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전두성 기자  내년 총선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는 아직 선거제 개편안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선택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두고 고심에 빠진 모양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거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면서 위성정당을 만들 시 대선 당시의 약속을 파기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면서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높은 국민의힘에 다수 의석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의 다수 의원은 병립형 회귀와 위성정당 창당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다. 선거제 개혁을 추구했던 민주당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에 앞장선 사람은 이탄희 의원이다. 그는 꾸준히 선거제 개혁을 요구해 왔고, 지난 22일에는 당내 53명의 의원과 함께 ‘위성정당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자고 요구했다. 이 법안은 지역구 다수당과 비례대표 다수당이 합당할 경우 해당 정당의 국고보조금 50%를 삭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김상희 의원을 비롯한 74명의 의원도 지난 28일 위성정당 방지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는 총선 참여 정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를 함께 내야하고, 지역구 후보 숫자의 20% 이상을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안을 정당이 충족하지 못할 경우 정당이 추천한 모든 후보의 등록을 무효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하는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이탄희 의원은 같은 날(28일) 자신의 지역구(경기 용인시정) 출마까지 포기하면서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그동안 우리 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연동형 비례제를 사수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며 “저부터 기득권 내려놓겠다. 다음 총선에서 저의 용인정 지역구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의 결단을 위해서라면 그곳이 어디든 당이 가라 하는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김두관 의원도 이 대표를 향해 대선 당시의 연동형 비례대표 유지와 위성정당 포기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때인 지난해 3월 이 대표와 우리 국회의원들은 국민께 백배 사죄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와 위성정당 포기를 약속하기 위해 국회 계단에 나란히 섰다”며 “그렇게 철석같이 국민께 정치개혁을 약속했는데, 당 지도부가 지금 병립형 비례를 가지고 국민의힘과 야합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사실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약 병립형으로 야합을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고 무슨 염치로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이 대표는) 이제 침묵할 때가 아니라 결단을 내릴 때다. 국민이 민주당을 믿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재명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병립형 회귀 시사

이러한 가운데 이 대표가 병립형 비례대표제 또는 위성정당 창당 가능성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제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과거로의 퇴행을 막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상과 현실 중에서 현실의 비중이 점점 높아졌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만, 더 나쁜 세상이 되지 않게 막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언급했다.

또 “선거라고 하는 것은 승부 아닌가”라며 “(선거에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 엄혹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이러한 발언이 나오자, 정치권에서는 병립형 회귀나 위성정당 창당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 일각에선 이 대표의 발언을 옹호하기도 했다. 진성준 의원은 2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 대표가 지난 대선 때 그런 말(공약)을 한 것은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라며 “다른 한 정당(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이라도 만들겠다고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인 김영진 의원도 이날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여야 합의를 통해 선거법이 결정됐는데 그것을 깬 게 2020년이라 이제는 민주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병립형이든 준연동형이든 다 열어놓고 얘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발언에 비명계(비이재명계)인 김종민 의원은 “이재명식 정치에 반대한다”며 반발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 발언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선거제 퇴행으로 가겠다는 얘기”라며 “이건 우리가 알던 민주당이 아니다. 옳지도 않고 이렇게 하면 이길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소탐대실의 길이다. ‘약속이고 원칙이고 모르겠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겠다’고 덤비면 민주당은 영원히 못 이긴다”고 지적했다.

‘혁신계’를 자청하는 비명계 모인인 ‘원칙과 상식’도 같은날 입장문을 통해 “지금 민주당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건가. 말 바꾸고 약속 뒤집는 것도 모자라 이젠 대놓고 거꾸로 갈 작정인가”라며 “1년 9개월의 시간 동안 우리가 한 게 뭔가. 한낱 기득권을 지키고 국회의원 뱃지 한 번 더 달겠다고 결의와 약속을 모른 체하면 그만인가”라고 맹비판했다. 

이처럼 선거제 개편을 두고 당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오는 30일 의원총회를 열고 선거제 개편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