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일상이 돼버린 키오스크(무인단말기). ‘키오스크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당은 물론이고 카페·극장·병원 등 우리 생활 곳곳 스며든 키오스크에 노인은 서러운 눈물이 흐른다.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해 먹고, 원하는 것을 보고 누리는 당연한 일이 키오스크라는 벽 앞에서 어려운 이야기가 됐기 때문이다. 청년보다 노인이 더 많은 대한민국에서 우리도 언젠가 또 한 명의 노인이 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키오스크로 겪는 좌절을 무심히 넘겨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소비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시사위크>가 키오스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주문은 키오스크로 해주세요.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요즘 식당과 카페를 가면 이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디지털에 나름 친숙하다고 자부하는 젊은 세대도 기계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다른 요구를 하는 키오스크 앞에서 헤매기 일쑤인데,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해가 다르게 늘어나는 키오스크에 노인들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
◇ 일상에 침투한 키오스크
물품이나 서비스를 주문하는 데 사용되는 단말기인 키오스크는 국내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이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키오스크 정보 접근성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보급 현황은 △2021년 21만33대 △2022년 45만4,741대 △2023년 53만6,602대로 나타났다. 3년 사이에 30만대 이상이 증가한 셈이다.
실제 외식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인건비 절약, 비대면 결제 가능 등의 이유로 키오스크를 적극 도입했다. 결제 단말기 제조 및 공급 회사인 토스플레이스는 지난해 12월 기준 토스 무인단말기를 사용하는 가맹점 수가 8만5,000곳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4.5배에 달하는 수치다.
‘키오스크 열풍’은 단순히 외식 업계만의 흐름이 아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공개한 키오스크 운영대수(추정치)에 따르면, △영화관‧공연시설은 2021년 2,281대에서 2023년 2,656대로 키오스크 설치를 확대했다. △교통시설 역시 2021년 9,382대에서 2023년 1만1,802대로 키오스크를 적극 도입했다.
병원에서도 키오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23년 병원의 키오스크 설치 대수는 3만7,569대에 달한다. 2021년(4만1,312대) 설치된 키오스크 수에 비해서는 적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이밖에도 통장을 관리할 때도,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도, 행정복지센터에서 증명서를 발급할 때도 키오스크와 마주해야 한다. 더욱이 무인 카페, 무인 세탁소, 무인 반려동물용품 판매점 등 무인점포가 늘어나는 사회에서 키오스크와의 대면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2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투명 장벽’
키오스크 보급 확산에 큰 영향을 줬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 2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어르신들에게 키오스크는 어렵기만 하다. 실제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용기를 내 키오스크 앞에 선 황규화(73세) 어르신은 “메뉴가 어떤 메뉴인지도 잘 모르겠고, 원하는 메뉴도 한눈에 안 들어온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4일 기자는 서울노인복지센터의 협조를 받아 복지관을 이용하는 세 어르신이 실제 커피숍에 가서 음료를 주문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주문의 전제조건은 가급적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키오스크로 주문을 완료하는 것이었다.
먼저 황규화 어르신이 주문을 위해 키오스크 앞으로 나섰다. 딸기말차크림라떼를 먹고 싶다고 밝힌 황 어르신은 메뉴가 적힌 화면에 원하는 게 없자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윽고 상단에 ‘논커피(NON-COFFEE)’ 카테고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간신히 원하는 메뉴를 선택했다.
최순례(72세) 어르신도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황 어르신과 마찬가지로 최순례 어르신도 한눈에 키오스크가 보이지 않는 듯 “다른 메뉴는 어딨지?”라며 한동안 상단의 카테고리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메뉴를 선택한 후 시럽, 휘핑크림 등을 선택하라는 옵션 선택창이 뜨자 “뭐 어떻게 하라는 건지”라며 어쩔 줄 몰라 했고, 결국 기자의 도움을 받고서야 주문을 끝낼 수 있었다.
마지막 순서로 나선 최영식(74세) 어르신은 메뉴를 선택한 후 차가운 음료인지 따뜻한 음료인지를 묻는 선택창과 결제 과정에서 어려움을 호소했다. 최순례 어르신과 마찬가지로 최영식 어르신도 한 가지만을 묻는 것이 아닌, 여러 옵션을 하나의 창에서 모두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은 듯 했다. 결제 과정에서 카드를 삽입하는 위치가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아 잘못된 위치에 넣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주문을 마친 최영식 어르신은 “복지관에 있는 커피숍에 키오스크가 있어서 이용해 본 적이 있는데도 헷갈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AI 시대에 키오스크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사람이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 등 일정 시간대를 정해 점원이 기기 이용을 도와주면 노인들이 매장을 이용하기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조부모나 부모 혹은 내 주위의 누군가가 어떠한 차별 없이 편하게 밥 한 끼, 차 한 잔을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자,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사회의 모습이지 않을까. 초고령사회 대한민국, 이제 현실적인 변화가 이뤄져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