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위기’다. 최근 부쩍 더 많이 들려오는 얘기다. 청년 인구의 수도권 이탈,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지방 소멸위기론’까지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노인만 남은 마을은 소멸 위기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마을, 나아가 지역의 붕괴는 지방자치 안정성을 흔들고, 나라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엄중한 위기의식을 갖고 적합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시사위크>에선 이 같은 시각 아래 현 위기 상황을 진단해보고 과제를 발굴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농촌 활성화 대책으로 ‘농민기본소득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농업은 모든 국가의 근간이다. 우리나라 역시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반세기 간 급격한 산업화 흐름 속에서 농업과 농촌지역은 쇠락기를 걸어왔다. 이제 농촌은 심각한 소멸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상태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소멸위기를 겪고 있는 농촌 지역이 허다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각종 ‘농촌 살리기’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도시와 농촌의 소득 및 발전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농업은 지방의 주요 근간 산업 중 하나다. 농업의 붕괴는 지역 경제 침체와도 직결된다. 이에 ‘농촌 살리기’는 지방소멸 위기 대응 과제로서 매우 중요한 의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속가능한 농촌 살리기 대책 중 하나로 ‘농민기본소득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 인구 줄고 소득 감소… 농업경제·농촌 ‘지속가능성’ 기로  
  

농업은 식량의 기지이자 생명창고다. 그러나 농업과 농촌은 단순히 식량을 공급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농업과 농촌은 국토 환경 및 자연 경관의 보존, 수자원의 형성 및 함양, 홍수 방지, 공동체와 전통 문화 보존, 지역경제 기반 형성 등 다원적·공익적 가치를 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기후변화 위협을 계기로 농업·농촌이 품고 있는 이러한 가치는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농촌경제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은 현재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있다. 농촌은 고령화와 저출산, 인구이탈로 큰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상태다. 통계청이 지난해 4월 발표한 ‘농림어업조사결과’에 따르면 2019년 12월 1일 기준으로 전체 농가는 100만7,000가구로 1년 전보다 1만3700가구(1.3%) 감소했다. 농가 인구는 3%(7만명) 줄어든 224만5,000명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고령으로 농업을 포기하거나 전업해 농가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농가 인구 중 64세 이상 고령자는 46.6%로 전년 동기보다 1.9%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고령화율(14.9%)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농가 인구는 고령화 흐름 속에서 매년 줄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전체 농가는 100만7,000가구로 1년 전보다 1만3700가구(1.3%) 감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에 많은 지자체들은 기존 농업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젊은 농업인의 유입을 꾀하기 위해 각종 지원과 인프라 확충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소멸 위기에 몰린 마을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농촌의 위기는 지방소멸위험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농업계와 전문가들은 농가인구 감소세를 막기 위해선 다양한 정책들이 포괄적으로 마련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소득보장 수준’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농가소득은 평균 4,118만2,000원으로 전년보다 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가소독은 △농업소득 △농업외소득 △이전소득 △비경상소득을 합친 금액이다. 이중 순수한 농업수익은 1,026만1,000원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20.6% 하락한 수치다. 농업수익은 2000년 이후 1,000만원대 선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이전소득이 공적 보조금과 사적 보조금의 증가 등으로 전년보다 13% 가량 늘면서 평균 소득의 큰 폭의 감소세를 방어했다. 

정부는 농가소득 보전을 위한 일정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직접지불제도(직불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기존 제도를 개편해 소규모 농가에 혜택을 강화하고 공익성에 중점을 둔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만으로는 농업 가구의 낮은 소득 수준을 방어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농가 간의 소득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농촌경제연구소가 발간한 ‘2019년 농가경제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농가소득 5분위 배율은 10.9배로 조사됐다. 상위 농가 20%(5분위)와 하위 농가 20%(1분위) 소득 격차가 11배가량에 달한다는 의미다. 소득 1분위 농가의 평균소득은 2019년 926만원에 불과한 반면, 5분위 평균소득은 1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 “최소한의 소득 수준 보장돼야”… 농민기본소득 논의 탄력

이에 국내 농촌 농가 중 대부분이 소규모 농가인 점을 감안할 때, 보다 적극적인 기본소득 보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농민기본소득제’ 도입이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뜻하는 개념이다. 지난해 재난지원금 지급을 계기로 기본소득 논의가 사회적인 주요 의제로 떠오른 가운데 농민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의도 보다 탄력이 붙고 있는 모양새다. 

농민기본소득 논의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후보들이 ‘농어민수당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농민수당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보상 차원에서 농지면적이나 소득에 관계없이 농가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전남 해남군은 지난 2019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농민수당을 도입해 화제를 낳았다. 

