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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만나다
[사회적기업을 만나다⑩ 에코티앤엘] 손 떠난 휴대폰, 어디로 가는지 아시나요?
2019. 12. 06 by 권정두 기자 swgwon14@sisaweek.com

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추구하며 사회적 가치를 거스르기 쉽다. 반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각종 공익단체나 활동가들은 늘 경제적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자본주의와 공익의 맹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초고령화사회와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는 우리 사회에선 그 역할과 가치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시사위크>가 국내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사회적기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국내에만 5,000만대 이상 보급돼있는 휴대폰. 하지만 폐 휴대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부족한 현실이다. /에코티앤엘
국내에만 5,000만대 이상 보급돼있는 휴대폰. 하지만 폐 휴대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부족한 현실이다. /에코티앤엘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하철을 타면 10명 중 8~9명은 휴대폰(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시골에 사는 할머니·할아버지도 이제는 휴대폰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고, 초등학생도 마찬가지다. 2개 이상을 쓰는 이들이나 법인용 휴대폰도 적지 않다. 실제 우리나라에 보급돼있는 휴대폰 은 인구 수와 맞먹는 5,000만대 이상이다. 신제품 연간 시장규모도 2,000만대 안팎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만큼 새로운 휴대폰의 등장은 엄청난 주목을 받곤 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2~3년 주기로 휴대폰을 교체한다. 그것이 최신·최상급이든, 보급형이든 말이다. 모든 관심은 오로지 ‘새로운 휴대폰’에 집중돼있다.

반면, 다 쓰고 난 휴대폰에 대한 관심은 극히 저조하다. 수년 전부터 중고거래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긴 했으나, 폐 휴대폰이 종국에 어디로 향하는지 알거나 관심을 두는 이들은 많지 않다. 폐 휴대폰이 지닌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그리 형성돼있지 않다.

◇ 없으면 안 될 휴대폰, 그 끝은 ‘무관심’

에코티앤엘에 수거돼 재활용을 기다리고 있는 폐 휴대폰들. 이 중 70~80%는 자원 재활용으로 활용되고, 20~30%는 중고폰으로 다시 태어난다. /권정두 기자
에코티앤엘에 수거돼 재활용을 기다리고 있는 폐 휴대폰들. 이 중 70~80%는 자원 재활용으로 활용되고, 20~30%는 중고폰으로 다시 태어난다. /권정두 기자

에코티앤엘(에코T&L)은 이처럼 열악한 사회적 인식 속에서 폐 휴대폰 재생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는 사회적기업이다.

에코티앤엘 한상무 대표는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다 휴대폰 대리점 운영을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새로운 휴대폰을 하나라도 더 팔아야 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는 평범한 대리점주였다.

그가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폐 휴대폰을 심심풀이 삼아 뜯어봤다가 조금만 수리하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쓸 만한 휴대폰이 너무 쉽게 버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고, 때마침 중고폰 시장도 본격 형성되고 있었다. 이에 한상무 대표는 폐 휴대폰 재생사업으로 사업의 방향을 전환했다.

현재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 휴대폰과 수거량 등은 정확한 집계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략 연간 1,500만대의 폐 휴대폰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재활용되는 것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고 에코티앤엘은 설명한다. 그나마 수거되는 폐 휴대폰도 중국 등 해외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심각한 환경문제를 유발할 뿐 아니라 자원낭비이기도 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휴대폰은 쓰레기로 그냥 버려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휴대폰엔 납처럼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요소는 물론 금과 은 같은 자원도 들어있다. 무엇보다 얼마든지 재생 가능하고, 재생 중고폰 수요도 충분한 상황에서 폐 휴대폰이 마구 버려지거나 해외로 유출되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폐 휴대폰 재생작업이 이뤄지는 작업장의 모습. 예상보다 단촐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상무 에코티앤엘 대표는 “폐 휴대폰을 중고폰으로 재생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권정두 기자
폐 휴대폰 재생작업이 이뤄지는 작업장의 모습. 예상보다 단촐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상무 에코티앤엘 대표는 “폐 휴대폰을 중고폰으로 재생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권정두 기자

◇ “잘 몰라서…” “불안해서…” 폐 휴대폰 재활용 인식 개선 시급

에코티앤엘은 폐 휴대폰 캠페인과 고물상, 개인 매입 등을 통해 폐 휴대폰을 확보한다. 이 중 70~80%는 자원 재활용에 활용되고, 20~30%는 중고폰으로 다시 태어난다. 국내 중고폰 시장은 매입과 판매의 단순한 구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에코티앤엘은 폐 휴대폰 재생사업이라는 측면에서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아직 성능이 남아있는 휴대폰 배터리를 활용해 재생 보조배터리를 만들기도 한다. 연간 폐 휴대폰 수거 규모는 약 7만5,000대이고, 한 달에 약 2,000대의 중고폰을 판매하고 있다.

