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계기로 심리 치료 지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이 심리치료 서비스에 접근하긴 쉽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은평구 내에서 의미 있는 주민상담시설 모델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40대 초반 주부 이수영(가명) 씨는 코로나19 유행이 극심하던 시기에 강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을 제대로 가지 못하게 되면서 집에서 24시간 육아를 감당해야 했다. 돌아서면 다시 어질러 있는 방을 정리하다보면 벌컥 화를 내기가 일쑤였다. 화를 낸 뒤엔 “내가 엄마로서 잘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죄책감과 함께 우울감이 몰려왔다. 지친 마음에 심리상담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뒤흔든 지 어느덧 3년째를 접어들었다. 많은 시민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고립감, 두려움, 답답함, 우울감 등 다양한 정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특히 신체 및 정서적 발달에 중요한 시기에 사회적 단절을 겪은 영유아·어린이, 육아 부담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양육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 

◇ 아파트 유휴공간이 지역 주민 위한 상담치료시설로 변신

이에 코로나19를 계기로 심리 치료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은 높아졌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폭넓은 심리치료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존재했지만 일상 속 단절을 겪으면서 그 중요성이 더 부각된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이 심리치료 서비스에 접근하긴 쉽지 않는 게 현실이다.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무료심리치료 서비스의 경우, 대상이 유아·청소년 등으로 한정된 경우가 많은데다 민간시설 이용엔 비용 부담이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한 ‘주민상담시설’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지난 3월 15일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불광롯데캐슬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에 문을 연 ‘마음건강심터’다. ‘마음건강심터’은 은평구 지역 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상담 및 치료에 대한 비용 부담은 없다. 이는 민·관·학 협력 모델이 구축됐기에 가능했다.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 불광롯데캐슬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에  지역 주민을 위한 상담시설인 ‘마음건강심터’가 문을 열었다. 사진은 놀이치료 공간/ 사진=이미정 기자 

마음건강심터는 불광롯데캐슬 입주민들(입주자대표회의), 명지대 지역사회아동문화연구소, 은평구가 협력해 탄생한 주민상담시설이다. 입주민들은 ‘주민상담시설’ 개소를 위해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 일부 공간(58.79㎡)을 10년간 무상 임대해주기로 했다. 명지대 지역사회아동문화연구소에선 상담 전문가 및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은평구에선 관리·운영을 맡는 방식으로 민·관·학 협력 모델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협력모델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상담시설이 만들어진 것은 최초 사례다. 어떻게 첫발을 떼게 됐을까. <시사위크>는 16일 오전 마음건강심터를 찾아 손경순 마음건강심터 상담치료사, 은평구 이지효 보육지원과 육아지원팀 주무관, 김양근 불광롯데캐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심연섭 아파트 관리소장, 홍정무 구립움찬어린이집 원장을 만나 개소 과정과 의미, 운영 방향성을 짚어봤다. 

“수년 째 비어 있는 커뮤니티 시설 내 유휴공간을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사업 모델의 첫 구상은 김양근 불광롯데캐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이러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불광롯데캐슬’은 불광4구역을 재개발하면서 아파트 단지다. 이 아파트는 2013년 준공했지만, 2018년에야 등기가 완료됐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커뮤니티 시설 내 공간 상당수가 비어있었다. 2019년 구립 움찬어린이집 개원에 성공하면서 일부 공간을 채웠으나, 여전히 공간 일부는 비어있었다고 한다. 바로 ‘문고’ 용도로 승인을 받았던 공간도 그 중 하나였다.

16일 오전 마음건강심터에서 손경순 마음건강심터 상담치료사, 은평구 이지효 보육지원과 육아지원팀 주무관, 김양근 불광롯데캐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심연섭 아파트 관리소장, 홍정무 구립움찬어린이집 원장을 만나 개소 과정과 의미, 운영 방향성을 짚어봤다. /이미정 기자

김 회장은 2020년 유휴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을 홍정무 구립움찬어린이집 원장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평소 아이들의 정서 치료 및 발달, 학대피해 어린이 치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았던 홍 원장은 “상담치료시설로 활용하는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이후 입대위 측에선 입주민 동의 절차를 얻어 사업 추진에 나섰고 홍 원장은 은평구와 명지대에 이러한 사업 추진에 의견을 전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 민·관·학 협력 첫 사례 “각자 바람과 상생 노력이 더해진 결과”

김 회장은 “처음부터 입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게 쉬웠던 것은 아니다”며 “주민상담치료 시설이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에 들어서는 것에 낯설어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입대위 측에선 충분히 설명을 했고 입주민들이 고맙게도 동의해주셨다”고 전했다. 