해남군은 시행 첫해 농업경영체로 등록하고 1년 이상 해남군에 주소를 두고 실경작하는 농업인(개인)을 대상으로 농가별로 연 6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지난해부터 어민까지 대상에 포함된 전라남도 농어민 공익수당으로 제도가 확대된 상태다. 농민수당은 지역 화폐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이는 지역 상가 등에서 사용하게 함으로써 지역 내 경제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차원이다.  

이후 농민수당 제도는 해남군은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현재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전남과 전북, 충남, 강원, 제주, 경북 등 지자체에서 농민수당 지원 조례를 제정해 수당 지급을 시작했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농민수당액은 지자체별로 다르며 농가 한 곳당 연간 50만원~ 80만원 가량이 지급되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특정 농촌 지역마을을 선정해 해당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일정한 기본소득을 지급한 뒤, 삶을 변화를 살펴보는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경기도

최근 농민기본소득 논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개념으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농민 1인당 일정액의 지역 화폐를 재산·소득 요건에 상관없이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추진 중이다. 기존 농민수당이 농가 단위로 주는 것과 차별화된 점이다. 이는 청년·여성 등 모든 농민의 권리주체성을 고려한 정책이다. 그간 농업계에선 농가 당 지급할 경우, 여성 농민이나 청년 등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도는 올해 우선 도내 4개 시·군의 농민 5만5,000명에게 연간 60만원의 지급하기로 하고 사업비 176억1,300만원을 본예산에 포함했다. 다만 지난해 농민기본소득과 관련된 조례 제정은 도의회 내 의견 마찰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농민기본소득 예산은 올해 4월까지 근거 조례를 갖추는 조건으로 통과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외에 경기도는 올해 국내 최초로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도 진행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실험 농촌마을을 선정해 해당 지역에 사는 주민을 대상으로 일정한 기본소득을 지급한 뒤,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지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등을 실증적으로 검증할 예정이다. 농촌기본소득 금액으로 △월 10만원 △15만원 △20만원 △30만원 △50만원 등 총 5가지 방안이 선택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경기도의회는 농촌 기본소득실험을 위해 26억3,800만원을 올해 예산에 편성했다. 

농촌 활성화 전문가들은 이 같은 농민기본소득 논의 확대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장원 농촌유토피아 연구소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농업과 농촌은 식량 창고로서 역할 뿐 아니라, 환경·생태적으로 다양한 공익적 가능을 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농촌은 매우 중요하다”며 “농촌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선 최소한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정책들이 적극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실험… 다른 지자체에도 확산될까  

농업계에서도 농촌기본소득 제도를 공론화 및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가 공식 출범하기도 했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측 최근 지자체들의 농민기본소득 도입 시도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이다. 다만 농민기본소득 지급 액수는 늘려야 한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농업과 농촌을 지키지 위해선 농민 1인당 월 30만원(연 360만원)은 지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기본소득 논의가 농민에서 시작해 ‘국민 기본소득’ 논의로 확대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차흥도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은 농민기본소득 도입이 농촌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티이미지뱅크

차흥도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은 “농민기본소득 도입은 전 국민 기본소득 논의로 가는 하나의 출발점”이라며 “우리는 무조건 농민에게만 기본소득을 보장해달라는 게 아니다. 농업과 농촌이 갖고 있는 다원적·공익적 가치를 고려해 먼저 지급을 해서 기반을 마련한 뒤, 이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농민기본소득 도입은 농촌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차 위원장은 “농민기본소득은 건축물로 보면 일종의 기초공사나 마찬가지”라며 “최소한의 생존 기반을 마련하는 기초공사를 한 뒤, 사회·문화 인프라를 확충해 건물을 완성하면 농촌 공동체와 농촌 경제가 살아나는 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신규 농촌인구 유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 위원장은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편”이라며 “다만 초기 정착 자금 부담으로 귀농을 망설이는 이들이 많다. 농민기본소득으로 최소한의 생존권이 보장이 된다면 인구 유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아직 농촌기본소득이 도입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아직 법제화가 되지 않았을 뿐 더러, 재정 확보, 기존 보조금 지원 제도와의 교통정리 등 여러 과제가 남아있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은 최근 ‘도농 균형발전을 위한 농어촌 기본소득제 도입 필요’ 보고서에서 “도농 균형발전을 위해 농어촌 기본소득제와 같은 과감한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면서도 “농어촌 기본소득은 기존 농민수당처럼 대상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도입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농어촌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논리 개발 △도입 대상 지역 및 지급 대상의 명확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농민수당 등 유사제도와의 관계 설정 △농어촌 기본소득제 실행을 위한 새로운 조직체계 구축과 재원 마련 등을 선행과제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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