주택을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해 피해 임차인에게 우선 공급한다.

특별법을 발의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법안은 상임위로 송부됐고 계류 중인 상태”라며 “그동안 국토위 반응은 여야간 이견이 없는 법안부터 처리하자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그나마 최근 사태로 전세사기가 또 다시 국민적 관심사 떠오르면서 여야가 특별법 처리에 신속히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 법체계상 민법‧주택법 등 기존 법률을 다 갈아엎고 피해자 지원 방안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번 특별법은 기존 법률을 최대한 개선하는 한도 내에서 피해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데 주력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법안 처리 과정에서 여야 간사가 만나 논의하게 된다”며 “단 정의당이 원내 교섭단체가 아니다 보니 여야 간사간 법안 심사 안건 논의 자리에 참석하지 못해 제대로 된 의견을 낼 수 없는 점이 아쉽다”며 말을 맺었다.

또 다른 특별법을 발의한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국회 상임위 소관위까지는 접수가 됐는데 아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상황이 심각한 만큼 여야간 협의가 완료되면 숙려기간 없이 바로 처리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세사기 성격이 다양해 피해 규모 전부를 구제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국세를 안분 배당하고 선순위 채권을 제외하면 남은 순위에 따라 피해자가 일부 보증금을 가져가는데 만약 앞에서 전부 제외된다면 구제가 어렵다”며 “이번에 발의한 특별법은 피해액 전부를 받을 수 없을 때 조금이라도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설계한 법안으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향후 시행령 통해 세부적인 내용을 추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당 분위기는 특별법을 여당과 협의해 조속히 처리하자는 입장”이라며 “세부적인 일정 등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물밑에서 여야간 협의가 빠르게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국토부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가 심각해짐에 따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협의를 계속 진행 중이다”라며 “금일(19일)에도 협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조만간 관계부처 합동 향후 대응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단 추가로 마련한 대책이나 구체적 시행시기 등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