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명도소송이란 말을 들으면 대개 “집을 비워달라는 소송”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법정을 오가다 보면 ‘주거지’와 ‘상가건물’ 사이에 놓인 분쟁의 양상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체감하게 된다. 두 경우 모두 건물을 비워달라는 요구에 관한 소송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나, 그 명도소송 절차, 비용, 그리고 기간 측면에서 각각의 목적과 관련 법률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주거 공간에 대해서는 (예컨대 월세로 임대한 집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주택 명도소송의 형태로 분쟁이 진행되기도 한다) 계약 갱신이나 보증금 보호가 최우선 가치로 여겨진다. 예컨대 가족이 살던 집이라면 그 이사와 생활 안정이 직접적으로 걸려 있기 때문에, 법률은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는 절차를 엄격히 바라보고, 이미 살고 있는 임차인이 부당하게 쫓겨나지 않도록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 같은 장치를 마련해 둔다. 흔히들 집을 임차할 때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아 두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이는 곧 집주인이 바뀌거나 여러 이해관계가 겹치더라도 임차인이 제 보증금을 우선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한편 장사를 위해 쓰는 상가건물에서는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주거지와 마찬가지로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여기에는 ‘영업 기반’을 지키는 문제라는 특별한 관심사가 더해진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를 꾸려온 임차인이라면, 물건이나 시설에 투자한 비용과 단골손님을 그대로 물려주고 나가고 싶어 한다. 소위 권리금이라는 금전적 이익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 법원 역시 권리금 회수 기회를 방해당해 손해를 입은 임차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여러 번 판시해왔다. 임대인이 “그냥 나가라, 내가 직접 장사하겠다”는 식으로 임차인의 영업 기반을 임의로 끊어버리려 한다면, 명도소송 과정에서 임차인이 상당히 유리한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둘러싼 분쟁도 상가건물 명도소송에서 자주 눈에 띈다. 주택 임대차에서 임차인이 일정 기간 거주한 뒤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는 것처럼, 상가에서도 장사를 하던 사람이 무턱대고 쫓겨나지 않도록 법률이 일정 기간 갱신권을 보장한다. 상가의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은 과거 5년에서 현재 10년까지 연장되었는데, 이를 미처 모르고 “그냥 나가야 하나 보다”라고 포기해버리는 임차인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런 권리가 보장되고 있음을 알고 적극적으로 주장한다면, 적어도 소송의 승패를 좌우할 협상 테이블에서 훨씬 낫게 대처할 수 있다.

실제로 법정에서 주택 명도소송을 다뤄보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쟁점은 보증금 반환 여부다. (또한, 주택 명도소송 중에는 재건축이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주택을 비워야 하는 명도소송도 종종 볼 수 있다.) 집주인이 제때 보증금을 주지 못하거나, 임차인이 확정일자 같은 절차를 제대로 밟지 못해 여러 이해관계에 뒤늦게 휘말리는 일이 흔하다. 반면 상가건물 명도소송에서는 임차인이 이미 투자해놓은 시설 비용이나 권리금, 그리고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 된다. 어느 쪽이든 임차보증금이 안전하게 돌아오거나, 임대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임차인을 몰아내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은 공통되지만, 법률은 주거와 상가를 서로 다른 시선에서 세심하게 살핀다.

예를 들어, 주거지의 세입자가 임대차 기간이 끝났을 때 “보증금을 먼저 돌려주지 않으면 집을 비울 수 없다”고 맞서는 상황과, 상가 임차인이 “나는 권리금을 받고 나가야 하는데 당신이 그 기회를 빼앗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은 제도적 뿌리가 꽤 다르다. 재판에 부쳐지면 법원이 그동안 쌓아온 판례와 해당 법률 규정을 토대로, 임차인의 사정을 얼마나 우선해서 보고, 임대인의 권리는 어디까지 인정해줄 것인지를 판가름하게 된다.

명도소송은 갈등이 한창 고조된 뒤에야 터져 나오는 극단적인 수단에 가깝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쌍방 간 감정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뒤 법정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소송으로 들어가면 “어느 법률이 적용되는지, 임대차가 주거 목적이었는지 사업 목적인지, 계약서에 어떤 문구가 들어갔는지”가 하나하나 다툼의 씨앗이 된다. 특히 임차인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법률 지식을 모르면 자칫 당연히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마저 놓칠 수 있다. 또한, 실제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방어하는 과정에서는 법원에서 정한 다양한 서류와 함께 적절한 형태의 명도소송 양식을 갖추어 제출해야 갈등 해결을 보다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이는 주거지든 상가건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상가는 주거지보다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많아 더 주의가 필요하다.

요컨대 주거지와 상가건물 임대차는 겉보기에는 같아 보여도 판례가 발전해온 흐름과 법정에서 다뤄지는 쟁점이 사뭇 다르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법률 지식을 미리 조금이라도 숙지해두면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고 권리를 지키는 길이 열린다. 오랜 세월 법정에서 목도한 바에 따르면, 알지 못해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고도 흔한 유형이다. 명도소송을 비롯해 그 어떤 분쟁이라도 맞닥뜨리게 된다면, “이 계약은 주거 목적이었나, 아니면 상가 영업 목적이었나”부터 구체적으로 살핀 뒤, 여기에 맞는 절차와 보호 조항을 챙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법은 생활을 안정시키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존재한다. 분쟁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각자 어떤 권리와 의무가 있는지를 조금만 신경 써본다면 서로가 덜 다치고 원만하게 합의로 넘어갈 수 있는 여지는 분명히 있다. 주거지와 상가건물의 명도소송은 그 취지와 해법이 미묘하게 다르지만, 결국 사람답게 살아가는 공간을 지키려는 소송이라는 점에서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임대인에게는 재산권이, 임차인에게는 생계와 생활터전이 달린 문제이니, 각자의 사정을 조금씩 헤아리며 법률이 주는 보호막을 현명하게 활용하길 바란다. 그것이 사회의 안정과 성숙을 향해 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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