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는 윤 대통령의 방일(訪日)을 계기로 양 정상의 ‘셔틀 외교’를 복원하기로 했으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완전 정상화에 합의했다. 그러나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의 추가 사과는 없었고, 윤 대통령도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 윤 대통령 “한일 협력의 새 시대 여는 첫걸음”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전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가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1998년에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5주년이 되는 해"라며 “이번 회담은 공동선언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에 대해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글로벌 아젠다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협력 파트너”라면서 “오늘 회담에서 저와 기시다 총리는 그간 얼어붙은 양국관계로 인해 양국 국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어왔다는데 공감하고, 한일관계를 조속히 회복·발전시켜 가자는데 뜻을 같이 했다”고 했다. 

양국은 미래를 함께 준비하자는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안보, 경제, 인적·문화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더욱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경제·안보와 첨단과학, 금융·외환 분야에서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나가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위해 외교·경제 당국 간 전략대화를 비롯해 양국의 공동이익을 위한 협의체들을 조속히 복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한일 경제안보대화’ 출범을 포함한 다양한 협의체와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윤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해제,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철회를 결정했다. 윤 대통령은 “소위 ‘화이트 리스트’ 조치에 대해서도 조속한 원상회복을 위해 긴밀한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이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대북 공조에 대해선 “저와 기시다 총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인식을 같이 했다”며 “날로 고도화되는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한일 공조가 매우 중요하고 앞으로 적극 협력해 나가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전했다. 

양국은 자유·인권·법치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세계평화와 번영을 이뤄온 만큼,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 협력키로 했다. 이에 따라 양국 정상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하면 수시로 만나는 ‘셔틀외교’를 통해 적극 소통하고 협력할 방침이다. 

◇ 끝내 사과하지 않은 기시다 총리

하지만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모두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핵심 현안인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일본 측이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인 입장을 표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일본정부로서는 이 조치를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양국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하여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써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만 밝혔다.

윤 대통령도 모두발언에서 “우리 두 정상은 양국 정부가 긴밀히 소통하고 머리를 맞댄 결과 우리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를 계기로 양국이 미래지향적 발전방향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질의응답 과정에서 강제징용 관련 질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본 측 기자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구상권 청구 가능성을 물었고, 우리 측 기자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국익과 기시다 총리의 호응 조치를 질문했다. 

구상권과 관련한 문제는 윤 대통령이 답변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1965년 협정과 관련해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를 정부 재정으로 처리했으나, 2018년에 그동안 정부의 입장 및 1965년 협정 해석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됐다”고 답했다. 이는 일본 전범기업의 강제동원 배상 책임을 묻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이것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한국 정부가 이 협정에 대해 해석해온 일관된 태도와 판결을 조화롭게 해석해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고 발전시켜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금에 의한 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발표했다”며 “만약에 구상권이 행사된다고 한다면, 이것은 다시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구상권 행사라는 것을 해법 발표 취지와 관련해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의장대 사열 중 양국 국기를 향해 예를 표하고 있다. /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의장대 사열 중 양국 국기를 향해 예를 표하고 있다. / 뉴시스

또 ‘국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해법을 내고 일본을 방문해 얻는 국익과 그 국익에 대해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우리 한국의 국익은 일본의 국익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윈윈할 수 있는 관계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해법발표로 인해서 양국관계가 정상화되고 발전한다면 양국의 안보위기 문제가 거기에 대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저도 조금 전 정상회담에서 지소미아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다”며 “그래서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와 항적에 대한 정보를 양국이 공유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국 경제계에서 환영하듯 다양한 첨단분야에 있어서 양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또 윤 대통령은 “양국 국민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또 문화·예술·학술 교류가 더 왕성해진다면 양국이 함께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것이 국익이고, 우리 국익은 일본의 국익과 공동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노력에 비해 일본의 호응조치가 부족하다는 한국 여론이 많은데 이를 호전시키기 위해 제안할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일본 정부로서는 3월 6일 발표된 한국정부에 의한 조치를 2018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서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써 평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을 반복한 발언일 뿐이다. 

◇ 대통령실 “사과 한번 더 받는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봐야”

결국 한일정상회담에서 얻은 것은 양국 셔틀외교의 복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해제와 한일 경제안보 대화 협의체 가동, 지소미아 정상화였다. 일본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한미일 협력에 속도가 붙는 것 역시 성과로 볼 수 있다. 양국 간 경제·문화·인적 교류도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구상권 청구를 포기했으며,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 표명도 없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일본의 사과에 대해 “역대 일본 정부가 일왕과 총리를 포함해 50여차례 사과를 한 바 있다. 그 사과를 한 번 더 받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일축했다. 또 이 관계자는 “대신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상이 역대 정부 역사인식에 대한 담화를 계승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니 그 속에 사과의 의미가 있다”고 반박했다. 

야당은 회담 결과에 반발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공동기자회견이 끝난 후 브리핑을 통해 “굴종외교로 점철된 한일정상회담은 국민께 수치심만 안겼다. 또 한 번의 외교참사다. 받은 것은 하나도 없고 내주기만 한 회담”이라며 “한일 양국 정상이 만났지만 끝내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는 없었다”고 비난했다. 

반면 여당은 환영 입장을 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얼어붙어있던 한일관계에 봄이 찾아왔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한일 공동 번영의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과거사는 바꿀 순 없지만, 미래는 함께 만들 수 있다. 자유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 한일 양국은 어깨를 맞대고 함께 해야 한다”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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