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 박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요즘 웃는 날이 많아졌다. 탱크와 함정에 이어 포탄 생산라인까지 풀가동되고 있는 상황에 연신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인민생활 부문으로 불리는 민간경제에서의 부진을 접하며 연신 짜증을 내고 담당 간부들에게 대한 질책과 경고를 쏟아내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런 모습은 올 들어 본격화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초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참관을 시작으로 2월 말 전략순항미사일 발사훈련, 3월 반(反)항공미사일 시험발사 및 무인항공기 사업, 4월 신형 구축함 진수식 등을 가졌다.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와 양산 체계 구축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이달 들어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탱크공장과 포탄 생산 시설 등을 잇달아 찾아 살피고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과거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던 상황에서 벗어난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건 그가 각 부문별로 구체적인 생산목표나 현대화 등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포탄 생산과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이 “기업소의 노동계급이 포병무력 강화이자 군대의 전투력 강화이고 싸움준비 완성임을 명심하고 더 많은 포탄을 생산하여 우리 무력의 전력 확대에 이바지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하는 언급까지 내놓았다는 게 관영 매체들의 보도다. 군수공업 생산라인이 정상화하고 있는데 따른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렇게 된 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큰 몫을 했다. 지난 2023년 9월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우주센터에서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러 군사밀착을 위한 의기투합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간절하게 원하던 군사정찰위성 기술 제공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고, 두 달 뒤 북한은 위성발사에 성공했다.
이어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상호 방위조약 성격을 띠는 북러 신조약을 체결했다. 우크라이나전에 북한군을 대규모로 파견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북한은 같은 해 10월 중순 1만1,000명의 전투병을 러시아 지원을 위해 보냈고, 올 초 3,000명 규모를 추가 파견한 것으로 국가정보원은 밝히고 있다.
북한은 이에 앞서 155mm 포탄 등 수백만발의 물량을 러시아에 지원한 것으로도 파악되고 있다. 170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를 200문정도 지원했고, 올 들어 추가로 보낸 병력도 포병 위주인 것으로 우리 군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북한의 포탄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의 포탄 생산라인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포탄생산 실적이 평년 수준의 4배, 최고 생산년도 수준의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군수생산의 물량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건 이례적인 일인데, 이런 물량 증가는 대러 지원용 포탄 생산을 급격히 늘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처럼 탱크와 함정, 자폭드론, 포탄 등 재래식 무기의 생산 정상화와 현대와 등에 집착하고 있는 건 K-방산에 자극받은 측면이 크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동안 북한은 한국의 각종 무기체계가 서방국가로부터 각광받고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해 10월 국군의 날을 계기로 한국의 고위력 탄도미사일 현무-5가 전격 공개됐을 때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나서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들어 핵잠수함 개발을 언급하고 러시아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인 베리예프(A50)와 유사한 시스템을 갖춘 항공기를 선보인 건 푸틴 대통령의 대북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대규모 전투병 파견에 천문학적 물량의 포탄 지원으로 러시아를 도운 대가로 그동안 부진을 면치 못해온 재래식 전력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를 통해 한국에 비해 열세인 해·공군의 전력을 만회하고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어 다른 분야에서도 우위를 점하겠다는 구상일 수 있다. 무엇보다 K-방산의 기세에 눌려있던 데서 벗어나 내수는 물론 무기 해외수출을 통한 외화획득이나 방산외교에서 성과를 거두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한계도 분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의 도발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시스템이 촘촘하다는 점은 넘기 힘든 벽일 수 있다.
집권 15년 동안 핵과 미사일 도발에 매달리면서 유엔 등은 대북 제재망을 가동해 왔고 불법적인 무기 수출이나 기술·원자재의 대북유입을 막아왔다. NK-방산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다 해도 이를 구입하거나 군사적 밀착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또 러시아에 의존해 군사기술을 획득하거나 방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해도 북러 간 밀착을 지속시켜줄 요인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힐 수 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한으로부터의 무기 공급을 받기 위해 포탄 생산 등에서 일정한 기술지원이나 원료·설비를 줄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전 종전 이후에도 이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푸틴이 미국의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거부감을 감안해 민감한 첨단 군사기술의 대북이전을 꺼릴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북한에 대한 군사정찰위성 지원을 중단하는 바람에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초 “2024년 중 3기의 정찰위성을 쏘겠다”고 공언했지만 한 발도 발사하지 못해 망신을 당한 대목은 주목해 볼만하다.
끝으로 북한의 전반적인 경제상황이 NK-방산의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지경이란 점도 문제다. 방산 분야는 한 국가나 체제의 과학기술과 산업 역량이 축적돼야 일정한 성과가 가능하다. 해외수출 등을 겨냥한다면 초격차의 기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북한 경제가 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란 게 대북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