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계기로 ‘족벌 재벌 경영 체제’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제약업체 유한양행 ‘창업주의 정신’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유한양행 창업주 故 유일한 박사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구적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회사를 ‘자녀’가 아닌 ‘전문 경영인’에게 물려주고, 창업주 일가가 회사의 지배권을 갖고 전횡을 휘두르는 것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이런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창업주 일가는 현재 유한양행의 경영에 일절 개입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사위크>에선 유한양행 창업주의 ‘경영철학’을 되짚어보고, 창업주 사후 2․3세들의 삶을 살펴봤다.
“소유 주식 14만941주는 전부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공익재단)’에 기부한다.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가라. 딸 유재라에게는 학교(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000평을 준다. 그 땅을 동산으로 꾸미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게해라. 손녀에게는 앞으로 대학졸업 때까지 필요한 학자금 1만 달러를 준다.”
지난 1971년 3월 11일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별세 한 뒤 공개된 유언장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자신이 살아생전 쌓아놓았던 재산과 회사의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대신, 사회에 환원한 채 떠났기 때문이다.
◇ 전문경영인 체제 선구적 도입… 자녀들 경영에서 배제
일제 강점기 때인 19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는 국내 기업 역사에서 특별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제약업계 최초의 기업공개(IPO)를 단행했으며, 국내 최초의 종업원지주제 채택, 전문경영인제 등 ‘선진경영기법’을 도입했다.
무엇보다는 그는 가족을 경영에서 철저하게 배제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 미국에 있던 아들 유일선 씨를 불러 들여 부사장 직위에 앉힌 적도 있으나, 몇 년 후에 아들을 회사에 내보냈다. 이는 가족이 회사를 세습하면, 파벌이 생기고 전문경영인 인재 육성도 역행하게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 때문에 유한양행은 창업주의 후손들이 소유한 회사가 아닌, 공익 재단(유한재단)이 최대주주가 되고,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회사로 현재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유 박사 일가들은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회사의 경영에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창업주 일가들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들의 근황은 거의 알려진 적이 없다. 유 박사는 미국 유학 시절 중국인 출신 여의사 호미리 여사와 만나 결혼해 1남 1녀의 자식을 뒀다. 유 박사를 한국에서 주로 거주하며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주력했고, 가족들은 미국에서 거주했다.
본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우선 장남인 유일선 씨는 현재도 미국에 거주 중이다. 그는 미국에서 그동안 변호사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거의 방문하지 않고 있지만, ‘창립기념일’과 ‘유한재단 주관 시상식’ 등 회사의 큰 행사가 있을 때, 회사의 초청에 의해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
◇ 창업주 유지 받든 2·3세 …경영 일절 간섭 안 해
지난 2007년 유한재단 ‘유일한 상’ 시상식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었다. ‘유일한 상’은 유한양행의 창업자 고 유일한 박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유한재단이 제정한 상이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당시 ‘유일한 상’ 시상식 행사에 참석했을 때, 유일선 씨가 가족 인사를 통해 ‘전문경영체제’를 잘 발전시켜 달라”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이후에는 뵌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일선 씨의 무남독녀인 유일링(한국명 유은령) 씨도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 예일대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유일링 씨는 과거 ‘한국’에서 잠시 광고 업무를 했다고 알려지며 미국에서 마케팅 컨설팅사를 운영했다고 전해졌다.
유일링 씨 역시 유한양행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고 있다. 다만 ‘유한학원’ 이사로는 등재돼있다고 알려졌다. 유한학원은 유 박사가 설립한 사립법인으로,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대학을 산하에 두고 있다. 유일링 씨는 이사회에 참석하기 차원에서 1년에 한번 꼴로 한국에 방문한다고 유한양행 관계자는 전했다.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뒤, 미육군 관리관, 주월남 미육군 작전참모부 및 주한 미8군사령부 등의 군무원을 역임한 유재라 씨는 유한재단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유한재단 1대 이사장으로 활동한 그는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으로 귀감을 샀다.
특히 유재라 씨는 1991년 미국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현 유한동산과 개인소유의 유한양행 주식을 포함한 당시 200억원대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대를 이었다’는 칭송을 받았다. 주한 미군과 결혼한 유재라 씨는 자녀가 없다. 유한공고에 자리한 유한동산에는 유재라 씨와 유일한 박사의 묘역이 세워져있다고 알려진다.
이외에 유 박사의 형제들 역시 유한양행 경영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유 박사의 동생인 故유특한 씨는 유유제약을 세워 독립했다.
이 같은 유한양행의 창업주의 경영철학과 2세들의 모습은 최근 ‘족벌 경영 체제’의 민낯을 드러낸 한진그룹 일가들의 사건들과 비교되며 재조명을 받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태는 회사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제왕적으로 군림했던 오너 일가가 회사를 얼마나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 준 사례였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안긴 바 있다.
이같은 관심에 대해 유한양행 관계자는 “책임감이 더욱 무겁다. 이번 관심을 계기로 회사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다 됐다”며 “창업주의 정신을 ‘현대적인 가치’와 맞게 훼손시키지 않고, 기업 활동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