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위기’다. 최근 부쩍 더 많이 들려오는 얘기다. 청년 인구의 수도권 이탈,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지방 소멸위기론’까지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노인만 남은 마을은 소멸 위기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마을, 나아가 지역의 붕괴는 지방자치 안정성을 흔들고, 나라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엄중한 위기의식을 갖고 적합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시사위크>에선 이 같은 시각 아래 현 위기 상황을 진단해보고 과제를 발굴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경기도 남한산성면 상번천리에 위치한 번천상회는 초대 사장의 손녀인 유나리 씨가 이어받아 새롭게 변신했다. /번천상회 인스타그램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지역 공동체의 구심점과 허브 역할을 하던 구멍가게들은 지방 마을 곳곳의 침체와 함께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대를 이어 역사를 이어가거나, 구멍가게가 하던 역할 일부를 이어받아 계승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 60년 역사 번천상회 이어받은 ‘손녀’… 전통 잇고 새 숨결 불어넣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엔 아침에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오셔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일단 차 한 잔 드리고 앉아 쉬시라고 한 뒤, 필요한 물건을 드리곤 하죠.” 

경기도 남한산성면 상번천리엔 6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구멍가게가 있다. 1964년부터 영업을 해왔다는 ‘번천상회’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받았다는 유나리(35) 씨는 <시사위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른 아침의 영업 풍경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유나리 씨는 2019년 퇴사를 하고 본가에 내려왔다가 연로한 할머니가 힘들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함께 가게를 꾸려나갈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해 유니리 씨는 오래된 가게를 수리해 오픈했다. 기존 가게 공간의 틀을 크게 손대지 않는 선에서 리뉴얼이 이뤄졌다.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소품과 상품, 테이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들로 복고풍 감성을 더했다.

유나리 씨는 “할머니가 (기존 공간을) 크게 안 건드렸으면 하셔서 최대한 가게 형태와 분위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고쳤다”며 “사랑방 공간엔 가볍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번천상회는 2019년 손녀인 유나리 씨가 할머니와 함께 꾸려가면서 가게가 리뉴얼됐다. 가게 공간의 기본 틀과 영업 방식을 유지하되 뉴트로한 인테리어가 도입됐다./번천상회 인스타그램

지난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가게는 유나리 씨가 이어받았다. 번천상회는 마을에 하나 있는 유일한 생필품 공급처이자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손녀인 유나리 씨가 가게를 이어받으면서 번천상회는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기존에 마을에서 담당하던 상점이자, 쉼터, 사랑방, 주점, 카페 등의 다양한 역할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뉴트로풍 가게로 입소문이 나면서 외지인들도 찾고 있다고 한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뜻한다.

다만 손님의 대부분은 동네 주민이다. 유나리 씨는 “주말에 외지인들이 방문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은 주민 분들”이라며 “주변에 가게가 없다보니 식료품이나, 주류, 생필품 등을 사러 주민들이 많이 오신다. 막걸리 한 잔 하시러 오시거나, 차를 마시러 오시는 분도 있었다.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은 동전을 들고 와 캔디 제품을 사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게를 리뉴얼한 후 주민 반응에 대해선 “깨끗해지고 상품 품목도 많아졌다고 좋아하셨다”고 전했다.

유나리 씨는 “가게를 편의점으로 전환하라는 제안을 꾸준히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존 가게 형태를 가져가고 싶다”며 “동네 분들이 편의점보다는 기존 가게를 친숙하게 여기시고 있는 만큼 힘들지만 계속해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주민들의 농산물을 번천상회를 통해 판매하는 등 마을경제 활성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 ‘동네 사랑방 공간’의 새로운 진화… 옛 우체국 자리에 생긴 카페

구멍가게 하던 역할 일부를 이어받아 그 가치를 계승하는 사례도 있다. 

충남 당진 면천면 성상리에 위치한 카페 미인상회는 100년 전 세워진 옛 우체국 건물을 개조해 들어선 건물이다. /이미정 기자

충남 당진 면천면 성상리는 면천읍성과 면천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51호) 등 문화자산이 자리 잡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된다. 이 마을도 인구감소 여파로 침체를 겪어왔지만 최근 몇년 간 마을 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되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뉴트로풍 상점과 미술관, 카페, 서점 등이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동네에 활력이 생겨났다. 

