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에도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도중 불거진 ‘비속어 막말 논란’과 관련해 사과나 해명 대신 ‘국익’과 ‘진상규명’을 꺼내 공세 모드로 전환한 것이다. 대통령실이나 여당도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가 남아있다. 현안은 산적한데 정국 경색은 심화되는 모양새다. 

◇ 작심한 윤 대통령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 훼손”

윤 대통령은 26일 오전 5박 7일간의 해외 순방 후 첫 출근길에서 ‘비속어 막말’에 관한 입장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이 관련 이슈에 대해 직접 입을 여는 것은 이날 도어스테핑(약식회견)이 처음이었다. 여야가 닷새째 이 논란을 두고 공방을 주고 받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면 상황이 일단락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해당 질문이 나오자 작심한 듯 “논란이라기보다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겠다”며 운을 띄웠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동맹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변하며 “사실과 다른 보도로써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부분을 먼저 얘기하고 싶다”고 못박았다. 

앞서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X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발언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X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발언한 것이라 주장했다. 미국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도 ‘바이든’이 아닌 ‘(예산을)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며, 발언 대상 역시 미 의회가 아니라 우리 국회(야당)을 뜻한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을 재확인한 셈이다. 특히 해당 발언을 미국과 연결시키는 것은 “동맹을 훼손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규정지으면서 그간 ‘바이든’으로 보도했던 언론에 대해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윤 대통령은 “그와 관련된 나머지 얘기들은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동맹을 훼손시킬 수 있는’ 보도가 나온 데 대해, 그리고 야권이 이를 두고 공세를 가하는 것에 대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 순방 외교 성과 묻힐 우려에 ‘정면돌파’ 선택?

대통령의 ‘정면돌파’는 예상됐던 바였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고 해명하며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동맹을 이간하는 것이야말로 국익 자해 행위”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귀국한 다음날(지난 25일)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는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가짜뉴스 근절’을 언급한 것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움직임으로 보였다.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진상규명’을 말한 이유에 대해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특정 단어가 임의대로 특정이 됐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확인이 필요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회의에서 ‘기여 외교’를 하고 왔음에도, ‘비속어 막말’에만 집중해 성과를 깎아내리고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논란이 일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국회를 폄훼했다는 지적에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실, 여당 모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서 수긍할 만한 진상규명이 이뤄지면 사과 등 입장을 밝힐 것이냐’는 질문에 “그 부분도 같은 질문에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의 공세에 여당은 MBC의 사장, 해당 기자, 임원진 등을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야당은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한 협박 정치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 도전”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 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정국이 경색되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참모진도 더불어민주당의 반발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닐 터다. 현안이 산적했는데도 강대강 대치에 불을 붙인 연유는 무엇일까. 이 역시 윤 대통령의 오전 도어스테핑 발언을 보면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첫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자유와 인권, 평화와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책임을 이행하고 있음을 강조했고, 미국·일본 정상을 만나 중요 현안을 해결했다고 자평했다. 

순방의 성과를 강조해야 하는 시점에 야권이 ‘외교 참사’라고 며칠째 공세를 가하고, ‘막말 비속어 논란’을 부각시키자 이에 대응하고자 공세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논란이 불거지고) 13시간 이후에 해명한 게 아니라 아까운 순방기간의 13시간을 허비했다고 말씀드린다”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치열한 외교 무대에서 사용할 귀중한 시간을 ‘막말 비속어 논란’으로 허비했다는 게 대통령과 참모진의 인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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