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여명(黎明)이 밝아오는 시각에 일어나 만 보를 걷기 시작한 지 벌써 10개월이 되었네. 생전 규칙적인 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고희(古稀)를 2년 앞두고 나와의 괴로운 싸움을 시작한 건 몸무게가 계속 늘고 혈압이 올라가서야. 이러다가 쓰러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나더군. 그래서 술과 담배를 끊던 때처럼 독한 마음먹고 하루에 만 보 이상 걷기 시작했던 거야. 그것도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그 시간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건강이 달라진다고 말했던 그 아침
한양대 국문과 교수인 정민의 저서 『조심』을 읽다가 사자성어 치모랍언(梔貌蠟言)을 알게 되었네. 그럴듯하게 꾸며 세상을 속이는 일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지. 중국 당나라의 문관이며 시인이었던 유종원의 「편고」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군. 편고(鞭賈)는 채찍을 파는 사람이라는 뜻이야. 먼저 그 이야기부터 들어보세.허세 부리기를 좋아하는 한 부자가 시장에서 50전이면 살 수 있는 말채찍을 5만 전에 샀다네. 겉만 번지르르한 채찍을 보고 장사꾼의 감언이설에 속은 거지. 친구가 속은 거라고 말해도 믿지 않던 그 부자는 어느 날
여름에 피는 꽃들 중에서는 연꽃을 가장 좋아하네. 다행히 시흥 연꽃테마파크가 집 가까이 있어서 자주 다녀오지. 며칠 전에 갔더니 홍련과 백련들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하더군. 향원익청(香遠益淸)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멀리서 바라보고만 왔네. 사실 연꽃은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좀 떨어져서 봐야 더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꽃일세. 또 연꽃은 활짝 핀 모습보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봉오리가 더 아름다운 꽃이야. 둥근 꽃봉오리를 보면서 활짝 피었을 때의 꽃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보는 여유를 갖고 봐야 연꽃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지.
어렸을 때 자주 듣고 썼던 말에 ‘뜬금없다’가 있네. 갑작스럽고 엉뚱하다는 뜻이지. 생뚱맞다와 비슷한 단어이기도 하고. 함께 놀던 친구가 분위기나 주제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뜬금없다’는 말이 절로 나왔지. 하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는 그 말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네. ‘뜬금없다’는 말이 내 고향 사람들만 사용하는 사투리인 줄 알았고,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도 그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았거든. 그러다가 ‘뜬금없다’는 단어가 국어사전에도 올라와 있는 표준말이라는 것과 ‘뜬금’이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고 시세의 변동에 따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야생초들 중 가장 오랜 시간 피고지기를 계속하는 식물이 무엇인지 아나? 아마 민들레일 걸세.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애기똥풀과 괭이밥도 있지만 민들레보다는 늦게 피지. 제주도 같은 따뜻한 지역에서는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게 민들레야. 오늘은 이 땅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민들레 이야기를 하고 싶네.이른 봄에 양지바른 언덕, 도시의 골목이나 공원의 시멘트 바닥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노란 황금빛 꽃을 피우는 민들레들은 대부분 키가 작네. 그래서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많아. 늦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과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일세. 이 소설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여 러시아 최고 상류사회 구성원인 항소법원 판사가 되었지만 갑자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가기 시작하네. 의사로부터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은 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기 시작하지.“논리학에서 배운 삼단논법을 보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바로 이런 명백한
요즘은 경기도 양평 산골에 자주 가네. 어렸을 때부터 가깝게 지낸 죽마고우가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거든. 작년에는 친구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묫자리도 마련했네. 하늘이 확 트이고 사방은 숲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속 양지바른 언덕인데, 그곳에 올라가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좋아. 나랑 인연이 있는 땅인가 봐. 그래서 가끔 가서 놀다가 오네. 이생에서보다 더 긴 세월을 함께 보낼 자연 친구들을 미리 사귀고 있는 거지. 기온이 좀 더 오르면 내가 좋아하는 은방울꽃 같은 야생화들도 심을 예정이야. 저승에서도 말동무가 되어 줄 꽃 친
3월이면 즐겨 읽는 짧은 시가 하나 있네. 남쪽에서 불어오는 꽃바람에 흔들리는 춘심(春心)을 다잡기 위해 일부러 큰소리로 읊고 또 읊는 시지. 공자가 『논어』에서 “마음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고 말한 나이 일흔이 내일모레이지만, 아직도 봄이면 마음이 뒤숭숭해서 이 시를 읽으며 봄바람에 들뜬 기분을 달래고 있네. 어떤 시인데 서론이 이렇게 기냐고? 일제 강점기에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였던 김기림 시인의 일세.“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4·19혁명 정신이 5·16 군사 쿠데타로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1961년 9월에 김수영이 쓴 시 일세. 어제 있었던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 때문에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떠올리며 위로도 할 겸 저 시를 선택했네.“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는 마지막 연을 읽으니 정말
작년 1월에 큐어넌(QAnon)을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들이 연방 의사당에 난입했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은 음모론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지? 미국인 39%가 미국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지배하는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17%는 아동 성매매를 하는 사탄 숭배 엘리트들(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지 소로스,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미국 정치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40%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의 한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고 믿고, 백신이
