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아세안·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동남아 순방 길에 나섰습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이어 인도네시아 발리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한미일 정상회담 등 성공적인 외교 소식이 들려와야 할 해외 순방이 정부의 언론탄압 논란으로 얼룩졌습니다.

논란은 대통령실에서 순방기간에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야권과 언론단체들이 일제히 ‘언론 탄압’이라고 반발했지만, 윤 대통령은 프놈펜 행 전용기에 이어 발리 행 전용기도 MBC에 대한 탑승 불허를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현지시각 13일 대통령실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현장마저 취재진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에서 편집된 발언과 영상·사진만을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순방 일정 중 가장 핵심 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을 서면 보도자료만 제공되고 언론 질의응답도 하지 않자 ‘취재 제한’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Q. 정상회담 취재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A. 대통령실 관계자는 13일(현지시각) 일정 브리핑에서 “한-일, 한-미 정상회담은 전속 취재로 진행된다”고 밝혔습니다. 정상회담 현장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지도 않았고, 대통령실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중요한 일정을 한 후에 통상적으로 가지던 질의응답도 이동시간을 이유로 받지 않았습니다.

Q. 기존의 취재 환경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해외순방에서의 정상회담과 같은 일정은 모든 기자가 함께 취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협소한 환경과 보안 등의 이유로 순방 취재기자 중 일부가 ‘풀 기자’로 현장에서 대표 취재를 합니다. 모든 기자를 대표해 취재하기 때문에 풀 기자는 단순한 대화 내용뿐 아니라 아주 사소한 현장상황까지 모두 받아쓰고, 찍고, 녹화해 순방 기자들과 공유합니다. 특히 정상회담 같이 중요한 일정에서는 더욱 자세한 내용이 공유됩니다.

정상 간의 비공개 대화시간은 있지만, 그 전에 모두발언을 공개함으로써 해당 회담의 주요 의제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속취재로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 중 언론에 공개할 내용을 선별해 보도자료 형식으로 배포했습니다. 회담 후 질의응답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전면 비공개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용기까지 타고 간 기자단이 무색해진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오후 프놈펜 쯔로이짱바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캄보디아 주최 갈라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오후 프놈펜 쯔로이짱바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캄보디아 주최 갈라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Q. 이번에는 왜 전속 취재였나요?

A. 대통령실에서는 회담 당사국끼리의 합의에 따라 이뤄진 일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중 누군가의 요청이 아니라 합의 사항이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윤 대통령의 ‘사적발언’이 풀 기자단의 카메라에 잡혀 알려진 만큼 이 같은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우리 쪽의 요청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같은 비공개 회담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한-일 정상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13분여간 설명과 질의응답을 한 것과 비교해 이 같은 추측에 더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Q. 정치권의 반응은 어떤가요?

A. 야권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통령실이 제공한 자료대로만 정상회담 기사를 쓰라는 강요”라며 “국민을 대신해 기자들이 질문할 자유마저 봉쇄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보도자료를 뿌리면 되지 기자들은 왜 데리고 갔냐”며 “독재정권 시절에 있었던 일인데 그때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인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엇을 그리 숨기고 싶은지 모르겠다. 현장에서 누굴 만났고, 상대는 뭐라 얘기했고, 동행한 수행원은 ‘웃기고 있네’와 같은 해서는 안 될 말을 쓰진 않았는지, 이런 모든 걸 봐야 할 사람들이 기자들”이라며 “기자들이 그런 특권이 있는 게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 그런 것들을 보고 전달하라는 특명을 부여받은 사람들 아니냐. 독재자가 되고 싶다면 집안에서만 하고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전락시키지는 말아달라”고 쓴소리를 이어갔습니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상무집행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협량함에 할 말을 잃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해외순방에서의 비속어 파문 이후 줄곧 ‘언론 자유와의 전쟁’ 중이다. 여당을 앞세워 MBC를 고발하고, 풀 기자단의 취재마저도 가로막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내내 강조해왔던 ‘자유’가 ‘대통령 마음대로 할 자유’임을 공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반면 여당은 공개할 내용은 다 공개했다는 입장입니다. 김병민 국민의힘 의원은 YTN ‘뉴스N이슈’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에 있는 내용들은 그대로 또 공개가 됐다. 제일 중요한 건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 정상이 함께 만났을 때는 중요한 메시지의 과정들이 투명하게 다 공개가 됐다는 점”이라며 “순방을 잘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언론과 또 유기적인 관계를 잘 조율할 수 있도록 대통령실이 그런 실력 있는 모습들을 가져가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Q. MBC가 전용기에 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순방 취재를 앞둔 MBC 취재진에 문자로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대통령 전용기 탑승은 외교, 안보 이슈와 관련하여 취재 편의를 제공해 오던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가 반복되어 온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습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은 다음날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 순방이 임박한 시점에, 대통령실이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이 특정 언론사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는 일방적 조치로 전체 출입기자단에 큰 혼란을 초래한 데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출입기자단이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취재 때문이다. 관련 비용 역시 각 언론사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이 마치 특혜를 베푸는 듯 '취재편의 제공'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프놈펜 한 호텔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Q. 대통령실의 입장은 어떤가요?

A. 대통령실에서는 전용기 탑승 거부는 ‘취재 거부’가 아니라 취재 편의 제공을 하지 않는 패널티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1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에 관한 질문을 받자 “MBC 건은 가짜뉴스를 생산한 데 대한 응당 책임을 져야 된다고 본다”고 답했습니다.

고영인 민주당 의원이 “지금 언론 길들이기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사고치고, 엉뚱한 철학과 이런 것들을 보면서 국민들이 지금 너무나 피곤해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이 수석은 “그런 프레임으로 자꾸 공격하지 마시고 같이 좋게 생각하자. 같이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면 좋잖은가”라고 받아졌습니다.

Q. 실제로 취재 제한이 없었나요?

A. MBC 측에서는 취재 거부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취재 제약을 받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현지에서 취재 중인 MBC 대통령실 출입 기자는 지난 9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전용기는 원하는 대로 스케줄을 짤 수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이기도 하고 민항기 항공편이 아주 많지는 않다”며 “프놈펜에서 발리로는 직항이 없어서 14일은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는 데 시간을 보내야하기 때문에 그날 하루는 실시간 취재를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꼭 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전용기 내에서 기자 간담회가 열린다”며 “지난 6월 NATO 순방 때도 출발할 때는 대통령 기자단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각오로 임하겠다 이런 설명을 했었고, 귀국길에는 순방 성과에 대해서 설명하는 브리핑을 한다. 그런 취재에 MBC가 배제가 된 거기 때문에 단순히 ‘교통편만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Q. 이에 대한 언론계의 반응은 어떤가요?

A.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 등 현업 언론단체는 14일 오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 김대기 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비서관을 직권남용죄로 고발했습니다. MBC 보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공재 이용과 공적 공간에 대해 취재할 권리를 일방적으로 박탈한 것은 헌법상 언론자유와 취재할 권리, 공영방송을 통한 국민의 알 권리 행사를 직접적으로 방해한 행위라는 설명입니다.

또한 언론노조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KBS, MBC, EBS 사장 선임에 시청자∙시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이사회 구성 시 다양한 계층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정치권이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할 필요도 없는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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