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위기’다. 최근 부쩍 더 많이 들려오는 얘기다. 청년 인구의 수도권 이탈,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지방 소멸위기론’까지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노인만 남은 마을은 소멸 위기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마을, 나아가 지역의 붕괴는 지방자치 안정성을 흔들고, 나라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엄중한 위기의식을 갖고 적합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시사위크>에선 이 같은 시각 아래 현 위기 상황을 진단해보고 과제를 발굴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동네 골목과 마을 어귀를 자리잡고 있던 구멍가게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사진은 충남 당진 면천면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한 구멍가게의 모습/이미정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슈퍼, ○○상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동네 골목길이나 시골 마을 어귀에는 이러한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소위 ‘구멍가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시골에 가면 ‘점방’이라도 불리면서 아예 간판도 없이 영업을 하는 가게도 있었다.

◇ 유통시장 변화·인구 감소… 설 자리 잃어가는 ‘구멍가게’

구멍가게는 작은 면적의 공간에서 간단한 식료품이나 공산품을 파는 상점으로 정의된다.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르면 구멍가게는 165㎡(50평) 이하의 시설을 갖춘 음식료품 위주 종합 소매점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구멍가게로 불리는 상점은 7~20평 안팎의 작은 소매점으로 인식된다.

구멍가게는 지난해 반영된 tvN 예능프로그램인 ‘어쩌다 사장1’의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재조명 받았다. ‘어쩌다 사장’은 유명 배우들이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에 있는 오래된 시골가게인 ‘원천상회’를 열흘간 맡아 운영하는 영업일지를 담은 프로그램이었다. 

원천상회는 식료품과 잡화 뿐 아니라 버스표, 상비약, 완구, 철물, 담배, 먹거리 등을 판매하며 매표소, 약국, 철물점, 분식점, 주점 등을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원천상회 영업 풍경은 누군가에겐 옛 추억을, 누군가에겐 이색적인 재미를 전달했다.  

이 같은 구멍가게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골목 어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 등 도심 주택가 골목에도 이러한 형태의 영업을 하는 곳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 중후반부터 도시 골목을 시작으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형마트와 중대형 슈퍼마켓, 편의점이 유통시장에 본격 등장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충남 당진 면천면에 위치한 한 가게는 주인이 없이 문이 닫혀 있었다. / 이미정 기자

그나마 2000년대 이후로도 지방 소도시와 시골 마을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 적지 않지만 그 마저도 지속가능성을 놓고 위기가 부각되고 있다. 지방 마을의 인구가 줄고 소비 경제가 침체되면서 영업을 유지하기 녹록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 “상점·사랑방·놀이터·주점·대합실”…구멍가게는 ‘원조 멀티플렉스’ 

지난 8일 찾은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 위치한 오래된 구멍가게인 ○○상회. 가게 문 옆엔 ‘과자, 음료수, 라면 모두 파는 곳, 따듯한 정은 덤으로 드려요’라는 글이 적힌 문패가 붙어 있었다. 

이 가게는 이 지역의 오래된 터줏대감 가게 중 하나라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려고 했으나, 가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주변 상인들에게 문의해본 결과, 이 가게는 최근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인 사연은 주변 상인들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이날 만난 인근 잡화점 상인 A씨는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인데, 문을 닫으신 지는 꽤 됐다”며 “왜 영업을 안 하고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게 안에 살림집도 함께 있는데, 집에 안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세가 많으신데 어디가 아프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이후 가게 주인의 아들인 B씨와 전화 연락이 닿아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B씨는 <시사위크>와의 전화통화에서 “어머니가 올해로 연세가 95세이신데 지금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해 가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어머님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해 정신건강을 위해 영업을 계속 하시도록 했지만 어머님이 안 계시면 가게를 지속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족끼리)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회는 70년의 역사를 가진 가게라고 한다. B씨 할머니 때부터 대를 이어서 운영돼 왔으며 현재 가게 자리에선 50년 이상을 영업했다고 한다. B씨는 “옛날에는 장사를 크게 했었는데 근처에 큰 마트가 생기고 나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앞으로 계속 영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 지역엔 또 다른 오래된 가게인 ○○슈퍼가 있다. 버스정류장에 인접한 곳에 위치한 이 가게 역시 마을의 터줏대감 상점 중 하나다. 가게 앞엔 작은 테이블과 의자도 놓여 있었는데, 동네 주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배려한 공간으로 보였다. 

