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작은 눈, 동그란 얼굴에 가득 띤 행복한 상괭이는 ‘미소 천사’라는 별명을 가진 돌고래다. 안타깝게도 과거 우리나라 연안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상괭이는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상태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미국 속담 중에 ‘웃음이 최고의 화장품(laughter is the best cosmetics)’이라는 말이 있다. 웃는 얼굴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의미다. 이는 사람이나 동물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속담일 듯하다.

돌고래 ‘상괭이’도 이 속담에 잘 어울리는 동물이다. 작은 눈, 동그란 얼굴에 가득 띤 행복한 상괭이의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상괭이의 행복한 미소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상괭이는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기 때문이다.

◇ 한강에서도 볼 수 있었던 ‘미소천사’ 상괭이… 지금은 멸종위기 ‘취약’종

이빨고래목 쇠돌고래과에 속하는 상괭이(학명:Neophocaena asiaeorientalis)는 약 1.5~1.9m 정도까지 자라는 작은 돌고래다. 몸빛은 회백색이며 지역별로 쇠물돼지, 쇠물치, 수애기, 쇠애기, 슈우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항상 미소를 띤 표정 때문에 ‘미소 천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 과거 우리나라 연안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해양 동물로 바다뿐만 아니라 한강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조선시대 어류학자 정약전이 작성한 해양생물도감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상괭이를 ‘한강에 나타난 인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어류학자 정약전이 작성한 해양생물도감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상괭이를 ‘한강에 나타난 인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뉴시스

 

"지금 서해와 남해에 두 종류의 인어가 있는데 그 하나는 상광어(尙光漁)이며

모양이 사람을 닮아 두 개의 젖이 있다. 본초에서 말하는 해돈어(海豚漁)가 그것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

하지만 최근 들어 상괭이의 개체수는 크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2004년 기준 약 3만6,000여 마리였던 상괭이의 개체수는 2016년 1만7,000여 마리로 12년새 무려 53%나 감소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 동안 연평균 1,100여 마리의 상괭이가 폐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급격한 개체수 감소로 인해 상괭이는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에까지 내몰린 상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발표한 멸종위기종 목록인 ‘레드 리스트’에 따르면 현재 상괭이는 멸종위기 직전으로 분류되는 ‘취약종(VU)’에 해당한다. 

때문에 상괭이는 현재 1979년 2월부터 1979년 2월부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Ⅰ에 등재돼 우리나라를 포함, 전세계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또한 현재 해양수산부에서는 해양보호생물 83종 가운데 상괭이를 포함해 정부 차원에서의 보호에 나선 상황이다.

최근 들어 상괭이의 개체수는 크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2004년 기준 약 3만6,000여 마리였던 상괭이의 개체수는 2016년 1만7,000여 마리로 12년새 무려 53%나 감소했다. 사진은 여수 해안가에서 사체로 발견된 상괭이의 모습./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

◇ 상괭이 위협하는 ‘혼획’… 안강망 속에 상괭이가 갇히면 그대로 익사

과거 한반도에서 흔한 돌고래종 중 하나였던 상괭이가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최근 어업활동의 증가와 연안개발과 환경오염에 의한 서식지 훼손 등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특히 ‘혼획’이 상괭이의 생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혼획(混獲, bycatch)’이란 어업과정에서 특정 종류의 어패류를 잡으려고 수행한 활동의 결과 본래 목적이 아닌 종이 섞여 잡히는 것을 말한다. 이때 특히 치명적인 것은 ‘안강망(鮟鱇網)’이다. 

안강망은 조류가 빠른 해역의 입구에 자루모양의 그물을 고정시켜놓고 그 안에 들어온 물고기를 잡는 어업방식이다. 이때 안강망의 경우 그물의 입구는 넓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기 때문에 다른 해양생물들과 그물 내부에서 뒤엉킨 상괭이는 빠져나오질 못하고 결국 질식해 죽고 만다.

