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가득 쌓여 있는 벼 포대를 살펴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초과 생산돤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원)을 행사했다. 양곡법 개정안이 지난달 23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지 12일 만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야권 주도로 국회에서 통과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취임 후 처음으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이 법률안을 거부한 것은 지난 2016년 5월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수정해서 재발의하겠다고 했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강 대 강’ 충돌이 다시 시작된 셈이다. 윤 대통령도 이같은 결과를 예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제14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재의요구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제14회 국무회의에서 제385호 안건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 공포안’이 부결되었으며, 제386호 안건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재의요구안’은 원안대로 의결됐다”고 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낮 12시쯤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된 양곡관리법은 농민 쌀값 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는 쌀을 강제로 매수’해 국가 재정을 낭비하는 포퓰리즘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 ‘지도자의 고심과 결단’일까

이는 윤석열 정부가 농업을 등한시해서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게 아니라 해당 법안이 농업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시장 수급기능을 마비시키는 등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결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실질적으로 농민을 위하고 농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고심과 결단이 있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농업을 생산성 높은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농촌과 농업을 재구조화해 살기좋은 농촌으로 만들자는 게 정부의 목표”라며 “40개 농민단체가 반대하고 있고 지금도 정부의 재량 매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기댈 건 재의요구권 밖에 없다고 판단한다”고 거부권 행사 배경을 설명했다. 

대통령의 결정에 국민의힘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옹호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재의요구권 의결 직후에 페이스북을 통해 “‘농업 경쟁력 저하’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게 명약관화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탄핵까지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도 “입만 ‘뻥긋’하면 탄핵”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민주당은 전날의 ‘삭발 시위’ 기세를 이날도 이어갔다. 박홍근 원내대표와 국회 농해수위 위원들, 전국농어민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쌀값 정상화법’을 거부해 국민의 뜻을 무시한 윤 대통령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 정권은 끝났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다시 의결되려면 국회 재적의원(299명)의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과 정의당을 비롯한 야권이 총결집해도 가결은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여당과 야당의 극한 대치가 재발되는 셈인데, 윤 대통령이 이를 모르고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정치권에선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대통령 거부권을 계기로 반등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후 지지율이 오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한국갤럽 기준으로 2015년 6월 박 전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직전 조사보다 4%p 오른 바 있다. 

이에 야당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면 지지율이 오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물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매번 지지율 반등을 불러온 것은 아니기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아울러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1호 민생법안’으로 꼽히는 사안이었다. 거부권 행사를 통해 민주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농업인들의 표심을 껴안는 것을 사전 차단했다고도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년 4월 4일 오전 10시

장소 : 용산 대통령실 청사 2층 국무회의장

<모두발언>

윤 대통령 : 제14회 국무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의사봉 3번)

지난 3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습니다. 그간 정부는 이번 법안의 부작용에 대해 국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습니다만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농정의 목표는 농업을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발전시켜 농가 소득을 향상시키고, 농업과 농촌을 재구조화하여 농업인들이 살기 좋은 농촌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농업과 농촌을 농산물 가공산업, 관광과 문화 콘텐츠를 결합해 2차, 3차의 가치가 창출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입니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입니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더라도 이렇게 쌀 생산이 과잉되면 오히려 궁극적으로 쌀의 시장 가격을 떨어뜨리고 농가 소득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법안 처리 이후 40개의 농업인 단체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전면 재논의를 요구했습니다. 관계 부처와 여당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검토해서 제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했습니다.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양곡관리법 재의요구권 행사에 관해 심의할 것입니다. 농식품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쌀 수급을 안정시키고, 농가 소득 향상과 농업 발전에 관한 방안을 조속히 만들어 주길 당부합니다.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우주항공청 설립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논의합니다. 우주는 기술 혁신과 경제 성장 그리고 국가 안보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으로서 다른 첨단 산업의 전후방 효과가 매우 큰 분야입니다. 전 세계가 우주경제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지난해 우주경제 원년을 선포하고, 우주경제를 이끌어갈 담당 관청인 우주항공청 출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주항공청은 최고의 전문가를 중심으로 우주항공 정책을 총괄하고, 기술 개발과 국제 공조를 통해 우주항공 산업 육성을 주도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주항공청은 전문성에 기반한 유연한 조직으로 혁신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우주 개발 관련 최상위 정책조정기구이자 민관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대통령인 제가 직접 맡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남부지방의 가뭄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번 순천 주암조절지댐 현장에서 지시했습니다만 환경부와 관계 부처는 댐과 하천의 물길을 연결하여 시급한 지역에 물을 우선 공급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생활용수와 공업용수가 끊기지 않도록 가용 수자원을 총동원해 주길 당부합니다. 

하천수를 저수지에 비축해서 본격적인 영농기 준비에 차질이 없게 하고, 섬 지역은 해수 담수화 선박 운영 등 비상급수 대책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랍니다. 

최근 우리는 기후 위기로 인해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극심한 가뭄과 홍수를 함께 겪고 있습니다. 그간 방치된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하고, 노후 관로를 신속하게 정비해 주기 바랍니다.

최근 건조한 기후로 충남 홍성, 전남 함평 등 전국적으로 수십 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소중한 산림이 파괴되고,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방심은 한순간이지만 피해 복구에는 수년 또는 수십 년이 필요합니다. 관계 부처와 지자체는 대형 산불이 조속히 진화될 수 있도록 총력 대응하고, 산불 예방에 더욱 노력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특히 정부는 이재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긴급 지원하고, 봄철 영농기임을 고려해서 마을 주민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여 신속히 시행해 주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데일리 오피니언 제168호(2015년 6월 4주)
2015. 06. 25 한국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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