지난 8일 충남 당진 면천면 한 마을에 위치한 ○○슈퍼 앞엔 지나가는 손님이 앉아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미정 기자

비교적 입지가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덕일까. 가게를 오가는 손님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손님은 줄었다”고 가게 주인 C씨는 전했다. 마을 인구가 줄어들면서 이전 만큼은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지방의 구멍가게들은 지방 인구 감소 흐름 속에서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구멍가게의 역사적 의미와 지방 생활 공동체에서 담당해온 역할을 고려하면 이를 단순히 옛 추억거리가 사라지고 있다고만 치부하기 어렵다. 지방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중요한 구심점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우장 국민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구멍가게의 역사와 기능(2014년)’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구멍가게는 공동체 네트워크의 허브였다”고 짚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구멍가게는 일상적인 이야기판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주도했고, 영농 교육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의 생활교육도 함께 맡았다. 외상을 주고 급전을 빌려줌으로써 서민들의 금융 안전판 역할도 했다. 또한 놀이공간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고, 정류장, 전화, 우체통 등과 함께 하면서 공동체 외부와의 소통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 “공동체 구심점·허브 역할”… 구멍가게 쇠로, 공동체 지속성 위험신호

심 교수는 박혜진 작가와 공동 집필해 지난해 출간한 저서 ‘구멍가게 이야기’를 통해서도 구멍가게의 이러한 의미를 되짚었다. 해당 저서는 저자가 2011년 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3년간 전라남도 22개 시·군 100여 곳의 구멍가게를 답사해 50여 곳의 가게 주인과 마을의 단골손님들에게 들은 생생한 이야기를 모아 각 구멍가게의 역사적인 변천사과 사회문화적 역할을 짚어본 책이었다. 

저자들은 구멍가게에 대해 ‘원조 멀티플렉스’였다고 평가했다. 저자들은 “단순히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우체국과 택배업체를 잇는 운송대행사, 은행, 대합실, 술집, 놀이터, 마을 사랑방 등 여러 역할을 담당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연결하는 구심점이자 바깥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점으로 다양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구멍가게가 마을 공동체와 마을 밖이 연결되는 지점으로 기능했기 때문에 마을은 닫힌 공동체에 머물지 않고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의 책 출판사인 인 ‘남해의 봄날’ 측은 “구멍가게는 독자들에게 유년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동네의 사랑방이었다”고 의미를 짚었다. 사진은 책 표지. /남해의 봄날

안타깝게도 지역 네트워크에 중요한 기반이었던 구멍가게들은 점차 문을 닫고 있다. 저자들은 2020년 과거 답사한 구멍가게를 다시 찾았더니 58곳 가운데 24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문화계 일각에선 사라지는 구멍가게를 조명하는 시도도 일어나고 있다. 20년 넘게 전국 방방곳곳을 다니며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들을 그려 온 화가인 이미경 작가가 대표적인 예다. 이미경 작가는 2017년 구멍가게 그림과 글을 묶은 에세이집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출간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후, 지난해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라는 두 번째 책을 내놨다.

해당 에세이의 출판사인 ‘남해의 봄날’ 편집자는 <시사위크>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구멍가게는 독자들에게 유년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동네의 사랑방이었다. 하나둘 흔적 없이 사라지는 구멍가게들을 보면 오랜 공동체가 해체되고 빠르고 삭막한 도시화가 온 세상을 뒤엎을 것 같은 걱정이 들기도 든다”며 “아직 남아있는 가게들은 그런 의미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짚었다. 

 

근거자료 및 출처

 

- 연구논문 ‘구멍가게의 역사와 기능’ / 심우장, 2014년

- 구멍가게 이야기 / 저자 박혜진·심우장, 책과함께(출판사), 2021년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