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硏, 2만 기압 상태서 얼음 생성 과정 마이크로초 단위 관측 성공
21번째 얼음 결정상인 ‘얼음 XXI’도 세계 최초로 발견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얼음은 기온 0℃ 이하의 ‘영하’에서만 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초고압 환경에서 상온에서 얼음을 얼리는데 성공했다.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 연구, 신소재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학문적 가치가 있는 연구로 평가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은 상온에서 2만 기압(2GPa)이 넘는 초고압 상태의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을 마이크로초(μs, 100만분의 1초) 단위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실험으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물의 결정화 경로와 21번째 결정상인 ‘얼음 XXI(Ice XXI)’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얼음은 0℃이하에서 물이 결정화되면서 생긴다. 하지만 상온이나 심지어 물이 끓는 고온에서도 생길 수 있다. 액체가 고체로 변하는 결정화 현상은 온도뿐만 아니라 ‘압력’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상온에서 물은 ‘결정화 압력’인 9,600기압(0.96 GPa) 이상의 압력을 받으면 얼음으로 상(相, Ice VI)이 변한다.
물이 얼음으로 변할 때, 물 분자 간의 수소결합 네트워크가 온도와 압력에 따라 복잡하게 왜곡, 재배열되면서 다양한 얼음상을 동반하는 결정화 과정이 나타난다. 물과 얼음의 복잡한 상전이 및 구조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을 극한 수준의 압력과 온도로 제어하면 지구상에 없던 신소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은 한 세기 이상 온도와 압력 조건을 조절해 20가지의 결정질 얼음상을 발견해 왔다. 얼음상을 발견한 온도와 압력의 범위는 각 2,000 켈빈(K) 이상과 100만 기압(100 GPa) 이상까지 넓게 형성돼있다. 그 중 대기압(0 GPa)부터 2만 기압 사이의 영역은 물의 상전이가 가장 복잡하게 생기는 핵심 영역으로 10개 이상의 얼음상이 밀집돼 있다.
표준연 우주극한측정그룹은 자체 개발한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 셀(dDAC)’ 장비를 이용해 상온에서 2만 기압 이상까지 물이 액체로 존재하는 즉, 결정화 압력의 200%가 넘는 초과압(Supercompression) 상태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KRISS 연구팀은 세계 최대 규모의 X선 레이저 시설인 ‘유로피언 XFEL’을 통해 초과압 상태의 물이 결정화되는 과정을 마이크로초 시간 분해로 관측했다. 그 결과 상온에서 지금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5가지 이상의 결정화 경로를 발견했다. 해당 경로를 분석해 21번째 결정상인 ‘얼음 XXI(Ice XXI)’도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
상온에서 형성된 얼음 XXI는 기존에 알려진 얼음상에 비해 결정구조의 최소 반복 단위인 단위포(Unit Cell)가 압도적으로 크다. 바닥 면의 두 변의 길이가 같으면서 납작한 직육면체 형상의 결정 구조를 가졌다. 연구진은 얼음 XXI 단위포 내의 물 분자 위치정보를 분석해 구조를 규명했다.
이윤희 표준연 우주극한측정그룹 책임연구원은 “얼음 XXI의 밀도는 목성과 토성의 얼음 위성 내부에 존재하는 초고압 얼음층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이번 발견이 극한 환경에서 우주 생명체의 근원을 탐색하는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근우 우주극한측정그룹 책임연구원은 “자체 개발한 dDAC 기술과 XFEL을 융합해 기존 장비로는 접근 불가능했던 찰나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며 “ 초고압과 같은 미지의 극한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노력이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밝혔다.
이번 연구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에 10월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