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촛불행동 활동가들이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진 외교부 장관 지역 사무실 앞에서 정부가 전날 발표한 일제 강제 동원 피해배상 해법안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뉴시스
강남촛불행동 활동가들이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진 외교부 장관 지역 사무실 앞에서 정부가 전날 발표한 일제 강제 동원 피해배상 해법안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정혜원 기자  지난 6일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배상안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 배상안의 골자는 ‘제3자 변제안’입니다. 이는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전범 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이 직접 배상하지 않고, 국내기업들이 기금을 출연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을 통해 ‘제3자 변제’를 하는 방안입니다.

2018년 대법원판결로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는 15명이며,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액은 지연이자까지 약 40억원에 달합니다. 정부는 배상에 필요한 자금을 민간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 마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일본 정부 역시 지난 6일 일본 기업이 재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대법원판결의 피고였던 전범 기업은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배상금 지급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됐지만,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직접 배상하라는 2018년 대법원판결을 뒤집은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됩니다.

Q. ‘제3자 변제’의 추진 배경은 무엇인가요?

A. 외교부는 지난 6일 ‘제3자 변제안’을 포함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한 경위에 대해 △피해자 고령화 △강제징용 대법원판결 관련 문제 미결상태 장기화를 제시했습니다.

우선 피해자 대부분이 90대 노령으로, 배상안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으면 피해 배상이 어려워진다는 입장입니다. 외교부는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15명 중 불과 3명이 생존해 있다고 강조하며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일본 및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이어왔으며 일부는 2018년 대법원판결로 승소가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판결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또 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배상을 확정한 대법원판결이 있은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제가 미결상태에 있으며,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외교부는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일본의 수출 규제가 2019년에 발표되고, 같은 해에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통보하며 양국 간 관계가 악화된 점을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엄중한 국제정세 하에서 한일·한미일 간 전략적 공조 강화가 양국 공동의 이익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협력 기회를 상실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Q. 배상안에 대한 여야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A. 국민의힘은 이번 배상안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6일 페이스북을 통해 “강제징용 문제는 역대 정권에서 폭탄 돌리기식으로 아무도 손대려고 하지 않았다”며 “윤석열 정부는 국익과 미래를 위해서 대승적인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정 비대위장은 7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제시한 배상안을 통해) 물이 반 컵을 채웠다. 나머지 반 컵을 일본이 채워줘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일본도 결국은 한일 관계의 원만한 발전, 관계 회복, 관계 개선 이런 걸 희망하지 않겠나”라면서 “나머지 채워지지 않은 반 컵은 결국 일본 쪽의 협력과 성의 있는 호응 조치로써 채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양보로 일본 기업에게 직접적인 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일본이 대승적 결단을 통해 강제징용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배상안이 굴욕적이며 친일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번 배상안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이번 결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한일 간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윤석열 정부가 굴욕을 감수하면서 추진하는 이유는 한미일 군사동맹 축에 한국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 표현”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배상안을 무리하게 제시했다는 뜻입니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 뉴시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 뉴시스

Q. 이번 배상안은 2018년 대법원판결과 무엇이 달라졌나요?

A.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일제 강점기 당시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에 끌려갔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신일본제철이 1인당 1억원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다만 이 판결은 피고인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한국이 배상을 강제할 방법이 없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2018년 대법원판결은 강제징용 피해의 책임을 일본 기업에 직접 돌렸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강제징용 배상안’은 일본 기업이 아닌 ‘제3 자’가 피해를 변제하도록 했습니다. 행정안전부 산하 재단이 배상의 책임을 지게 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자금은 일본 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으로부터 출연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배상안에 대해 민주당은 대법원판결을 임의로 뒤집은 삼권분립 위반이며, 위법적 소지가 다분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배상안은)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이자 헌법을 부정한 행정권의 남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우리 기업이 출연한 재단을 통한 강제징용 배상안은 정부 규제와 인허가의 대상인 기업에게 재단 출연금을 강요하는 위법행위”라며 “정부가 기업의 팔을 비틀어 출연금을 내는 순간 그 기업은 친일 기업으로 역사에 낙인찍힐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Q. 2015년 ‘위안부 합의’와는 무엇이 다른가요?

A. 민주당은 이번 배상안이 2015년 박근혜 정권 당시 이뤄졌던 ‘한일 위안부 합의’보다 후퇴했다는 입장입니다.

우선 이번 배상안은 2015년 ‘위안부 합의’와 달리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위안부 합의’에서는 2016년 7월,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으로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해 일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불법 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보전하는 ‘배상’이 아니라 ‘보상’ 형식이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물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도의적’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은 일본 ‘정부’는 물론 강제징용의 당사자인 일본 기업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책임을 묻거나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제3자 변제’를 포함한 이번 배상안은 우선 일본에 해법을 제안하고 그에 상응하는 호응을 기다리는 ‘열린’ 방식이라는 점도 ‘위안부 합의’와의 차이입니다. ‘위안부 합의’에서는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한다”고 명시해 논란이 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사죄’가 불가역적이라고 해석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 표명을 되돌릴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해결’의 불가역성에 방점을 둬, 한국 정부가 더 이상 일본에 배상이나 사죄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와 달리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번 ‘강제징용 배상안’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입장입니다. 한국 정부에서 일본 기업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전향적’ 결정을 내렸으니, 재단에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기부를 기대하는 여지를 남긴 것입니다. 그러나 하야시 요시야마 일본 외무상은 지난 6일 한국 정부의 발표 직후에 “특별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해 배상안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Q. 피해자 단체의 입장은 어떤가요?

A.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지난 6일 오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정부의 배상안 발표를 온라인 생중계로 시청한 후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양 할머니는 현재 생존해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3명 중 한 명입니다.

또 강제징용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배상안은) 강제동원 문제에는 1엔도 낼 수 없다는 일본의 완승”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지난 6일 외교부가 배상안에 대해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측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자평한 것과 상반된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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