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온몸을 바쳐 새끼를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가시고기(Pungitius sinensis)’./ 국립수산과학원
온몸을 바쳐 새끼를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가시고기(Pungitius sinensis)’./ 국립수산과학원

시사위크=강준혁 기자  얼마 전 한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식당 TV에서는 ‘광명 세모자 살인사건’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40대 남성 A씨가 자신의 아내와 초·중학생 아들 두 명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었다. 살해 동기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아들과 아내가 자신을 ‘무시’해서였다. 이 뉴스를 본 지인은 “짐승 같은 놈”이라며 분노했다.

이 경우처럼 인두겁을 쓰고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우린 ‘짐승만도 못하다’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모가 자식을 돌보지 않거나 해칠 때 자주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비난은 진짜 ‘동물’들에겐 매우 모욕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 어떤 동물들보다 절절한 ‘부성애’를 보여주는 ‘가시고기’들에겐 말이다.

◇ 몸과 마음 모두 바치는 ‘부성애’의 상징

가시고기(Pungitius sinensis)는 큰가시고기목 큰가시고기과에 속하는 민물고기의 한 종이다. 몸길이는 5~6cm로 작은 편이며, 납작하고 가는 몸체를 가지고 있다. 가시고기라는 이름처럼 등에는 약 7~10개 정도의 날카롭고 가는 가시가 달려있다. 전체적으로 옅은 갈색을 띄며, 얼룩덜룩한 무늬가 특징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이기도 하다.

주요 서식지는 하천·중하류의 유속이 느린 지역이다. 1·2급수 이상의 물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에 ‘수질 판별기’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1·2급수의 하천은 맑고 투명하며, 간단한 소독·여과 과정만 거치면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다. 이 깨끗한 하천에서 가시고기는 곤충의 유충, 실지렁이, 물벼룩 등의 작은 수생생물을 잡아먹고 산다.

이들이 다른 물고기와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부성애’다. 4~8월 산란기가 되면 수컷 가시고기는 수초, 갈대, 식물의 뿌리, 나뭇잎 등을 이용해 둥지를 만든다. 수컷은 이렇게 만들어진 둥지에 암컷 가시고기를 유혹한 후, 약 20초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신혼 생활을 보낸다. 이때 암컷은 알을 낳고 떠나고, 수컷은 남아 알을 돌보기 시작한다.

가시고기가 새끼를 돌보기 위해 만든 집의 모습./국립수산과학원
가시고기가 새끼를 돌보기 위해 만든 집의 모습./국립수산과학원

이때부터 기나긴 수컷의 ‘돌봄’ 여정이 시작된다. 가시고기의 알이 부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여일. 인간 기준에선 매우 짧은 시간일지 모르겠지만, 이 기간 동안 수컷 가시고기는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둥지를 돌본다. 아무런 먹이 활동도 하지 않는다. 그저 둥지에 산소가 잘 공급되도록 쉬지 않고 청소하며, 포식자들을 쫓아내기에만 열중한다.

‘10일’의 긴 시간 동안 수컷 가시고기의 지극한 돌봄을 받은 알들은 하나둘 부화되기 시작한다. 둥지를 지키느라 온몸이 상하고, 먹이도 먹지 못한 수컷 가시고기는 기운이 빠져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육신마저 부화를 마친 새끼들이 험난한 자연으로 나가기 전 필요한 영양분이 돼 준다. 이 헌신적인 수컷 가시고기의 노력 덕에 가시고기 새끼들의 생존률은 90% 이상에 육박한다.

자신의 목숨과 육신까지 바치는 가시고기의 부성애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2000년 발표된 조창인 작가의 장편 소설 ‘가시고기’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정성 덕분에 병이 완치되고, 외국의 유명한 예술학교로 진학한다. 하지만 아들의 간호 과정에서 지쳐버린 아버지는 병을 얻어 죽는다. 마치 수컷 가시고기가 정성을 다해 아들을 ‘사회(자연)’으로 보내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 환경오염과 외래종 유입, 가시고기 서식지 50% 가까이 사라져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부성애와 깨끗한 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가시고기를 자연에서 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현재 가시고기는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선 지난 2005년부터 가시고기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멸종위기종들이 그렇듯, 가시고기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이유 역시 ‘환경오염’이 가장 큰 원인이다. 1990년대부터 도시화를 거치며 하천, 계곡 등 가시고기의 서식지들 대다수가 파괴됐다. 이와 동시에 산업화도 급격히 이뤄지면서 여기저기 공장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이 공장들에선 막대한 양의 폐수가 쏟아져 하천에 방류됐다. 또 대량 농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약의 사용량도 급증했다.