지난 8일 만난 미인상회 주인 이정은 씨는 동네의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미정 기자

지난해 초 문을 연 카페 미인상회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생겨난 곳이다. 미인상회는 100년 전 면천에 처음으로 세워진 옛 우체국 건물 자리에 생긴 곳이다. 옛 면천우체국은 1908년 3월 개국해 1971년까지 운영되다가 이전됐으며, 이후 해당 건물은 약방과 우체국장 등의 살림집으로 활용되다가 지난해 카페로 변신했다. 

지난 8일 오전 이 지역의 동네 구멍가게를 답사한 후, 방문한 미인상회엔 이 공간의 역사가 담긴 기록물이 곳곳에 비치돼 있었다. 우체통, 오래된 전화기, 편지지, 옛 우체국장의 가족사진 등이 가게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면천 지역 역사와 주민들의 과거 모습이 담긴 사진 기록물도 벽 한쪽에 붙여 있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 카페엔 동네 주민과 외부 방문객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여성 손님들은 해당 건물의 오랜 역사를 담긴 기록물을 살펴보며 카페 곳곳을 카메라로 담았다. 

이날 만난 청년사업가인 이정은 씨는 인근 지역에서 떡 카페를 하다가 이 마을이 품고 있는 따뜻한 분위기에 반해 이 곳에 가게를 옮겼다고 말했다. 카페 이름을 ‘미인상회’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물어보니 “한자로 쌀 미(米), 사람 인(人), 서로 상(相), 모일 회(會)의 약자”라며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전했다.

이정은 씨는 미인상회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랐다. 실제로 이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 중엔 동네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이정은 씨는 “외부 지역 분들도 오시지만, 동네 주민들이 많이 방문하는 편이다. 저희 카페에서 파는 떡을 좋아하시는 어르신들도 자주 방문하신다”고 말했다. 

타지에 살다 고향에 방문한 마을 출신들에겐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예전엔 여기가 누구누구네 집이었다’고 말하고 가시는 분들이 많다”는 게 이정은 씨의 설명이다. 해당 지역엔 미인상회가 생기기 전까지는 카페가 없었다고 한다. 공동체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새로운 거점이 생긴 셈이다. 

◇ 다시 돌아오는 동네 책방… 지역민 문화 공유 공간으로

동네 책방을 통해 새로운 커뮤니티 거점이 형성되는 사례도 있다. 최근 몇년 간 지방 마을 곳곳엔 작은 서점들이 설립되는 붐이 일었다. 면천 성상리에도 몇 해 전 ‘오래된 미래’라는 동네 서점이 문을 열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해당 책방은 자전거포가 있던 곳이 새롭게 변신한 공간이다. 

지역 출판사인 남해의 봄날은 경상남도 통영에서 동네책방인 ‘봄날의 책방’을 운영 중이다. 동네 책방이 지역 공동체가 회복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애정을 갖게 하는 하는 역할을 하길 바랐다. /남해의 봄날

이미경 작가의 구멍가게 시리즈 책을 펴낸 지역 출판사인 ‘남해의 봄날’도 경남 통영에서 동네 책방인 ‘봄날의 책방’을 운영 중이다. 남해의 봄날 측은 “동네책방도 이미 한 번 사라졌던 공간”이라며 “동네마다 있었던 동네책방이 한차례 다 사라졌다가, 아주 조금씩 꿈틀대던 움직임이 동네책방 붐으로 연결된 것이 5~6년 전의 일”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한번 사라지고 잊혔다가 다시 등장한 동네책방을 찾은 사람들은 마을 사랑방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다”며 “지역 공동체가 회복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애정을 갖게 하는 것, 돈으로 결코 환산할 수 없는 만남과 소통과 향유의 가치로 바꿔 놓는 역할을 지역의 책방들이 하고 있다고 있다. 저희 책방도 이런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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