지난달 30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페이스북에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피부양자 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명의 도용을 막는 등 국민이 느끼는 불공정과 허탈감을 해소할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네. 무슨 제도든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개선해야지.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전에 누구나 정의로움을 일상에서 느낄 수 있게’하는 게 ‘가슴에 새긴 사명’이라고 말했던 후보라면, 금방 들어날 거짓 통계로 국민들을 속이거나 극단적 사례 몇 개로 특정 외국인 혐오 정서를 부추겨서
이른바 윤핵관 문제로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바닥까지 내려갔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최근 다시 반등하고 있네. 그런데 그 이유가, 우리처럼 늙은 사람이 봐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청년들과 함께하겠다”면서 내세운 ‘여성가족부 폐지’와‘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같은 반(反)페미니즘 공약에 20대 남성, 이른바 ‘이대남’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라네. 그런 공약을 통해 ‘이대남’이 일종의 통쾌함을 맛보고,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되어 좋아한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더군. 표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관한 것이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22%는 사소한 사건들에 관한 것이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고작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들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의 96%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것이라는 애기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지난 12월 2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장모 최 모씨가 통장 잔고증명을 위조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네. 재판부는 “위조한 잔고 증명서의 액수가 거액이고 수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범행했다”면서 “(위조된) 잔고증명서를 증거로 제출해 재판 공정성을 저해하려 했다”고 유죄 선고 이유를 밝혔더구먼. 최 모씨는 지난 7월에도 의료인이 아닌데도 요양병원을 세운 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000만원을 불법 수령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었지. 당시 재판부는 "요양병원 개설·운영에 깊이
정의당의 심상정 대통령 후보가 1호 공약으로 ‘주 4일제’를 내세웠네.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직접 들어보게나. “주 4일제 공약이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있을지 몰랐다. 세계 10위권 선진국으로서 내 삶도 선진국이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반영된 거다. 주 4일제는 이미 대세가 됐다. 시대정신으로 정치가 받아들여야 한다.”유력 후보들이 네거티브 공방만 주고받고 있는 선거판에서 꽤 진취적인 공약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주 40시간제’도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주 52시간제’라고 불리고 있는 마당에 시기상조라는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 선거가 100여일 남은 이른바‘정치의 계절’이지만, 국민들의 삶과는 별로 관련 없는 일로 날마다 티격태격 싸우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일까? 이럴 땐 시를 읽네. 오늘은 나희덕 시인의 일세.학교 뜰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뿌리를 거세당한 채 기울어 간다/ 세상에 이럴 수가, /교장 선생님은 얼굴까지 붉히며 열을 올린다/ 잔인하게도 학생이 이런 일을 할 수가, / 학교 뜰의 나무 줄기에/ 누군가 칼로 긁어 상처를 냈다는 것이다/ 그런 학생이 사회에 나
중고등학교 다닐 때 가장 많이 본 영화 장르는 웨스턴이라고 불리던 서부영화였네. 정의를 지키면서도 총도 잘 쏘는 주인공이 나쁜 짓만 하는 악당들을 멋지게 제압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박수를 치던 때도 있었어. 하지만 1966년에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어 우리나라에서 1969년에 개봉된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 를 보고 나서는 주인공이 꼭 착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았지. 함께 극장을 나오다가 누가 착한 사람이야 하고 투덜대던 친구의 모습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생생해.원제목이
지난번 편지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정치에 뛰어들어‘1일 1실언’또는 ‘1일 1망언’놀림을 당할 정도로 상식에 어긋나는 말들을 자주 쏟아내고 있는 전임 검찰총장 이야기를 했었지. 이분이 이번에는 매우 심각한 몰역사적 망언을 했네.“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이게 어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할 말인가? 전두환이 대통령 할 때 정치가 있었는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무시한 강압적인 통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75-222) 전략가들의 책략을 편집해 놓은 책인 『전국책 戰國策 』에 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명의(名醫)인 편작(扁鵲)이 진(秦)나라 무(武)왕 앞에서 석침을 내던지는 이야기가 나오네. 그 전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네.진나라 무왕은 뺨에 악성 종양이 생겨 고통이 심하자 당대의 명의인 편작에게 진료를 청하네. 꽤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진찰을 한 편작이 말하네. “종양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일 수술을 해드리겠습니다.”편작이 나가자 신하들이 왕의 주위에 모여 수술을 반대하네. 종양이 있는 위치가 귀 앞의 눈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공적연금제도가 취약하고 자식들도 부모 부양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많은 노인들이 일을 계속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나라일세. OECD 회원국 중 남녀 모두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나라야. 그러면서도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지. 2018년 65세 이상 노인의 고용률은 31.3%로, OECD 평균 14.9%보다 2배 이상 높았네. OECD 36개 회원국 중 34만명이 조금 넘는 인구를 가진 아이슬란드(37.4%) 다음으로 높았어. 하지만 2016년 한국의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