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자율점검 결과보고 요구 절반 이상 ‘외면’
‘노조탄압’으로 규정한 양대노총, 투쟁 예고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 뉴시스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노조를 향한 정부의 압박에 노동계가 비웃듯이 대응했다. 정부가 노조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사상 처음으로 자율점검 및 결과보고를 요구했지만, 상당수 노조가 이에 조직적으로 불응한 것이다. 예견됐던 일이 현실화하면서 노정갈등은 한층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엄정 대응’ 강조한 고용노동부, 양대노총 입장도 ‘강경’

고용노동부는 지난 16일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노조 및 연합단체로부터 재정 관련 장부 및 서류 등의 비치·보존 의무에 대한 자율점검 결과를 보고받은 바, 36.7%만이 응했다고 밝혔다.

출범 첫해부터 노동계와 날선 대립각을 세운 윤석열 정부 및 여당은 지난해 노조 회계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와 관련된 행보에 착수한 바 있다. 

관할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말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의 단위노동조합과 연합단체 334곳을 대상으로 안내문을 발송해 1개월 간 재정 관련 장부 및 서류 등의 비치·보존 의무에 대한 자율점검 및 시정에 나서도록 했다. 노조법 제14조에 근거로 제시하며 사상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점검 및 조치에 나선 것이다. 아울러 추후 자율점검 결과를 보고받고 과태료 부과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이달 초부터 자율점검 결과 및 증빙자료를 제출받기 시작했다. 기한은 지난 15일까지였으며, 이에 응하지 않거나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제출기한이 마감된 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제출 현황은 초라했다. 유효한 점검대상 327곳 중 36.7%에 해당하는 120곳만 정부의 요구에 따라 자율점검 결과 및 증빙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63.3%에 해당하는 207곳은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 자율점검 결과를 일체 제출하지 않은 노조가 54곳(16.5%)이었고, 내용 없이 표지만 제출한 노조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53곳(46.8%)에 달했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정부·여당 차원의 노조 투명성 강화 방침에 대해 노조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탄압이라고 거세게 반발했으며, 고용노동부의 구체적 조치와 관련해서도 조직적 불응을 공언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제출이 저조했던 이유를 “양대노총이 정부의 정당한 요구에 조직적으로 불응하기 위해 내지 제출을 거부하는 현장 대응지침을 배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회계 투명성과 관련된 현행 법 조항을 위반함으로써 오히려 ‘깜깜이 회계’라는 불신을 자초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엄정 대응 방침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정상 제출한 노조 120곳은 이상이 없으면 행정 종결할 방침이지만, 정상 제출하지 않은 207곳에 대해선 노조법 제27조 위반에 따른 후속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라 17일부터 즉시 2주간의 시정기간을 부여하고, 끝내 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르면 다음달 15일부터는 노조법 제27조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절차가 개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특히 시정기간 및 과태료 부과 과정에서 수차례의 출석조사와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했음에도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서류 비치‧보존에 대한 소명도 하지 못하면 ‘질서위반행위 규제법’에 근거해 현장조사를 병행하고, 현장조사마저 거부·방해 또는 기피할 경우 해당 법에 따른 추가 과태료 부과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맞선 노동계의 입장 또한 여전히 강경하기만 하다. 

한국노총은 16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정당한 사유 없이 상급단체 및 일정 규모 이상의 노조에 일률적으로 자료제출 보고를 요구하는 것은 노조법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부당한 정부의 노조 운영에 대한 개입이며 위법한 월권행위”라고 재차 강조하는 한편 “‘회계투명성 제고’라는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는 사유를 들어 일정규모 이상의 모든 노조는 문제가 있을 것이란 가정 하에 일괄적인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자체가 명백한 노조의 자주성 침해이자 노동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향후 고용노동부가 과도한 현장 점검을 실시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노조 때리기’를 이어간다면, 한국노총은 정부의 부당한 행정개입에 불응하고 법률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물론 민주노총과 함께 장관의 직권남용 책임을 묻고, ILO에 공식 제소하는 등 공동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역시 같은 날 성명을 통해 “고용노동부의 요구는 그 자체로 자신들이 법적 근거로 들고 있는 현행 노조법을 넘어서는 월권행위”라며 “고용노동부의 시정지도 및 과태료 부과방침에 대해 응하지 않을 것이고, 법적 대응 및 다양한 형태의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선포했다.

고용노동부와 양대노총이 모두 강경 대응 입장을 밝히면서 노정갈등은 악화일로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근거자료 및 출처
고용노동부 ‘노동조합의 서류 비치.보존 의무 이행점검 결과’ 발표
2023. 2. 16. 고용노동부
한국노총 ‘노동부 노조 회계 점검 결과 관련 한국노총 입장’ 성명
2023. 2. 16. 한국노총
민주노총 ‘노동부의 노동조합 자주성 침해에 저항과 투쟁으로 맞설 것’ 성명
2023. 2. 16.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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