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재산분할 사건 상고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제공한 300억원의 금전 지원을 재산분할의 기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 뉴시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재산분할 사건 상고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제공한 300억원의 금전 지원을 재산분할의 기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대법원이 고액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 기준을 새롭게 정리했다. 대법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사건에서 항소심 판단을 일부 뒤집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금전 지원은 재산분할 기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최 회장이 부부 공동재산과 관련해 제3자에게 증여하거나 처분한 재산도 분할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항소심이 인정한 1조3,808억원 재산 분할금은 서울고법에서 다시 심리하게 됐다. 다만 위자료 20억원 부분은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번 판결로 최 회장은 재산분할과 관련한 최악의 부담을 피할 수 있게 됐으며, 재산분할 기준과 법리적 잣대가 명확히 정리된 사례로 평가된다.

◇ 대법 “불법 비자금은 법의 보호 대상 아냐”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재산분할 사건 상고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제공한 300억원의 금전 지원을 재산분할의 기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금전 지원은 뇌물로 조성된 불법 자금으로,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한다”며 “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한 최태원 회장이 부부 공동재산과 관련해 제3자에게 증여하거나 처분한 재산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위자료 20억원 지급 부분에 대해서는 “원심의 재량 판단이 합리적 범위 내에 있다”며 상고를 기각하고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원심(2심)에서 인정된 노 관장 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원심은 노 전 대통령의 지원 자금이 SK그룹 성장의 토대가 됐다고 보고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 중 35%에 해당하는 1조3,808억원을 노 관장에게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불법 비자금을 부부 재산 형성의 기여로 보는 것은 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재산분할 비율 산정 자체를 다시 검토하도록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불법 자금의 법적 평가와 재산분할 기준을 새로 정립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고액 재산분할 사건의 세 가지 핵심 법리를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제3자의 불법 금전 지원은 재산분할 기여로 인정할 수 없는 점 △부부 공동재산이라도 이를 형성·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3자에게 증여·처분한 재산은 분할 대상에서 제외되는 점 △위자료 판단은 재판부의 재량 범위를 존중하는 점 등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불법 자금의 법적 평가와 재산분할 기준을 새로 정립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 상고심 선고공판이 열린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이 대기하는 취재진과 방청객들로 붐비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불법 자금의 법적 평가와 재산분할 기준을 새로 정립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 상고심 선고공판이 열린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이 대기하는 취재진과 방청객들로 붐비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노태우 비자금이 불법 자금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은 의미가 크다”며 “불법적 금전 지원을 부부 공동재산 형성의 기여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향후 대규모 이혼소송의 분할 기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부부 재산분할의 핵심 원칙인 ‘기여도’의 범위를 명확히 좁혔다”며 “기업 사주나 고액 자산가의 이혼소송에서 제3자의 불법적 지원을 둘러싼 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로 최 회장이 당면한 재무적 부담을 상당 부분 덜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만약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면 최 회장은 SK 지분 매각이나 대규모 배당 확대를 통해 1조원이 넘는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재산분할 금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룹 지배구조와 경영권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에서는 대법원의 판단을 계기로 ‘불법 비자금 환수’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는 이날(16일) 논평을 통해 “대법원도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의 불법성을 인정했다”며 “국회는 즉각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원내대표는 “군사반란과 내란의 주범들이 불법으로 축적한 재산을 환수할 수 없다면 사회적 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며 “불법 비자금을 끝까지 추적·환수하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이혼소송을 넘어 불법 자금과 재산 형성의 법적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판결로 기록될 전망이다. 서울고법의 재심리 결과에 따라 재산분할 비율이 어떻게 조정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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