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국회 가결 당시 행적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사진 노무현재단 노무현 사료관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국회 가결 당시 행적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진 노무현재단 노무현 사료관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때아닌 17년도 더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문제가 경선 주자간 공방 소재로 떠올랐다. 대선주자들은 2004년 3월 국회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통과 당시 행적을 두고 서로를 공격하며 감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로 인해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한 지붕 아래 모여 있지만, 여권이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하고도 이후 새천년민주당 분당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갈등을 겪었던 권력 쟁투사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경선 후보 가운데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했던 사람은 이낙연 전 대표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이 전 대표도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은 ‘소수파’의 한계를 토로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3월 19일 관훈토론회에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팬덤이 형성돼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근본적으로는 열린우리당에 동참하지 않은 소수파 출신이란 한계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당시 탄핵에 찬성했다가 ‘탄핵 역풍’으로 정치 생명에 최대 위기를 맞았었다. 17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추 전 장관은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사죄의 의미로 ‘삼보일배(三步一拜)’ 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새천년민주당은 9석을 얻는 데 그치며 몰락했고 추 전 장관도 낙선했다. 추 전 장관에게는 여전히 ‘노무현 탄핵 찬성’이 주홍글씨처럼 남아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의 감정 싸움이 격화되면서 경선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의 감정 싸움이 격화되면서 경선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뉴시스

◇ 민주당 적통 경쟁

최근 ‘노무현 탄핵’ 당시의 행적 문제는 양강구도를 형성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간의 공방전 속에서 불거졌다. 이 전 대표 측은 경기도 산하기관 임원 진모씨가 SNS에서 이 전 대표를 비방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이 지사 측은 이 전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 참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맞대응했다.

이재명 캠프 상황실장인 김영진 의원은 지난 21일 CBS 라디오에서 “이낙연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대변인이었는데 그 후에 탄핵 과정에 참여했다”면서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 분명한 입장이 없다”고 공격했다. 김 의원은 “본인 행보에 대해 솔직해야 한다. 구렁이 담 넘듯 하면 안 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지키겠느냐”고 직격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에 ‘KBS 뉴스 9’에 출연해 ‘(2004년 당시)무기명 비밀투표였는데 사실관계가 어떻게 되나’라는 질문에 “네 반대했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그러자 다시 이재명 지사는 22일 기자들과 만나 이 전 대표가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힌 것에 대해 “납득이 좀 안 된다”며 “과거의 자료를 보니까 이낙연 후보가 스크럼까지 짜가면서 탄핵 표결을 강행하려고 물리적 행동까지 나서서 한 것 같은 게 사진에도 나오더라”고 의구심을 표출했다.

이에 이낙연 캠프 선대위원장인 설훈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분명히 안다. 이낙연 전 대표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며 “마타도어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의 공방전이 가열되자 정세균 전 총리와 김두관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정세균 전 총리는 2004년 국회 탄핵안 가결 당시 상황을 언급하며 이낙연 전 대표, 추미애 전 장관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정 전 총리는 CBS 라디오에서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탄핵 공방전에 대해 “검증은 철저히 하되 진흙탕 싸움은 절제해야 한다”면서도 “전 탄핵을 막기 위해 의장석을 지켰고 우리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탄핵 저지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런데 당시 이낙연 후보는 다른 정당에 있지 않았냐”고 지적했다.

정 전 총리는 “그래서 그 정당 내부 사정을 저희들은 자세히 모른다. 그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분이 아마 추미애 후보일 것”이라며 “같이 그쪽에 계셨다”고 강조했다.

김두관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추미애 전 장관에 대해 “누가 그러더라. (추미애 후보는) 노무현 탄핵, 윤석열 산파, 김경수 사퇴, 이렇게 3번 자살골을 터뜨린 해트트릭 선수라고 이야기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추 전 장관은 대전시의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두관 의원의 언급에 대해 “갈라치기”라며 “문재인 정부를 흔드는 야권, 국민의힘과 궤를 같이 하면 안좋다”고 맞받아쳤다.

민주당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문제가 소환된 것은 ‘민주당 적통’ 경쟁이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는 서로 자신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잇는 ‘민주당 적통 후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의 표심을 얻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다. 이는 비주류 주자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결국 ‘민주당 적통 경쟁’이 가열되면서 노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당시의 행적까지 소환해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공방전이 감정 싸움으로 비화되면서 대선후보 선출 이후 민주당이 원팀으로 대선을 치르기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문제를 소환한 것은 ‘너는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적자가 아니다’라는 공격이다”며 “그러나 긍정적인 효과가 발휘될 소재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책이나 개인적 비리, 도덕성 문제는 얼마든지 괜찮지만 여권에서 상징적인 인물인 노무현 전 대통령 문제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은 서로 선을 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며 “경선 후유증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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