가시고기의 개체수 감소 추이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도 쉽게 확인 가능하다. 고명훈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연구원이 발표한 ‘멸종위기어류 가시고기의 분포현황 및 멸종위협 등급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가시고기는 8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국내 하천서 50% 이상이 사라졌다.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에서 인공종묘생산기술로 부화시킨 가시고기 치어의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에서 인공종묘생산기술로 부화시킨 가시고기 치어의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7년 기준 가시고기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 국내 하천은 23곳이었다. 하지만 2015년 재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시고기가 서식한 곳은 12곳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특히 2007년 기준 다수의 가시고기 개체가 서식했던 정동진천의 경우, 관광지 개발로 하천이 오염돼 가시고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생동물이 절멸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외래종 유입도 가시고기에겐 치명적이었다. 고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제천의림지는 한강과 이어진 하천 중 가시고기가 유일하게 서식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2015년 재조사를 진행한 결과, 제천의림지에선 가시고기가 사라졌다. 반면 배스, 블루길 등 외래종 숫자는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연구원은 “제천의림지의 경우, 가시고기의 동소 출현종인 배스와 블루길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었다”며 “이 같은 외래종 및 서식지 변화 등으로 가시고기가 절멸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시고기는 서식지 및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며 “이 조사 결과를 국제 자연 보전 연맹(IUCN) 기준지침서에 따라 멸종위협등급을 평가하면 ‘EN(Endangered)’ 등급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N등급은 ‘절멸 위기’를 뜻한다. 야생에서 가까운 미래에 멸종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종에게 부여되는 등급이다. 해달, 백상아리 등이 이 등급에 속한다.

◇ 국립수산과학원 등 가시고기 복원 노력 지속

가시고기는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가시고기는 생태계 피라미드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 지렁이, 이끼, 미생물, 곤충 등을 잡아먹어 피라미드 최 하단 생물 개체 수 조절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수달, 따오기 등 최상위 포식자들의 먹이가 돼주기도 한다. 따라서 가시고기 개체수의 감소는 곧, 하천 생태계가 파괴됐다는 뜻이다.

때문에 국내 정부 연구기관에선 ‘가시고기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산하 중앙내수면연구소는 2018년부터 가시고기 개체 수 급감에 대비해 ‘인공종묘생산기술’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2010년 1월부터 시작된 ‘담수 수산생물 종 보존 및 복원 연구’ 중 일부다. 가시고기를 포함하 주요 민물생물 16종의 종 보존을 위해 시작됐다. 종보존 생물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할 수 있는 ‘유전자 마커’ 개발과 수산자원 보존 및 복원, 증식기술 확보를 통한 새로운 내수면 양식가능성 제시 등을 목표로 한다.

중앙내수면연구소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종묘생산기술은 양식 시설에서 어미 물고기를 인위적으로 기른 다음, 수정란이나 포자를 받아 부화시키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연어, 붕어, 넙치 등 양식 수산업에서 쓰이는 기술이지만, 가시고기와 같은 멸종위기종 복원에도 사용된다.

2019년 6월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에서 진행한 ‘멸종위기 담수어류 가시고기 방류행사’ / 국립수산과학원
2019년 6월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에서 진행한 ‘멸종위기 담수어류 가시고기 방류행사’ / 국립수산과학원

연구팀은 1년여 간의 연구 기간 동안 인공종묘생산기술로 복원한 가시고기 치어 개체들을 다수 부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치어들은 지난 2019년 6월 강원도 지역 하천들에 방류됐다. 중앙내수면연구소는 가시고기가 아름다운 외형을 가지고 있는 물고기인 만큼, 개체수 증진 사업과 더불어 향후 관상어 품종으로 개발하는 사업도 진행한다는 목표다.

최근 광명 세모자 살인사건뿐만 아니라 전남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 등 부모가 자식을 해쳤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 자주 들려오고 있다. 또 자식을 버리고 간 아버지, 어머니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 과도한 경쟁사회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몬 것은 아닌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라는 신성한 역할이 사라져선 결코 안 될 것이다. 멸종위기에 선 가시고기가 오늘도 새끼를 돌보기 위해 온 몸을 다 바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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