다시 태어난 중고폰을 찾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초고가 휴대폰이 쏟아지는 가운데,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나 전화 등 최소한의 기능만 사용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주요 고객이다. 비교적 최신 기종의 휴대폰은 재고 확보가 쉽지 않을 정도로 금세 팔려나간다.

폐 휴대폰에서 다시 태어난 중고폰들이 판매를 기다리고 있다. /권정두 기자
폐 휴대폰에서 다시 태어난 중고폰들이 판매를 기다리고 있다. /권정두 기자

에코티앤엘이 사업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폐 휴대폰을 확보하는 일이다. 동시에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한상무 에코티앤엘 대표는 “숙련된 전문인력이 있어 폐 휴대폰 재생작업은 많은 물량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하다. 중고폰 수요 또한 넘쳐난다. 문제는 폐 휴대폰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 많은 폐 휴대푠이 수거된다면 더 많은 재생이 가능할텐데 그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폐 휴대폰 수거가 부족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있다. 하나는 폐 휴대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및 수거 시스템의 부재다. 폐 휴대폰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잘 알지 못해 서랍 구석에 방치해두거나 쓰레기로 버리는 이들이 상당수다.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 수거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전체 규모에 비하면 태부족한 실정이다.

다른 하나는 보안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 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자신이 쓰던 휴대폰을 통해 민감한 정보가 새어나가거나 범죄 피해를 당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에코티앤엘 측은 이러한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한상무 대표는 “우리의 전문인력이 공장초기화 작업을 두 번만 해도 99%의 정보가 사라진다. 보안 문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강력한 개인정보 삭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언론을 통해 포렌식으로 복구했다는 등의 소식을 접하다보니 더욱 막연한 우려가 생기는 것 같은데, 포렌식은 상당한 비용과 전문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에코티앤엘은 폐 휴대폰 수거를 위해 대기업과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작은 사회적기업의 고군분투만으로는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폐 휴대폰이 너무나도 쉽게 버려지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대가 필요한 대목이다.

에코티앤엘의 중고폰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에코티앤엘
에코티앤엘의 중고폰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에코티앤엘

◇ “사회적기업, 가치와 사업의 균형이 중요”

에코티앤엘은 폐 휴대폰을 중고폰으로 재생시키는 환경적 측면 외에도 장애인 고용으로 사회적기업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현재 2명의 장애인 전문인력이 숙련된 기술을 갖춘 채 근무 중이고, 최근엔 3명의 장애인에 대해 직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인 계기로 장애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밝힌 한상무 대표는 “폐 휴대폰을 중고폰으로 재생하는 작업은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거나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숙련도에 따라 작업효율이 크게 달라진다.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이라는 점에서 장애인에게 이런 기술과 일이 주어진다면,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작업을 익히기까지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사업 또한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한상무 대표는 “결국 시간이 답이었다”고 웃었지만, 사회적기업이 명분에만 사로잡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회도 빼놓지 않았다.

“사회적기업으로서 추구하는 가치와 사업 본연의 성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가치에만 매몰돼서도, 사업 성공에만 집착해서도 안 되는 게 사회적기업이죠. 물론 어느 정도 어려운 시간을 겪는 것은 사회적기업가에게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훗날 또 다른 어려움을 이겨내는 자양분이 되더군요.”

한상무 대표는 처음부터 환경문제에 큰 관심이 있었거나, 어떠한 사명감에 의해 사회적기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일상 속 작은 인식의 변화가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고, 그 사업이 자연스레 환경문제와 맞닿은 가치 있는 일로 이어졌다. 여기에 장애인 고용,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과 같은 또 다른 가치까지 더해지면서 에코티앤엘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더욱 기여하고 있다.

한상무 대표는 “우리나라는 사회적기업의 역사가 짧고 사회적 인식에서도 일종의 선입견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에코티앤엘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적기업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