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의 진전 가능성에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에서 동해안 절경 명사십리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취임 일성으로 “김정은이 해안가에 엄청난 콘도 역량(condo capabilities)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곳을 콕 짚은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nuclear weapon state)’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핵 국가(nuclear power)’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콘도 이야기는 다소 묻혀버린 분위기지만 대북정보 관계자는 물론 눈치 빠른 투자자 등은 후속 움직임을 주시하는 모양새다.
필자는 지난해 8월 이 칼럼 코너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평양 대동강변에 초고층 주상복합 시설인 트럼프타워가 세워질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북미관계의 진전이 이뤄지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결단이 있다면 대동강변이 평양의 뉴욕 맨해튼을 의미하는 ‘평해튼’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북미 정상의 의기투합이 이뤄질 경우 합작품이 선보여질 장소는 평양보단 북한의 강원도 원산 해안인 명사십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선이 이미 옮겨진 징후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건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 이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정상회담 때 이 문제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한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부동산 문제로 대화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중국·한국 사이에 정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훌륭한 부동산을 갖고 있고, 양쪽 바다 해안가에 아름다운 콘도가 올라가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원산과 명사십리에 공을 들여왔다.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2년 전 이곳에 대형 해양리조트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공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자재난 등으로 인해 진척이 없었고 2020년 4월 할아버지 김일성 생일까지 완공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건설되는 건물까지 차질을 빚을 정도로 북한 경제난이 심각하다는 점만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왔고, 흉물로 남을 것이란 진단도 제기됐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말 김정은 위원장이 딸 주애를 데리고 마무리 단계에 이른 공사 현장을 돌아봤다는 뉴스가 북한 관영 선전매체를 통해 전해졌고, 오는 6월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갈마해안관광지구가 우리 인민과 세계 여러 나라의 벗들이 즐겨 찾는 조선의 명승, 세계적인 명소로서 매력적인 명성을 떨치게 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단순히 내부 관광용이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교류나 관광유치를 목표로 개발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국면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콘도 능력’ 언급은 명사십리 개발 가능성에 불을 붙였다.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대통령이 100개동 이상의 건물이 들어서는 해양리조트 건설 진행 상황을 그동안 눈독들여왔다는 얘기도 나온다.
과거 필자는 한국의 유력 기업 인사들과 이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평양에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갈마비행장에 내리면서 한눈에 살펴본 원산항과 갈마반도는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특히 ‘밟으면 소리가 난다’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명사십리(鳴沙十里)는 고운 모래해안과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풍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여름철인데도 바닷가에 사람이 없고 휑하니 비어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북측 안내원 얘기로는 북한을 찾는 재일 조총련 동포나 일본인들을 위해 주로 시설이 이용된다고 했다. 인근 주민은 물론이고 평양 등 외지에서 해수욕이나 관광을 위해 방문한다는 건 북한 체제의 특성상 쉽지 않은 일로 보였다.
물론 명사십리에 트럼프타워가 들어서기 위해서는 대북제재 해제나 북미관계 개선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적대 노선을 노골화하며 ‘한국은 제1의 주적’ 운운하는 가운데, 북미관계의 독주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문제도 같이 해결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 그룹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만남이나 합의를 통해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 비핵화 원칙을 강조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북한 핵을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대신 대북제재 완화 등의 거래는 하는 스몰딜을 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주요 국제 이슈를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의 급발진이 집권 초기부터 예사롭지 않다. 캐나다를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하겠다는 건 애교수준으로 치더라도,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 등에서 드러내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파워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내친김에 김정은 위원장의 콘도능력에 편승해 트럼프 대통령이 부동산 재벌로서의 역량을 동해안 지역에 뻗치려 나선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후폭풍과 파장이 불가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동전과 우크라이나전 종전 등으로 노벨 평화상 수상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이 보다 완벽한 공적 채우기를 위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안정을 겨냥한 조치를 취할 공산을 배제할 수 없다.
취임 이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평양을 향해 연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당장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관망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노이 북미 회담 때 비핵화 이슈를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호되게 당한 굴욕을 다시 맛보지 않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북한은 본격적인 대미비난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 애쓰는 흔적이 역력하다. 거명비난이나 노골적인 대미비방이 사라진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8일 북한군 창건 77주년 기념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와 국제 지역분쟁의 배후는 미국이라고 비난하며 핵 역량 강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지역 정세의 불필요한 긴장 격화를 바라지 않지만”이란 전제를 언급하는 등 신중 모드를 보였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시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내가 북한과 잘 지내면 모두에게 엄청난 자산”이라며 “우리는 북한 김정은과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마도 두 사람은 머지않아 만날 수밖에 없다는 걸 서로 잘 알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올 여름 명사십리의 백사장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