상괭이를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안강망(鮟鱇網)’의 모습. 안강망은 조류가 빠른 해역의 입구에 자루모양의 그물을 고정시켜놓고 그 안에 들어온 물고기를 잡는 어업방식이다./ 해양수산부

글로벌 자연보호 비영리기구 세계자연기금(WWF)은 ‘A Journey Towards Sustainable Seafood(2018)’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혼획되는 고래류는 상괭이로 국제적으로 심각한 보호종이지만 고기잡이 그물에 걸리는 혼획때문에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다”며 “2010년~2017년 사이에 보고된 상괭이 혼획은 총 9,052마리로 전체 고래류의 혼획 및 좌초의 67.2%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어업에 사용되는 어구들이 현대화, 최첨단화 되면서 적은 노력으로도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종을 특정하여 잡는 기술이 부족하다면 엉뚱한 해양생물이 위협을 받게 된다”며 “바다거북, 돌고래, 고래, 상어, 가오리, 바닷새 등이 그물이나 낚싯바늘에 걸려 죽거나, 죽은 채로 발견되어 바다에 버려지는 일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혼획뿐만 아니라 바다 곳곳에 버려진 폐그물들 역시 상괭이의 생태를 위협하는 존재들이다. 그린피스 등 글로벌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전 세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10%를 차지하는 폐그물은 바닷속 해류를 따라 떠돌다 해양생물들의 몸에 감기는 치명적인 ‘덫’이 될 수 있다.

혼획뿐만 아니라 바다 곳곳에 버려진 폐그물들 역시 상괭이의 생태를 위협하는 존재들이다. 사진은 여수 해안가에 버려진 폐어구들이 뒤엉킨 모습./ 시사위크DB

◇ 전문가들, 혼획 방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 필요… 추가 연구도 지속해야

이처럼 혼획과 폐그물 방치로 인한 상괭이의 멸종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전문가들은 상괭이 보호를 위한 방안 마련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괭이와 같은 중소형 해양포유류 경우 백상아리와 같은 대형 포식자의 주요 먹이임과 동시에 소형 물고기의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는 포식자의 역할도 동시에 하는 바다 생태계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환경보호단체 환경운동연합도 “고래류는 최상위 우산종으로 해양생태 먹이사슬을 조율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임신과 출산의 길이가 길어 개체수가 한 번 감소하면 멸종에 취약해지고,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멸종은 단순히 한 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다른 종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상괭이와 같은 중소형 해양포유류들이 해양생태 먹이사슬을 조율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에서 물에 떠밀려온 상괭이를 구조하는 모습./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

그렇다면 상괭이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선 어업 도구의 변경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상괭이 등 해양포유류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있는 혼획을 막을 수 있도록 안강망 어구에 탈출 유도망 전개 성능을 향상시키자는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이건호 연구원 등 연구진들은 최근 발표한 ‘안강망의 그물 구성에 따른 상괭이 탈출 유도망의 전개 성능 차이(2021)’ 연구 결과 보고서에서 “상괭이 탈출 유도망은 멸종 위기에 처한 상괭이 보호를 위해 개발됐다”며 “자체 시험을 통해서 혼획 저감 효과가 있는 것도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상괭이가 탈출 유도망 속에 들어왔을 때의 행동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비록 본 연구를 통해 상대적으로 공극률이 높은 그물이 탈출 유도망의 전개 성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이것이 상괭이 탈출에 어떻게 이바지할지는 추정만 할 뿐 실제 영향은 알 수가 없다”며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강조했다.

웃는 얼굴의 상괭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노력이 절실하다./ WWF

상괭이에 관한 취재를 마치고 나니 문득 고전 영화 ‘프리윌리’에서 나왔던 대사 한 구절 ‘살리나 에이요 아이에시스(Salanaa Eiyung Ayesis)’가 떠올랐다. 옛 인디언 부족이 ‘나에게 힘을 주세요’라고 돌고래신께 빌었던 말이라고 한다. 기사를 마치면서 머릿속을 맴도는 이 문구를 조심스레 읊조려본다. 상괭이들이 멸종이라는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말이다. “Salanaa Eiyung Ay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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