이에 사업 추진은 입주민들의 제안으로 첫발을 뗐다. 이후 명지대 지역사회아동문화연구소와 은평구 측에서 이 같은 시설 마련 취지에 공감하면서 사업 추진은 급물살을 탔다. 이후 불광롯데캐슬 측에선 공간을 무상 제공하고, 명지대학교 지역사회아동문화연구소 측에선 상담 인력을 제공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명지대 측에선 석·박사 이상의 심리상담 전공자들을 재능기부 형태로 제공하기로 했다. 은평구에선 공간 리모델링 및 교구 구입비용, 운영비용을 부담하기하기로 했다. 불광롯데캐슬 입대위와 명지대, 은평구는 지난해 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손경순 마음건강심터 상담치료사, 은평구 이지효 보육지원과 육아지원팀 주무관이 마음건강심터 각 상담 공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미정 기자

이 같은 민·관·학 협력은 비교적 빠르게 추진됐다. 그 배경에 대해 홍 원장은 “각자의 바람이 있었던 부분이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홍 원장은 “입대위 측에선 유휴공간의 의미 있는 활용을 원했고, 명지대 측에선 상담 전공자들이 실습을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랬다. 은평구에선 육아종합지원센터 안에서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상담치료 수요를 다른 시설과 연계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이러한 각자의 욕구에 상생 노력이 더해져 마음건강심터 개소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은평구청 보육지원과 이지효 주무관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상담사업이 많이 있으나 영유아와 양육자가 함께 상담을 제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소득기준을 고려하기 때문에 대상자들이 제한되어 상담치료가 필요함에도 대상이 안 될 때가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앞으론 마음건강심터를 통해 상담치료 수요를 연계할 수 있게 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심리치료 필요성이 대두된 점도 사업 추진에 힘을 받게 했다. 이 주무관은 “코로나19 이후 영유아들의 발달 지연과 양육자들의 스트레스 강도가 더 높아졌다”며 “특히 영유아들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후 2년 동안 발달 지연 문제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다 보니 언어발달에도 문제가 생겼다. 언어발달 지연은 사회성 발달 문제로도 이어지는 만큼 대수롭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육자들도 온전히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커졌다. 마음건강심터는 우선 발달 지연 영유아와 양육자들의 심리적 지원에 중점을 두고 출발했다. 영유아와 양육자들이 잘 정립이 되고 문제가 없어야 우리 사회가 평안해진다고 보고 있다. 물론 향후 운영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구축한 뒤, 전 세대 연령으로 대상을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 제2의 마음건강심터 사례 나오기를 바라며 

손경순 마음건강심터 상담치료사가 상담 프로그램에 운영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미정 기자

마음건강심터는 3월 말부터 은평구 육아종합지원센터를 통해 상담치료 신청을 받았다. 현재까지 37명이 신청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육자까지 포함하면 상담 신청자는 이보다 2배가량 많다고 한다. 은평구 측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지 않고 있음에도 관심이 뜨거운 분위기다.

이처럼 호응이 좋은 배경엔 접근성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마음건강심터는 커뮤니티 시설 내 구립어린이집 바로 위층에 마련돼 있다. 구립어린이집을 방문했다가 자연스럽게 관심을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고 홍 원장은 설명했다.

상담비용 부담이 없는 점도 관심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민간 상담시설의 경우, 적잖은 비용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마음건강심터는 공간 임대료와 상담 인력 비용, 운영비용을 민·관·학 상생 협력으로 해결한 바 있다. 

여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점도 차별화된 점이다. 손경순 마음건강심터 상담치료사는 “이렇게 다회기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은 많지 않다”며 “영유아의 경우, 36회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소년 상담센터의 경우도 대부분 10회기 정도 상담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영유아의 경우 장기적으로 상담치료를 하는 게 효과가 있다고 봤다”며 “성인의 경우, 그렇게 많은 회기로 진행되진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마음건강심터의 개소를 이끈 이들은 “어깨가 무겁다”고 토로했다. 민·관·학 협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사례인 만큼 시스템을 잘 구축해 안정적인 운영을 이끌어야 가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 주무관은 “올해는 시범사업 기간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은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좋은 성과로 이어지면 벤치마킹 사례도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심연섭 아파트 관리소장은 “새로운 아파트 단지들이 계속 조성되고 있다. 아파트 단지들마다 유휴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대부분 커뮤니티 시설에 피트니스, 실내 골프장, 도서관 등을 마련하는 추세인데, 심리 치료와 관련된 시설을 마련하는 것도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다. 다양한 협력 모델을 통해서 마음건강심터와 같은 사례가 추가로 나오길 바란다”고 답했다.

김양근 입대위 회장은 “우리 사회는 같이 가야 한다”며 “마음건강심터가 아픈 지역 주민들을 보듬고 행복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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