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역사정의공동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 해법 발표 강행 규탄 항의행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한일역사정의공동행동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굴욕 해법 발표 강행 규탄 항의행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을 한일관계 정상화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찾고자 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윤석열 정부가 6일 한일관계의 최대 난제로 꼽혀왔던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제3자 변제안’을 들고 나왔다. 일본 기업의 직접적인 배상이 아닌 ‘제3자 변제’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한미일 협력 구축이 필요한 시점에 과거사 문제로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이같은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 일본 전범기업 참여 않는 ‘제3자 변제’

이날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해법’으로 일본 전범 기업이 참여하는 대신 국내기업이 기금을 출연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와 한일 재계가 공동 모금한 ‘미래청년기금’(가칭) 조성을 제시했다. 이는 정부 산하 재단이 국내 기업 기부로 재원을 마련해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가족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재단에 일본 전범기업은 참여하지 않는다.

양국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을 통해 조성할 ‘미래청년기금’은 강제징용 피해자 등을 위한 게 아니라 양국 청년의 교류 증진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만일 일본 전범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 조성에 참여한다 해도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배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관계는 삐걱거렸다. 2019년엔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 등이 터지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험악해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강제징용 문제를 풀고자 한일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대신 변제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지만 일본 정부가 거부했다. 

4년이 넘는 지난한 싸움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쪽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 정부였다.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배상금을 지급하는 주체는 일본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들고 나왔다. 

‘가해자’인 일본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우리 정부는 이날 일본 전범 기업이 아닌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한국 쪽 수혜기업(포스코 등)으로부터 출연금을 받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높은 변제안이다. 하지만 정무적으로 부담이 될 법한 변제안을 밀어붙인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관계 복원 의지 때문으로 보인다. 

◇ 안보·경제 위해 한미일 협력 시급

대통령실 안팎에서 신중론 건의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신속한 해법 제시를 주문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만큼 한일관계 회복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은 지난 1일 3·1절 기념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당시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했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7차 핵실험의 위협 등 한반도 안보 상황이 엄중하고, 글로벌 공급위기 속 한미일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에 한미일 3각 공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지소미아 정상화와 수출규제 해제가 시급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또 일본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늘 이 시점에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양국 정부가 입장을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한계치’란 일본 전범 기업 참여 없이 우리 기업의 출연금으로 만들어진 재단이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제3자 변제인 것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인식한 일본의 ‘한계치’였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의 입장 발표에 일본 뿐 아니라 한미일 협력을 요구하던 미국 역시 환영하는 메시지를 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일본 정부로서 일한(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것으로서 평가한다”고 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획기적인 협력과 파트너십의 새로운 장(new chapter)을 열었다”고 환영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같은 ‘결단’은 국내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협력 파트너라고 칭했으나,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여론이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의 최대 치욕이자 오점”이라고 비난했다. 피해자와 유가족 측은 일본 전범 기업이 우리 국민에 직접 사과하고 배상할 것을 강조했다. 더불어 매주 토요일 집회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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